마농의 샘
‘마농의 샘’이라는 프랑스 영화를 봤다. 교양이 부족하다 보니 그 유명한 소설도 읽어보지 못하고 지금에서야 인연이 닿았는지 영화를 감명깊게 봤다. 돈 되는 카네이션 재배에 필요한 샘물이 나오는 땅을 차지하고자 땅을 안 팔겠다는 땅주인과 다투다가 실수로 죽이고 그 땅으로 살러 들어온 상속인 꼽추도 괴롭힘을 당하다가 사고로 죽게 된다. 시간이 많이 흘러 그 꼽추가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과의 슬픈 사랑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괴로움에 죽음을 택하는 내용이다. 돈을 위해 죄를 저질렀지만 장례식에 참석하는 등 사람들을 속일 수 있었지만 결국 자기 양심을 속일 수는 없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니 하느님도 고통으로 알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비명횡사와 달라보인다.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그 자체가 참회인 듯 하다.
진참회라는 말이 있다.
죄무자성 종심기 ( 罪無自性從心起)
죄악이 본래 자성이 없어 마음대로 일어나니
심약멸시 죄역망 (心若滅是罪亦忘)
마음이 사라지면 죄악 또한 사라진다
죄망심멸 양구공 (罪忘心滅兩俱空)
죄악도 마음도 모두 다 사라져 버리면
시즉명위 진참회 (是卽名爲眞懺悔)
이것을 진실한 참회라 이름한다.
전남 장흥 천관사에 간 적이 있었다. 1994년 서른 한살 되던 해 봄에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분과 함께 세 명이 갔다. 비포장 길을 올라가면서 어머니는 쑥을 캐셨다. 쑥 뿌리를 절구에 빻아서 즙을 내서 먹으면 속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즙을 짜봐야 조금 밖에 나오지 않지만 정성은 무지 들어가야 했다. 천관사까지 산길을 타지 않고 임도따라 쉬엄쉬엄 올라가다 보니 멀리 바다가 보였다. 당시 천관사는 이제 막 불사를 준비하던 곳이었다. 나이 드신 노스님 한 분이 계셨는데 청화스님의 문도였던 걸로 기억된다. 조그만 법당에는 노부부 두 사람이 앉아서 염불독경을 하고 있었는데 암에 걸려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를 잡는 마음으로 절에 와서 기도를 하는 거라고 하였다. 절 입구에서 요령을 흔드는 젊은 스님이 있기에 누군지 물었더니 출가했다가 환속을 하고 다시 절에 들어왔는데 받아주는 데 없어 청화스님이 그곳으로 보냈다는 말을 들었다. 출가한 사람이 환속을 하지 않은 채 계속 중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하였다. 여자 때문에 환속을 하는 이가 많다고 하는 걸 보면 좋은 걸 취하고 싶은 번뇌는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탐하고, 취하는 게 탐진치 삼독이라고 한다. 그런 달콤한 유혹에 쉽게 걸려드는 게 본능인지도 모른다.
노스님에게 펑펑 운 적이 있다는 말을 드렸더니 참 귀한 눈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그 눈물의 의미를 금방 아셨다. 내가 생각해봐도 그 경험은 신기하였다. 눈물이 한 번 터지더니 펑펑 크게 곡하듯이 울었다. 멈추고 싶어도 브레이크가 풀린 자동차처럼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톡하고 건드니 터져버린 것처럼 눈물을 쉼없이 흘렀다. 눈물도 종류가 있다고 한다. 사기꾼들이 흐르는 눈물을 찔끔 찔끔 흘린다고 한다. 그에 반해 진짜 참회의 눈물을 펑펑 운다는 것이다. 몇 시간을 울었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을 알 수 없었다. 족히 1시간 이상을 운 것 같았다. 울음이 멈추고 나서는 마치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고요하고 시원하고 개운하였다. 적적성성(寂寂惺惺)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는 시절이었다. 피곤이라는 것을 몰랐고, 잠을 자고 있어도 의식은 또렷한 느낌이었다. 이슬만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참회의 눈물
30대 초반, 그 당시 나의 솔직한 심정을 글로 담아본다.
〈 앞뒤로 꽉 막혀 빼도 박도 못하는 심정이다. 그래도 나 자신의 생활은 규칙적으로 연속된다. 감각적인 생활이 아니다. 감각적인 요소는 배제되어 있다. 머리는 시원하다. 앉아있으면 오래 앉아 있다. 단전의 열기를 느낀다. 호흡도 안정되어 있다. 그러나 내 앞길이 잘 뚫리지 않는다. 내 인생의 진도가 전혀 나가지 않는다. 하는 일이 꽉 막혀 답답할 뿐이다. 그래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제일 힘든 것은 내 인생, 내 열정, 나의 노력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는데 주위 사람들이 업신여긴다. 내가 남에게 밖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항상 부족하다. 그러니 할 말이 없다. 사람들에게 시달린다. 그게 힘들다. 시간이 되면 잠이 온다. 책상다리로 앉은 자세에서 상을 물리고 그대로 뒤로 눕는다. 이때가 제일 마음이 편안하다. 머리도 시원하다. 단지 한 가지 원이 있다면 이대로 누운 채 다음날 일어나지 않고 싶다. 다음날 눈을 뜨고 일어나면 어제 했던 일을 또다시 해야 한다.
원효대사의 말씀이 생각난다.
“세상에 나지 말지어다. 죽는 것도 고통이니라. 죽지도 말지어다. 다시 세상에 나는 것도 괴로우니라(莫生兮其死也苦 莫死兮其生也苦)”.
어머니를 장사지내러 온 아들 사복이 “말이 너무 번거롭다”라고 하자 이에 원효는 다음과 같이 고쳤다고 한다.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모두 괴로운 일이다.(死生苦兮)”
실감나는 말이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항상 생존의 고통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죽음으로써 그런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사는 것에 더 이상의 미련은 없다. 잘되어 본적이 없기 때문에 집착할 것도 없다. 차라리 정신이라도 맑은 지금의 상태로 죽으면 손해는 없을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 더 이상의 죄는 짓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는 살기 위해 더 이상 몸부림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생각은 생각으로 그친다.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눈이 떠진다. 언제 그랬느냐 할 정도로 또 하루가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시작된다.〉
참회라는 말을 생전 처음, 마음으로 깊이 느껴 봤던 때가 1994년이었다. 나름대로 고시 합격을 위해 엄청 노력을 했지만 20대 청춘은 가버리고 30대 초반까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세월만 간다 생각하니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7월의 아직 익지도 않은 푸르디푸른 벼처럼 세상모르고 뭐든지 할 것 같았던 예전의 기운이 저절로 꺾어졌다. 그 뒤로는 풀이 죽어 지냈다. 분명 그동안의 노력과 열정이 있었건만 막상 내 손에 잡히는 실체가 전혀 없 었다. 오히려 있다면 나 하나 잘되고자 하는 욕망에 눈이 멀었던 것이 후회스럽고, 게다가 사람에게 잘 못했던 일들만 뚜렷하게 마음의 흔적으로 남았다. 나를 보기 위해 멀리서 찾아온 친구가 귀찮게 느껴졌던 기억 등 ….
그 때는 시간이 참 아깝게 느껴졌다. 그만큼 마음이 인색하였다는 증거였다. 마치 바늘하나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였다. 결국 나에게 남는 것은 과거에 대한 회한밖에 없었다.
‘후회된다. 허탈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했던 우쭐함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그런 나의 어리석음이 밉다. 나의 매정하고 냉정함에 마음이 아팠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나 따뜻한 마음을 쓰는 게 어렵거나 돈이 드는 것이 아니지만 그 때는 그만한 인격을 갖추기에는 내 그릇이 너무 적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용량이었다.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어떤 심정일까?
무엇을 바라기위해 몸부림치지는 않을 것이다. 대법원의 대법관을 지내신 어떤 분이 해주신 말씀이 기억난다.
“이름 석 자가 중요하네. 죽을 때 ‘그 사람 참 아까운 사람이었는데 또는 좋은 사람이었는데’ 라는 말을 들어야지 ‘그 사람 잘 죽었어’라는 말을 듣지는 않아야 하네.”
결국은 삶의 흔적, 지나온 과거에 대한 회한밖에 남지 않는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기억과 자신의 어리석었던 행동들만 남는다. 마치 허공에 레이저를 쏘듯이 흔적이 다 남는다. 이게 다 업력이 되어 그에 상응한 과보를 받는다. 인과응보(因果應報)라 하지 않던가. 그러나 지금이라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참회의 마음이 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법신(法身)은 순수무구(純粹無垢)한 우리의 자성(自性)을 말하는 것이고, 업력(業力)이라는 말은 그 자성과 동떨어져 있는 것을 말하고, 참회(懺悔)라는 말은 업력을 소멸하기 위해서 자성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라고 한다. 우리가 지은 죄는 허공에 다 담아도 부족하고, 알게 모르게 지은 죄가 더욱 크다. 그리고 참회는 절실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을 한다. 복을 빌었다가 안 되면 뒤돌아서버리는 그런 게 아니다.
집에서만 공부하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몸이 무거워 책을 접고 잠시 기분전환 삼아 목욕탕을 갔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평소 보이지도 않던 선풍기에 쌓인 먼지들이 유난히 눈에 거슬렸다. 마침 일하는 아저씨가 보이기에 아무생각 없이 “아저씨, 선풍기 먼지 좀 터세요.” 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나의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자주 닦아요.” 하면서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그는 잠시 뒤 다시 오더니 대뜸 나에게 말했다.
“당신! 나이도 젊은 사람이 왜 기분 나쁘게 말해!”
그는 화가 나있었다. 내 말투에 기분이 나쁜 것 같았다. 상황을 보아하니 얼른 고개를 숙여야 하겠기에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일부러 그 사람을 피해 욕조에 들어가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사실 내 말투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무심코 하는 말인데 듣는 사람은 기분 나쁘게 들리는 모양이었다.
그 사람은 욕탕 안을 몇 번이나 들어왔다 나갔다 하였다. 분이 안 풀리는 모양이었다. 차라리 기분 나쁘다고 그 자리에서 성질을 냈으면 나았을 것을 그때는 아무 말 못하다가 속으로 분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니까 그 사람도 자기감정을 어떻게 주체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얼른 자리를 피하고자 욕탕을 나왔더니 그 사람이 1층 매표소에 있던 주인을 데리고 와 있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자식이 싸가지 없게 말한 그 놈이다.”
나는 다시 한 번 그에게 공손히 인사하면서 “미안합니다.”를 거듭 반복함으로써 아무 일 없이 욕탕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무겁고 착잡했다.
‘언제까지 이런 일을 겪고 살아야 하는지’
참 인생이 서글퍼졌다.
아파트에 도착하자 경비 아저씨가 소포가 왔다면서 물건을 전해줬다. 아는 분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분은 내가 대학교 4학년 때 하숙을 할 때 만났던 분이었다. 가끔씩 좋은 책을 보내주곤 하였다. 집에 들어와 소포를 뜯어보니 책이었다. 고마움이 물 밀처럼 밀려왔다. 나같이 세상에 내세울 것 없는 서글픈 사람에게도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책을 보내준 그분의 따뜻하고 고마운 마음이 느껴졌다. 그러니 그 책을 그냥 받을 수 없었다. 고마움에 대한 예의를 차리고 싶었다. 그 책을 상위에 올려놓고 평소 잘 듣던 천수경 테이프를 틀었다.
“정구업진언 수리수리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처음 시작하는 이 부분을 독경 소리에 맞춰 따라하자마자 갑자기 속에서 어떤 기운이 꿈틀거리더니 눈물이 솟구쳤다. 눈물뿐만 아니라 콧물로 범벅이 되면서 엉엉 울었다. ‘참아야지’ 해도 가슴 속 깊은 데로부터 용솟음쳐 나오다보니 주체를 할 수 없었다. ‘목 놓아 운다’는 말의 느낌을 실감하였다. 그 날 얼마를 울었는지 모른다. 마침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다행이었지 위층 아래층에선 내 울음소리에 무슨 큰 일이 났는가 싶었을 것이다. 엄청 큰소리로 울었기 때문이다.
억제해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주체할 수 없었다. 마치 시추공에서 석유가 펑펑 나오듯이 눈물이 계속 솟구쳤다. 앞으로도 그렇게 많이 울어볼 기회가 과연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건 지금까지 울어봤던 울음이 아니었다. 가진 것을 잃어버렸을 때, 일이 잘 안 풀릴 때 가슴을 태우고 우는 눈물이 아니었다. 울음이 그쳤을 때는 얼마나 시원했는지 모른다. 마치 태풍이 지나간 후의 맑은 바람이 부는 것처럼. 나 자신이 무척 깨끗해지고 가벼워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벌써 23년이 지났다. 살기 위해 많은 허물을 범했다. 후회되는 일이 적지 않다. 부끄러운 일도 많다. 그나마 젊었을 때의 그런 체험 덕분에 다시 궤도로 돌아와 제 정신을 차리게 해준다. 사람들은 근원에서 같은 한 뿌리라고 한다. 미운 사람도 나와 같은 한 몸이니 고통을 주면 결국 고통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니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고 한다. 그 정도의 경지가 아니라 심오한 이치를 알 수 없지만 결국 돈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죽게 만드는 우를 범하고 슬퍼하는 주인공의 심정이 가슴 깊게 와닿는다. 사람은 속여도 양심을 속일 수 없다는 말이 없는 말이 아닌 것 같다. ‘죽어도 지옥도 못갈 것이다’ 라고 후회하는 주인공 대사가 크게 들린다. 무상한 인생, 후회까지 들면 죽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