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에 근무할 때였다.
어느 위원회에선가 위원 한 사람이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것은 대법원 판례가 법령이나 예규 등을 해석하기 위한 바이블(bible)이 된다는 내 글 중의 표현에 대한 것으로 물음의 요지는 ‘판례가 왜 바이블(bible)이 되느냐’ 는 것이었다. 당시엔 ‘왜 그런 질문을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중에 그 질문을 한 사람이 회계 분야에 관련된 분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하긴 이 글을 쓰는 나도 법을 공부한지 10년이 지나서야 ‘法’의 개념을 비로소 알 수 있었는데, 하물며 법을 전공하거나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야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문제는 판례를 무시하고 예규만으로 세법을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예규 역시 추상적으로 기술되어 있을 뿐이다. 사건에 직접 구체적으로 적용되어 정답을 찾아낼 수 있는 예규를 찾아내기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 와 다름이 없지 않을까.
국세청에서 5년 동안 일하다보니 느낀 것이 있다.
국세를 부과함에 있어서는 관행보다는 원칙이, 심증보다는 물증이, 주관보다는 법리가, 규제보다는 구제가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직의 모세혈관 곳곳에 합리적인 마인드가, 그리고 법리 마인드가 퍼지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민주화라는 것이 저 멀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가 많아지는 사회 또한 민주화된 사회라 할 수 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진정한 전문가가 좀 더 많아지고 활동하는 시대가 펼쳐져야 한다. 규정을 떠난 관행이 우선이라든지 ‘아니면 말고’식의 사고로 인해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전문가는 지식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치는 ‘自他不二’ 라고 생각된다. 남의 억울함을 등지고 나의 편안함만을 추구한다든지 또는 한 직급 올라가는 게 우선이라는 등의 사고만으로는 더 이상 앞으로의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에 부응할 수 없다고 본다.
조세법서 저술에 몰두
7년 전, 나와 같이 세법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세법을 알고 싶으면 이해가 될 수 있는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훌륭한 판례들을 그냥 시간 속으로, 역사 속으로 흘려 보낼 것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려 놓아야 한다는,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퍼뜨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예규모음집 같은 책이나 추상적인 세법지식을 나열하는 법서는 있어도 실제 사건에 세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심도 있게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법서와 같은 사례집은 없다 보니 세법을 공부하기가 이만저만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래서 지난 국세청에서의 법무과장5년 동안 많은 사건을 대하면서 그때마다 글로 써왔던 것을 세상에 내놓기 시작하였다.
국세기본법은 개별 세법의 원고가 다 작성되어야만 원고가 완성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모든 세법에 다 관통하고 있는 법리이기 때문이다. 부가가치세법부터 시작해서 소득세법, 법인세법, 상속세및증여세법 원고를 다 쓰고 나니 국세기본법 원고가 저절로 만들어 졌다. 단순히 이론만 적은 게 아니라 사례연구로 적었다. 21세기를 살면서도 우리나라는 세법에 대해서는 사례연구라는 책 자체가 없었다. 예규 모음집인 실무서적은 넘쳐나고 간단한 조세법 개괄서는 있어도 불복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세정현실이 안타까웠다.
국세청에서 나오자마자 변호사 개업은 하지 아니하고 팔공산과 지리산 등으로 반년 이상을 돌아다니면서 각 개별세법의 원고를 완성하였고 그 중 국세기본법 사례연구를 2008년 4월에 출판하면서 출판기념회를 한 후 2008년 10월경 상속세및증여세법 사례연구와 조세법 교과서로 상권과 하권을 출간하였다. 2009년에는 ‘세금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2013년에는 ‘조세형사법’ 2014년에는 ‘고성춘의 세금이야기’가 출간되었다. 나머지 세법은 추후 출간하는 것으로 했는데 지금까지 원고로만 가지고 있다. 실상 이 두꺼운 책 내용을 소화할 수 있는 독자층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책을 출간한 후에 알 수 있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경우 학교에서 내 책을 가지고 가르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세기본법을 먼저 낸 이유는 국세기본법이 세법 중 실상 제일 중요한데도 그 가치를 알아주는 이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이는 집을 지으면서 집의 기초인 뼈대 만드는 일을 게을리 하는 것과도 같다.
세무행정 분야에서의 전문화를 촉진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
윤선도로 유명한 해남 윤씨 종가를 돌아보면서 느낀 게 있었다. 역사상 평가되는 사람은 돈을 많이 벌거나 지위가 높은 게 아니라 작품을 남긴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 점에서 작품을 남겼기에 위안을 삼아본다. 모 경제신문의 김 모 기자가 당시 했던 질문이 생각난다.
“노하우를 다 알려주면 다른 사람에게만 좋은 일 하는 것 아닙니까?”
“세정분야에 법리의 물결이 넘실대서 억울한 납세자가 없도록 올바르게 과세되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순진하였다.
그만큼 순수한 마음으로 글을 적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초면인 어느 세무사가 내 이름을 듣고 “아! 책 잘 적으신 분” 이라고 말해줄 때 나름대로 역할을 한 느낌이 들었다.
국세청은 세법을 집행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그 구성원인 세무공무원이 세법을 모른다면 그 결과는 부실과세로 이어져 납세자들의 고통을 양산하게끔 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이 세법이나 판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활용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화가 이루어져야 책임행정도 이루어질 수 있다. 또 그렇게 되어야만 잘못된 행정처분으로 인하여 억울한 사람들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고 불필요한 행정력의 낭비 또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세무행정 분야에서의 전문화를 촉진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