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로서 사는 이유]
90이 다 된 어느 재력가가 주말 아침에 전화가 왔다.
“오늘 시간 됩니까?”
“차 가지고 오지 마세요.”
그 분의 집 앞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회사 사장이 모는 승용차를 타고 서울 북쪽의 시내로 갔다.
거기에 그분의 사업장이 있기 때문이다.
“장어를 먹을까요 간장게장을 먹을까요?”
간장게장으로 먹었다.
연세가 있어도 식성은 거의 나와 같다.
목소리도 쩌렁쩌렁하고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같은 나이대의 동료분은 나이가 들어보였다.
그분이 식사하면서 과거에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해줬다. 옛날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70년대에 검사와 싸웠던 이야기였다.
검찰에 소환되어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조사 받으러 갔는데
소파에 앉아있으라고 하더니 몇 시간이나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참만에 조사를 하더니 ‘이새끼 이리와”라고 말하는 것을 시작하면서 반말로 사람 성질을 슬슬 긁어댔다고 한다.
결국 머리를 때리자 화가 폭팔하였는데 검사의 거시기를 잡고 복도까지 나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이 나쁜 새끼”
그 길로 지청장실로 올라가 면담을 하고자 하였으나 직원들이 제지하자 소리를 질러댔다고 한다.
지청장이 무슨 일이냐고 나오자 억울한 일을 당해서 도저히 그냥 못있어서 왔다고 하자
방으로 데리고 가 자초지종을 들어 본 뒤 ‘그렇다면 검사가 잘못한 거다’면서 진정서를 접수하라고 하였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검사가 좌천이 되는 것으로 끝났다고 한다. 그는 여러번 말을 해도 상황설명이 똑같았다.
기억력이 비상하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다보면 억울한 일이 한 두번이 아니어요. 그걸 마음에 담고 있으면 죽어요.”
검찰 고위직을 역임했던 어느 검사 출신 두 명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좋은 시절을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예이다.
“자백해?”
“제가 뭘 자백한단 말입니까?”
검사는 피의자의 당당한 태도에 오기가 발동하였다.
“얼마를 줬어?”
검사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알아서 밝혀보세요. 준 게 없다는 데 왜 그러세요.”
피의자도 대가 셌다.
검사의 눈이 튀어나오고 얼굴이 이르러지는데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검사 방에 피의자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들어왔다.
아버지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검사가 대뜸 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장난하지 마소.”
아픈 척하지 말라는 말이다.
검사는 피의자에게 보복하듯이 부모들에게 반말을 쓰기 시작하였다.
피의자는 흥분하였다.
세금문제로 사무실에 찾아 온 어느 분의 이야기를 대충 묘사한 것이다.
검찰에서 실제 그렇게 당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수사검사에 대한 원한이 뼈에 사무쳤다는 것이다.
뇌물 제공을 했는지 자백을 하지 않고 버티다 보니
국세청 세무조사를 유도하여 조세범처벌법으로 고발해달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특가법 위반으로 실형을 살았다고 한다.
한때 언론에서 대서특필한 사람이라서 실명을 거론하면 웬만한 사람은 다 알 수 있는 분이다.
그러니 거짓말을 하겠는가마는 가족들을 전부 고발하는 바람에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았던 것 같았다.
100억원 넘는 세금을 맞고 회사가 부도나지 않고 견뎌내느라 4년 동안 힘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니 국세청 몇 사람과 수사검사에 대한 원한이 사무쳤다.
그들은 시간이 지나 다 옷을 벗고 세무사나 변호사를 한다고 한다.
이젠 위치가 바뀌어 예전의 을이 아니다.
결국 돌고 돌아 서로 다시 만나는 사이가 되었지만 유독 수사검사만 예외였다.
국세청에 있었을 때였다. 과세쟁점위원회라는 제도를 본청장이 만들고자 하였으나 반발이 심했다.
과세전적부심도 있는데 옥상옥이라는 이유였다.
국장이 내 의견을 물었다.
“법의 역사는 구제의 역사였습니다. 구제를 확대하는 것은 옥상옥이 아닙니다. ”
결국 과세쟁점위원회가 설치되었고 지금은 오히려 국세청 내부 사람들이 더 활용하는 제도가 되었다.
세무조사 도중 쟁점되는 것을 과세할지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칼과 방패를 뺐는다고 비판하더니 이제는 오히려 봐주고 싶으면 봐줄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그런 부작용이 있어도 큰틀에서는 억울한 납세자를 줄이고 납세자의 불필요한 고통을 없애고 조사공무윈의 직권남용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로 정착이 되어 잘 운용되고 있다.
최근 공수처를 설치하면 안 된다는 검사출신 금태섭 의원의 주장에 논란이 일고 있다.
그는 ‘검찰 수사 잘 받는 법’이라는 책을 검사 재직시 출간했던 사람이다.
금지금사건으로 당시 형사 4부장실을 자주 들락거렸는데 그 부서 검사라서 부장검사에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틀에 박힌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공수처는 규제기관이고 사정기관이자 수사기관이다.
결코 구제행정을 하는 곳이 아니다.
구제를 한다면 몇개라도 더 만들어도 되지만 규제를 하는 곳을 더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옥상옥이다.
지금도 검찰과 검사에 대한 원한이 쌓여 결국 그 화살이 그들에게 다시 돌아가는 마당에 또다른 원한을 쌓는 곳을 만든다는 것은 국민의 고통을 덜해주는 게 아니라 또다른 마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정치목적만 있을 뿐 국민의 인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검찰의 수사권을 제한하고 경찰의 수사권을 견제케 하는 것이다.
같이 고시 공부했던 이들이 지금은 다 검찰조직을 이끄는 중추세력이 되었어도 정의를 말하던 그들이 지금 검찰을 이끌어도 왜 국민들에게는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일까 그게 의문이다.
사람이 벼슬을 가지려고 더 노력하면 그들만의 리그에 함몰되게 돼 있다.
고시해서 판사는 판사대로 검사는 검사대로 물이들면 목에 힘주고 더 고개를 쳐든다는데 라면 먹고 고시공부했던 목적이 그러려고 했던 게 아닐 것이다.
전관을 매개로 큰돈 벌려고 하지말고 있을 때 열심히 사심없이 한사람이라도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고 억울한 사람의 하소연을 귀담아 들으면서 검찰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노력했으면 좋겠다.
그게 대장부의 삶이라고 본다.
물론 어렵겠지만 맘이라도 내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본다.
그런 맘만 내도 하늘은 예뻐해 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