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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문
진짜 나를 찾아서
어느 덧 불혹의 나이를 넘어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젊은 시절이 불과 엊그제 같다.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요즈음은 가끔씩 ‘아! 이래서 인생이구나.’ 라는 느낌을 가지곤 한다.
꼬인 것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풀어지고, 감춰진 것은 저절로 드러나게 돼있다.
애증(愛憎)의 세월이라는 말처럼 애와 증이 반복된다.
그동안의 공직생활(감사원, 국세청)을 통하여 많은 사건을 대하면서 느낀 것 중의 하나가 ‘사건은 반드시 흔적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건 속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사건도 이러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구태여 염라대왕 앞에 불려가 업경대를 볼 필요 없이,
살아생전에도 그동안 살아온 시간을 뒤돌아보면 마음 쓴 흔적은 고스란히 그 자리에 남아있다.
시간은 지나가버렸기 때문에 손에 잡히지는 않아도 그 흔적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다.
잘되고 싶은 마음, 인색했던 마음, 순진한 마음, 남에게 감추고 싶은 마음 등등.
모든 죄는 마음으로 짓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참회가 필요하다.
그것도 진실한 마음으로 ….
그런데 사람이 살면서 과연 진실한 마음을 가지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다보면 나 자신을 잃어버리기 쉽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간다. 그리고 건강도 ….
누구나 다들 열심히 산다.
한 직급 올라가기 위해서 또는 돈을 벌기 위해서, 또는 어떤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살줄만 알았지 내 건강이 해치는지, 내 죽음이 목전에 다가왔는지를 실감하지 못하고 산다.
나이에 비례해서 병문안도 가고 상가에도 가는 횟수가 늘어난다.
그럴 때는 이런 생각도 든다.
‘어차피 하루 세끼 먹고 사는 것,
한 번뿐인 인생! 이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사는데,
뭐에 얽매여 구태여 살 필요가 있는가?
훌훌 털어 버리고
진짜 인생의 주체로서 한번만이라도 자유롭게 살고 싶다’
그러나 마음만 그렇지 현실로 돌아오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규격에 맞춰진 대로 바쁘게 살아간다.
다시 소심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이기 때문에, 진짜 내가 주체가 되어 자유를 느끼면서 살고 싶지만
그게 마음만 그렇지 실제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 한 편으로는 항상 갈망한다.
그 에너지는 꺼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만족을 느끼기가 어렵다.
그런데 자기만족이라는 것도 결국 자기 자신에 달려 있는 것 아닐까?
환경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으로 지옥도 만들어내고 천당도 만들어내고 육도(지옥 아귀 수라 아수라 천상 인간)의 여러 세계를 만들어낸다.
한마음을 쓰는 경우와 두마음을 쓰는 경우, 흔적은 어디에 남을까?
먹고 사는 것이 직업이라지만 그야말로 먹고살다 끝나 버리기에는 너무 아쉽다.
내 하는 일을 통해서 남을 이롭게 할 수 있으면 복전을 일구는 일이다.
네 잎 크로버만을 찾다가 세 잎 크로버를 짓밟는 우(遇)를 범하는 것이 평범한 모든 사람들이라 하지만,
이제는 그런 어리석음을 더 이상 범할 여유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
마음에서 시작해서 마음으로 끝나는 것 같다.
인생의 주체로 살고 싶고, 또 자유를 원하지만, 그런데 그게 배짱 없이 되겠는가?
나 잘되기 위해 또는 나 편하기 위한 마음으로는 내가 만들어 놓은 규격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나라해서 특별난 삶을 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본다.
세상살이가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먹
고 사는 게 자기 마음대로 된다면야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가정을 꾸리고 가정의 평안을 지켜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인생은 각자 살아가고 있다.
인생의 주체는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결국 마음의 흔적을 많이 남기지 말고 마음을 진실 되게 쓰고 싶다.
나이가 먹어서 더 순수해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게 인생이기도 하다.
쏜살 같이 지나가는 세월에는 항시 무상함이 묻어있으니
이를 경계하고 또 경계하면서 인생의 주체로서 자유를 느끼는 한 생이 되고 싶을 뿐이다.
살면서 이런 고민을 해야 할 매듭이 주어졌기에 이 때 한번 나의 생각을 정리해 놓을 필요가 있어 이 글을 썼다.
물론 앞으로는 어떤 체험을 통하여 또 어떻게 변해질지 나 역시 궁금하고 기대된다.
그동안 두 번에 걸쳐 ‘값진 실패 소중한 발견’으로 나왔던 글을
이번에는 ‘찾지 않아도 있는 것을’이라는 제목으로 완결하였다.
무엇이 나를 어렵게 하는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한다해서 마음대로 된다면 이 세상에는 좌절과 고통이 없을 것입니다.
열심히 해도 안 되는 데 하물며 열심히 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왜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걸까. 그것은 헛고생을 하기 때문입니다.
잘되고 싶은 욕망이 너무 강해도 안 되고, 너무 느슨해도 안 됩니다.
단지 게임을 즐기듯이 하는 것이 힘을 많이 안들이고 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그 나머지는 내 영역이 아닙니다. 지금 저에게 남은 것은 두려움과 불안이 아니라 텅 빈 고요함입니다.
예전의 나와 현재의 나, 미래의 나가 그 속에 모두 녹아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에 열중인 수험생들이 많이 있다.
남들처럼 놀고도 싶고, 하고 싶은 일도 다 해보고 싶지만
장래의 나를 위해서 지금 이 시간을 투자로 생각하기 때문에 주위의 유혹을 뿌리치고 자기 자신과 싸우면서 책과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부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서 지도나 이정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각기 처한 환경과 조건이 다르다보니 어떻게 공부하라고 딱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분명히 열심히 했는데도 결과가 안 나타나면 그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실망스럽고 허탈하다.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헛고생이 돼 버리는 느낌이다.
자기 자신이 왜 공부를 잘하는지 모를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슨 도움이나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심히 해도 안 된다면 그 이유라도 알아야 다시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공부만이 내 살길인지 회의가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다양하게 살아가는데 꼭 이렇게 공부에 얽매여 살아가야 하는가라고.
그러나 이런 의문들은 오히려 공부를 더 열심히 하면 저절로 해소가 되어진다.
어리석을 정도로 많은 실수를 해보면서 좌절과 고통을 겪다보면 그게 다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과정이었다는 점을 느끼게 해준다.
헛고생처럼 여겼던 지난날의 노력들이 얼마나 귀중하고 소중한지를 알게 해준다.
시간의 주체가 되어 살수 있는 시간이 자기 인생에서 얼마나 차지한다고 생각하는가.
극히 일부분이다.
그것도 젊었을 때의 한순간이다.
지구와 달이 인력이라는 힘으로 항상 일정거리를 두고 같이 있듯이
좌절과 고통은 집착이라는 인력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을 그동안의 수험생활에서 느꼈다.
그동안 이야기하기 참 부끄러울 정도로 어리석은 실수를 많이 하였다.
지금은 이런 모두가 나의 소중한 경험이 되고,
그것으로부터 인생의 소중한 가치들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인생은 참 공평할 뿐만 아니라 『우연은 필연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실수들이 부끄럽지 않다.
다만 짧은 청춘을 경쟁에 시달리면서 모든 정열을 많은 실수로 소모하기보다는
더 큰 희망을 가지고 더 좋은 경험을 통해 더 소중한 가치들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후배들이나 내 아이들, 그리고 조카들은 나중에 커서 이런 나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의 실패담을 말해보고자 한다.
또한 굳이 수험생이 아니더라도
하나의 달이 일천(一千) 강물에 비추듯이 세상진리가 다르지 않으므로
세상일을 해나가면서 필연적으로 부딪치게 되는 위험과 불행에 부닥쳐 있을 때,
합격하기까지 좌절과 고통을 겪으면서 그동안 발견한 소중한 가치들이 똑같이 적용되리라고 본다.
시험에 떨어져본 적이 없을 때의 나는 항상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교만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기 때문에 제 딴에는 열정적으로 공부를 했다고 생각했다.
막상 결과는 실패였다.
그게 한두 번일 때는 실력이 없거나 운이 없는 것으로 돌리고 싶었지만
여러 번 계속 떨어지다 보니 뭐라고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왜 그러는지를 모르니 답답하기만 했고 그러다보니 점집에도 가보곤 하였다.
시험도 한두 번이 아니라 줄기차게 떨어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마치 내가 태평양 망망대해(茫茫大海) 한가운데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전혀 방향을 모르고 표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기위해서는 우리나라까지 꼭 찾아가야하는데 나침반도 없으니 어떻게 찾아간단 말인가.
막막한 심정이었다.
아마 이런 심정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글이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사방이 꽉 막혀 답답할 때는 합격한 사람들의 수기만 봐도 많은 용기와 감동을 받게 마련이다.
실제 많은 위안과 도움을 준다.
그런데 내가 만일 그들의 말 한마디가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통해 딱 몇 마디로 함축되어 표출된다는 점을
처음부터 가슴깊이 느꼈더라면 그동안의 수많은 실패는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교풀보다 더 강한 접착력으로 붙여진 허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느끼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그러다보니 다음과 같은 화려한 실패경력을 쌓게 되었다.
1985년 사법시험 1차 불합격 1986년 사시1차 합격, 2차 불합격
1987년 사시2차 불합격
1988년 사시1차 불합격, 군법무관 1차 합격, 2차 불합격
1990년 군법무관 2차 불합격
1991년 사시1차 불합격
1992년 사시1차 합격, 2차 불합격, 군법무관 1차 합격
1993년 사시2차 불합격
1994년 사시1차 불합격, 군법무관2차 불합격
1995년 사시1차 불합격
1996년 사시1차 합격,2차 동시 합격
이상이 나의 고시경력이라면 경력이다.
총무처에 사진 붙여서 원서 제출한 시험 횟수만 해도 총 18번이나 되다보니 나 자신도 차분히 세어봐야 할 정도이다.
이상 간단하게 고시약력을 기술한 이유는
법학에 흥미를 못 느낄 정도로 적성도 없고 게다가 머리도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합격하기까지 좌절과 고통 그리고 갖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느끼게 된 점들이
혹시나 지금 이 순간 어떤 시험이든지 합격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는 사람에게
다소나마 위안과 도움이 될까해서이다.
또한 굳이 수험생이 아니더라도
하나의 달이 일천(一千) 강물에 비추듯이 세상진리가 다르지 않으므로
세상일을 해나가면서 필연적으로 부딪치게 되는 위험과 불행에 닥쳐 있다면
위와 같은 점들이 똑같이 적용되리라고 본다.
지금 생각해보면
합격했다는 것보다는 그 외의 소중한 가치들을 깨닫게 된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그동안의 수많은 시행착오가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었다고 느낀다.
그 당시는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공부호』라는 조그마한 선박의 선장으로서 시간의 주체가 되어 긴 시간을 항해하다보니
결국은 『공부로부터의 해방감』과 그 외의 소중한 경험을 통하여
『인생』이라는 커다란 선박을 몰 수 있는 능력을 쌓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인생은 공평한 것이다」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혹 누가 나에게 합격비결을 물어본다면
“포기하지 마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일이든지 냉정히 따져보면 포기하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다.
물론 실패는 여러 번 있을 수 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입장에서 내가 가고자 하는 도로가 쑥쑥 잘 뚫려 있으면 좋겠지만
차가 막혀 서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급한 마음에 뒤돌아 가면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리게 된다.
따라서 참을성 있게 천천히 서행하다보면 교통체증구간을 빠져나오게 된다.
공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설령 실패를 하더라도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그동안 겪었던 실패가 다 약이 되기 때문에 결국은 원하는 것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내가 하는 일이 하고 싶은 일인가, 해야만 하는 일인가, 할 수 있는가를 잘 살펴봐야 한다.
만일 위 세 가지를 갖춘 일이라면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10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합격이라는 것 하나만을 바라보고 시험공부를 했는데
실제로 공부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딴 데 있었다.
“자신을 성찰(省察)”하는 마음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람에게는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가져야하고 느껴야 할 가치들이 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고 인식은 경험의 한계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봄을 느낀 사람에게만 봄은 존재한다.
이와 같이 자기가 느낀 만큼 세계가 넓어진다.
국어사전에 있는 말들이 다 있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느껴보지 못한 단어는 머릿속의 관념으로만 머무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언젠가는 느낄 수밖에 없는 것들을 공부할 수 있었고
아울러 힘이 넘치는 젊은 나이에 조금이라도 더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에서
나는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나 역시 합격하기 위해 시험공부를 시작했지만 막상 해 보고나니
시험이라는 것이 별다른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데 있어 한번 겪고 넘어가야 할 생활의 일부였다고 생각된다.
밥 먹고 잠자는 것이 일상생활이듯이 시험도 삶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므로 피할 것도 없고 어려워 할 필요도 없다.
날마다 밥 먹고 잠자듯이 날마다 공부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합격은 저절로 온다.
그러나 합격했다 해서 끝이 아니다.
합격은 또 다른 시작이다.
인생의 일부분이 지나갔을 뿐이다.
아직도 많은 시련과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부를 통해 얻은 힘 즉 최선을 다하는 자세, 역경이 와도 포기하지 않는,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 마음,
자기 절제의 습관, 몸과 마음을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 등이
앞으로의 인생항로에서 설령 큰 파도가 치는 위험이 닥쳤어도 큰 어려움 없이 스쳐지나가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수 만년(萬年) 전에 쳤던 파도는 오늘도 똑같이 하얀 거품을 내면서 바위를 찰싹찰싹 치고 있듯이
「공부는 삶의 연속」이고 삶 자체는 「순수를 추구하는 마음」이 전부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하는 딸, 아들과 조카들이 나중에 크면 반드시 수험생이라는 관문을 지날 수밖에 없는데
그때 혹 공부가 어렵게 생각될 때 나의 경험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점에서
그리고 아버지로서 삶의 흔적을 남겨주고 싶어 이 글을 썼고
만일 다른 모든 수험생들이나 그 외의 사람들에게도 나의 경험이 혹 도움이 된다면 더 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운이 깃들길 진심으로 기원(祈願)한다.
진실하면 말이 없어지고
절실하면 얻는 것이 있네
인생은 자유로운 것인데
그대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