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진 실패 소중한 발견] 편집후기
저 멀리서 찾지 마라.
우리가 사는 이 허공계에는 모든 세계의 중생들이 다 같이 공존한다고 한다.
단지 서로 차원이 달라서 보지 못할 뿐이라고 한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이라 해서 모두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생각이 다 다르다.
자신의 인생역정만 보더라도 세월의 흐름 따라 보는 세계가 다 다르다.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도 다르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같이 지내는 동료들이라도 다 생각이 다르다.
같을 수가 없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에게는 뒤로 가라고 하는 소리가 들릴 리 만무하다.
사람마다 다 업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똑같은 몸을 가지고 태어났어도 서로 걸려있는 파장들이 다르다.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무척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으로 태어난 사명이 뭘까?
먹고살기 위해서?
우주가 생성되는 원인은 에너지라고 한다.
순수에너지라고 표현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그 해답은 순수에너지의 파장을 느끼는 사람만이 알 것이다.
수행을 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고, 수행의 목적은 우리의 성품(眞如佛性)을 점점 밝혀가는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한 발짝만 내딛어도 수행을 하는 거다.
짊어지고 태어난 업력의 무게를 조금만이라도 덜어낸다면 손해 보는 인생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살면서 인연 따라 업력 따라 에너지 흐름이 다르기 때문에 본래 성품의 파장과 다른 파장에 걸리게 된다.
업력의 힘이 무척 크다는 것을 느낀다.
게다가 보통 질기고 끈끈한 게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지는 것 같다.
하나는 경쟁,
다른 하나는 무상이다.
젊고 힘이 있을 때는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내가 잘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관심사이지만,
나이가 들거나 죽음을 앞두거나 병에 걸려 건강을 잃은 입장에선 무상함을 느낄 것이다.
사람이 오는 길은 각기 달라도 가는 길은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고 한다.
결국은 죽음이고,
그 문턱에선 손에 잡히는 개념 하나 없이 마음의 흔적만 남을 것이다.
세월의 무상함과 인생의 덧없음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이 들어 무상함을 느낄 때는 늦는 것 같다.
무상이란 뒤집어 생각해보면 경쟁이나 생존을 위해 살아온 흔적이 아쉽고 후회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차피 사람으로 태어나 나아가야 할 방향이 본래의 성품 즉 순수함이라고 한다면,
나이가 먹을수록 술수보다는 순수해져야 한다고 본다.
그러려면 정진의 과정이 필요한데,
참선이나 기도 같은 것을 하려고 하더라도 체력이 없으면 할 수가 없다.
용맹정진(勇猛精進)은 체력이 없으면 할 수가 없다.
강한 정진력이 있어야만 고통의 한계를 넘어가게 되고, 그러면서 참회가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정신이 혼미해지는데, 그때는 정진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무상이라해서 염세주의(厭世主義)로 살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열심히 살라는 의미일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널리 사람들에게 이로운 일을 하라는 것이다.
우리 애들도 언젠가는 종교를 가지게 될 것이다.
어느 종교를 믿든지 간에 언젠가 그들도 자라 무상의 관문에서 아버지가 했던 고민을 똑같이 반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설령 나와 같은 방황과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썼다.
“저 멀리서 찾지 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