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진 실패 소중한 발견] 9 책으로 하는 공부, 마음으로 하는 공부
나의 경우 법대로 진학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그 당시는 공부 좀 한다하면 법대 또는 의대 그리고 물리학과로 진학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그러나 적성은 아니었고, 대학에서의 전공과목 성적 또한 무척 좋지 않았다. 그렇지만 법대에 왔으니까 당연히 고시를 보게 되었고 그러면서 考試가 아닌 苦試가 되면서 나중에는 孤試가 되었다.
처음 고시를 접했을 때의 심정은 빨리 합격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옛날 많은 선비들이 출세를 위하여 과거시험에 매달리고 오늘날 많은 학생들 역시 유치원 때부터 일류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입시시험에 매달리고 있듯이 마찬가지 이유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잘 돼보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하고 싶었고’ 또 ‘해야만 했고’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합격을 해야겠다는 열망이 너무 강하다보니 공부를 경쟁으로만 생각했던 것이 큰 실수였다.
옛날 과거의 경우도 오늘날 못지않게 경쟁이 치열했다고 한다. 선비에게는 과거에 들어 관리가 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직업이 없었을 뿐더러 합격률도 무척 낮았다고 한다. 그러나 선비들의 과거 공부는 단순히 사서삼경을 외우고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성현의 말씀을 가슴깊이 새기고 인간의 도리를 자기 몸에 충분히 배도록 하는 것 이었다.
내 한 몸 잘되어 보려고 고시를 했고, 따라서 합격에 목을 맨 채 아등바등 치열하게 경쟁한 적이 있다 보니, 옛 선비들의 공부목적이 정신수양에 있다는 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비록 합격을 위한 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였지만 나중에 뒤돌아보니 그동안의 많은 실패를 통해서 결국 나 자신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잘 된다 못 된다’ 는 개념으로부터 벗어나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난 의미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등의 가치관을 확립시켜준 내 인생의 큰 획을 긋는 소중한 기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공부의 목적은 합격 아니면 실패라는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소모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그동안 시험에 자주 떨어져 수험기간이 길어진 것이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 시험도 한두 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여섯 번씩 떨어져보면 아무리 둔한 사람도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되고 한 번씩 떨어질 때마다 그런 점을 고치려고 애를 쓰기 때문이다.
항상 마음이 피곤하고 지쳐있다든지, 쉬운 일도 자꾸 미루거나 복잡하게 처리한다든지,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괜히 남을 미워하거나 험담을 한다든지, 사소한 일에도 쉽게 흥분을 하고 화를 낸다든지, 쉽게 산만해지거나 게으르고 의욕이 없다든지, 일을 대충대충 건성으로 한다든지, 남의 말을 잘 듣기보다는 자기 말만 한다든지, 항상 TV를 끼고 산다든지, 운명이나 숙명 탓을 많이 한다든지 등등 떨어질 때마다 한 번씩 느꼈던 문제점들이다.
그래도 실패는 있어도 포기는 없었기 때문에 이런 문제점을 하나하나씩 고쳐나가면서 다시 도전하고 또 도전하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아하! 공부가 인격의 발현이구나!’라고 느꼈고, 공부는 책으로만 하는 줄 알았는데 실상 마음으로 하는 공부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공부가 어려운 이유는 공부 그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사람이 어렵게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공부는 바로 이러한 자신의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발견하면서 극복해나가는 과정이고 그러한 노력 속에서 지식이나 합격은 부산물로 얻어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율곡 이이선생이 지은 「격몽요결」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아, 마음이 바른지, 학문이 진보되는지, 행실에 조심함이 있는지를 반성한다. 그리하여 고칠 것이 있으면 죽는 순간까지라도 힘써 고쳐라. 말이 많고 생각이 많은 것이 가장 마음에 해롭다. 일이 없으면 조용히 앉아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람을 접하면 마땅히 말을 가려서 간결하고 신중하게 하라.
‘자신이 전적으로 주체가 되어 공부만 할 수 있는 수험생활 때 절제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보지 않으면 언제 또 해 보겠는가’ 라고 이 기간을 귀중하게 생각한다면 공부가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으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