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진실패 소중한 발견] 6
20년 전 이 글을 쓴 그때나 지금이나 답답한 현실은 매한가지인 것 같다. 그나마 우리 때는 공부를 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회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도 막혀있는 것 같다. 부모재산 아니면 살기 힘든 세상이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항상 즐겁다’라는 액자가 방안에 걸려있다. 좋은 말이다. 이슬만 먹고 살 수 있는 경계라면 모르겠지만 먹지않으면 힘을 못쓰는 경계에선 일단 물질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게 본능이다.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잘 되고 싶은 욕구를 충족해야 한다. 그게 만족이다. ‘죽으면 끝인데 정신세계가 어디 있는가?’ ‘못된 놈들이 잘만 살더라.’ 결국 세상을 보는 관점이 자기 인생을 결정한다. 운명이라는 게 있다면 아마 이런 것일 것이다. 세상이 인연 아닌 것이 없다하지만 인연은 자기 스스로 만드는 것 같다.
여유를 즐기는 공부
-경기침체, 취업난, 고시 낙방 스트레스 20대들이 쓰러진다-
스트레스를 못 이겨 쓰러지는 20대가 부쩍 늘었다. 몇 년째 계속된 경기침체와 취업난으로 사회 진출이 가로막히면서 급속히 나타난 현상이다. 이들의 증상은 그동안 중년 이상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우울증. 탈모. 거식(巨食)증 등 정신적 질환에서 뇌졸중. 반신마비, 심지어 돌연사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이는 여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 강박감이 근본적 원인이며 대부분 취직 불안이나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그랬기 때문에 남의 일처럼 생각되지 않는다. 경쟁이 그만큼 무섭다. 잘되면 좋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자칫 자살로도 이어질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충동을 느낀 적도 있었지만,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마련해준 계기가 있었다.
30대 초반 뉴질랜드에서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이국땅을 처음 밟아본 경험치고는 좋은 인연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곳에서의 첫 느낌은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다양하게 살아가고 있구나’ 였다. 나같이 성적에 얽매여 하루하루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그와는 정반대로 생활자체를 여유 있게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당시 내 눈에는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여유롭게 보였다. 바람 부는 날 신나서 서핑보드를 가지고 바닷물에 뛰어드는 사람들, 바닷가를 끼고 요트나 카약을 타는 사람들, 오후 5시만 되면 퇴근해서 자신만의 여가생활을 즐기는 사람들,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바다수영을 즐기고 있는 모습 등 그 사람들의 얼굴만 봐도 여유를 느꼈다. 옆집에 사는 콕스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더라도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인자한 모습이었다. 나도 저렇게 곱게 늙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을 정도였다.
뉴질랜드 왕립연구소의 선임연구원 한분의 예를 보더라도 직장 근처에 집을 얻는 것이 아니라 1시간 30분정도 떨어진 바다 근처에 집을 얻을 만큼 도시생활 하는 것보다는 바다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고 목장에서 일하고 목가적인 것을 더 좋아한다. 그네들의 사고방식은 남과 경쟁해서 살아가기 보다는 여유 있게 인생을 즐기며 살자는 것 같았고, 경쟁에 찌든 나에게는 그게 부러웠다. 그곳은 최소한 성적 좋은 사람만이 잘사는 그런 사회가 아닌 것 같았다. 아마도 그 차이는 인구가 적고 많음에 달려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구가 많으니까 경쟁이 심하고, 그러다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고 결국 성공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에 쫓기게 된다.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죽어라 열심히 공부했는데 이국땅에 와 보니 초라한 존재였다. 그동안 공부했던 열정만큼은 그 나라 대통령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막상 이국땅에서 뭐하나 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는 무능한 사람이었다. 하다못해 영어라도 잘해 놨으면 그곳 아가씨와 연애라도 할 수 있을 것인데. 고시공부하다 떨어지면 폐인 되기 딱 알맞다는 말이 진짜 실감났었다. 합격 외에는 아무런 보상이 없는 죽은 공부만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한 것은 우물 안 개구리들의 쓸데없는 소모전에 불과하였다는 후회가 절로 들었다.
더군다나 그동안의 삶은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경쟁 속에서 신음하는 삶이었다. 사람으로 똑같이 태어나서 이렇게 서로 다르게 살아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드니 그동안의 세월이 한탄스럽고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동안 여유 있는 삶을 살아보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젊은 사람들의 이민열풍도 따져 보면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번은 뉴질랜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봤는데 폭포 소리가 2Km 밖에까지 들릴 정도로 거센 물살이 있는 곳에서 서핑보드를 타고 내려가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험하고 위험한 물살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또한 카약을 타는 사람은 그 거센 물살을 거꾸로 올라가려고 뒤집히면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나서 계속 반복하여 시도하고 있었다.
그렇게 노는 것을 볼 때 그들의 강인한 체력과 건강한 삶, 인생을 즐기는 여유를 느꼈다. 나 같으면 도저히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의 안일만을 추구하며 단지 잘되어보려고만 살아왔기 때문에 모험정신으로 즐기는 삶을 거의 못해보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항시 생각하게 된 것이 여유 있는 삶, 여유 있게 살자는 것이었다. ‘잘되고 못되는 개념보다는 인생을 잘 사는 사람이 되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마음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 경쟁 속에 있으면서도 오히려 공부를 게임처럼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실제로 공부에 이로운 것과 해(害)로운 것을 구별해서 오락게임에서 장애물 피하듯이 해가되는 일들을 피해 다녔다. 어떻게 보면 공부는 피하는 연속인 것 같다. 건강을 증진하는 방법은 우선 해가 되는 술, 담배 등을 하지 않아야 하듯이 공부도 잘하려고 하는 방법을 찾기보다는 해가 되는 행위들을 안 하는 것이 첩경이다. 그러다보니 희한하게도 공부하는 것이 훨씬 편해졌고, 실제 하는 일이 잘 되어서 원하던 합격도 했다.
사법연수원에서도 임용이 되려고 서로 노트도 안보여줄 정도의 치열한 경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책으로 하는 공부는 이제는 끝을 맺고 싶었다. 공부는 열심히 하되 큰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공부하고 싶지 않았다. 최근에는 연수원생이 시험 보는 도중 사망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사인은 경쟁에서 뒤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압박감에 의한 스트레스일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 시험도 보는 것인데 오히려 그 때문에 죽는다는 것은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되어도 보통 전도된 것이 아니다. 과연 이러한 우(偶)를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는가.
아마도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 외에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