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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전문변호사 고성춘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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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유튜브 채널 / 세금과인생 / 세금과인생 글 / 미운 사람 미워하다 내가 먼저 죽는다 — 결국 건강이 최고인 이유

고성춘 조세전문변호사 / 2026년 6월 1일

미운 사람 미워하다 내가 먼저 죽는다 — 결국 건강이 최고인 이유

이 글은 유튜브 ‘세금과 인생’ 라이브(2026. 5. 15.)에서 나눈 이야기를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영상은 글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미운 놈 죽는 거 보는 게 낙이다 (2026. 5. 15.)

안녕하십니까. 조세전문 변호사 고성춘입니다. 2026년 5월 15일 금요일입니다. 벌써 한 주가 다 갔네요. 월화수목금, 5일 동안 이렇게 영상을 찍습니다. 5일 내내 밤늦게까지 일을 했으니,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또 이렇게 영상을 찍습니다.

제 영상은 실시간 방송할 때 우르르 들어오는 영상이 아니고, 찍어 놓으면 보시는 분들이 두고두고 보는 영상입니다. 실시간으로 들어오시는 분들은 같이 하고요. 자, 오늘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영상 하나 찍고 끝내겠습니다.

오늘 주제는 ‘미운 놈 죽는 거 보는 게 낙이다’, 이렇게 돼 있어요.

간혹 어른들이 이런 말씀을 합니다. 옛날에 뽀빠이 이상용 씨가 시골을 돌아다니면서 인터뷰하는 프로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본 게 기억이 나요. 102세 되신 분한테 건강 비결이 뭡니까 하고 물으니, 그분은 어렵지 않게 말합니다. “지금까지 살았으니까 나도 모르지 뭐.” 그러다가 그동안 미운 사람도 많았을 텐데 그 사람들은 어땠습니까, 미워했습니까 하니까 “내, 지들이 먼저 죽대” 그러는 거예요. 다 70대에 죽었답니다. 그래서 지금은 자기 옆에 사람이 없답니다. 미운 사람은 빨리 죽는다는 거예요.

그 말을 제가 어떤 분한테 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누구를 좀 안 좋게 말씀하시더라고요. 학식도 있고 인격도 있으신 분인데,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한테 뭔가 기대를 가졌다가 그게 메아리 없이 돌아오니까 서운하셨던 거죠. 마음이 상해 안 좋아하시기에, 제가 위로하는 말로 “건강만 챙기십시오. 건강 챙기면 미운 놈은 빨리 죽는답니다. 건강하셔야 미운 놈 죽는 거 볼 것 아닙니까. 그게 낙이라고 합니다” 했더니, “아 그렇지, 그렇지” 하면서 고소해하시더라고요. “그렇지, 건강은 신경 써야지” 하시고요.

건강해야 다 지켜본다

건강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내가 건강해야 미운 사람이 죽나 안 죽나 그거 다 지켜볼 것 아닙니까. 그리고 미운 놈이 먼저 죽으면, “아, 내가 미운 짓 안 해야 되는구나” 그걸 절실하게 알 것 아닙니까. 관념적으로 아는 게 아니라 현실로 아는 거죠. 그런 걸 또 지혜로 다음 세대한테 말씀해 줄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일단은 건강하셔야 됩니다.

오늘 오신 분 중에 72세 되신 분이 있는데, 잘 아는 분인데 50대 같아요. 세상 일에 막 용을 쓰면서 살지 않으니까 그래요. 피부도 그렇고 얼굴에 주름살도 없어요. 누가 그분을 70세라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40대 후반, 50대로 봐도 됩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있다 칩시다. 돈을 더 중요시하겠습니까, 건강을 더 중요시하겠습니까. 당연히 건강이죠. 건강을 잃은 사람,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결론은 건강밖에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넉넉하다, 아직 남아 있다 생각하니까 너무 쉽게 봅니다. 공기가 없으면 그냥 질식사인데, 허공에 늘 있는 걸로 생각하니까 아쉬운 줄을 몰라요. 그게 한계효용이라는 겁니다. 부족해야 사람이 절실하게 느끼고, 그래야 효용 가치가 커지는 거예요.

‘위한다’는 말은 함부로 못 쓴다

그래서 인간관계에 내려오는 말이 불가근불가원입니다. 가깝게도 하지 말고 멀리도 하지 마라, 밀당을 잘하라는 식이죠. 사람이 뭐든지 다 해준다고 해서 상대가 그걸 고맙게 느끼는 게 아니에요. 아쉽게 해야 상대가 고마워합니다. 비즈니스 관계에서는 그게 아주 중요하더라고요. 변호사 생활을 좀 해보니까 비즈니스 관계가 상당히 중요해요. 트럼프라는 사람이 그 밀고 당기는 거래의 기술이 대단하더라고요. 달통한 사람이죠.

너무 아쉽게만 하면 천박하고 양아치 같고, 그런데 상대가 그걸 고마워하고 절실하게 받아들이게 하면서, 위해 주면서 칭찬도 받고 대가까지 받는 거,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교도소 담장 그 경계선을 걸어가듯이 대가도 받아가면서 남한테 좋은 말 듣고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거, 그거 진짜 예술입니다. 무조건 퍼주고 “나는 이만큼 줬는데 너는 왜 몰라줘” 하면 실망이 되고, 실망이 되면 기분 나빠지고, 기분 나빠지면 갈등이 생기고, 갈등이 생기면 분을 못 이깁니다.

분을 못 이기면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요. 평소에 10ppm으로 천천히 돌아가던 엔진이,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 분에 못 이기면 100ppm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연료 소모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우리가 가진 에너지가 그렇게 소모됩니다. 그게 끼니마다, 날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렇게 분해하고 미워하고 성질부리면 제 명을 못 삽니다. 미운 놈 상대하다가 내가 먼저 죽어요. 미운 놈 미워하다가 내가 먼저 죽는다니까요.

보살의 단계, 무한대의 사랑

그래서 이게 참 어려운 겁니다. 세상 살면서 좋은 사람보다 미워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게 현실 아닙니까. 인간이 아무리 현명해도 보살의 단계는 못 올라갑니다. 보살은 주는 것밖에 없어요. 자기 온몸을 다해 다 주고, 받는 건 대가가 아니라 그 사람의 고통을 대신 받아줍니다. 그러니까 무한대의 에너지를 가져야만 보살이 되는 거예요.

목사님이 기도할 때 하느님의 사랑을 말하고, 스님이 부처님의 자비를 말하잖아요. 사랑과 자비는 무한대입니다. 그 정도 단계가 돼야 “위해 준다”는 말이 가능해요. 나라를 위한다, 사회를 위한다, 배우자를 위한다, 자식을 위한다 — 이런 말은 무한대라는 조건이 충족될 때만 나옵니다.

그래서 내리사랑이라 하잖아요. 피는 위에서 밑으로 내려옵니다. 내 자식을 위할 때는 절대적인 사랑이라 무한대예요. 그러니까 부모 입장에선 “내가 너를 얼마나 위해 줬는데” 이런 말이 됩니다. 그런데 계속 퍼주기만 하면 자식은 그걸 사랑으로 안 느껴요. 당연한 걸로 느끼죠. 호의가 반복되면 권리가 됩니다. 권리가 되면 “내가 받을 당연한 권리인데 무슨 생색이냐”가 돼버려요. “엄마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는데” 이런 말까지 나옵니다.

그래도 무한대니까 위에서 주는 사랑은 그런 말을 들어도 기분 나쁘진 않아요. “저 자식” 하고 툭 털어버립니다. 내 자식을 원수처럼 미워할 수는 없잖아요. 실망은 해도 툭 털어버립니다. 그런데 거꾸로 자식이 부모한테는 서러워하면서 “엄마가 해준 게 뭐 있냐”고 나갈 수 있어요. 내 자식한테는 무한대가 되는데, 내 부모한테는 무한대가 안 돼요. 왜냐, 피가 위로는 안 흐르거든요. 부모를 존대한다는 건 역경계를 가는 겁니다. 순풍에 돛 단 듯 가는 게 아니라, 연어가 물을 거슬러 상류로 가야 하는, 그런 힘이 있어야만 부모를 존대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부모 부양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그나마 자식이 선하면, 부모 돌아가셨을 때 “그래도 우리 부모가 우리를 위해 고생했구나” 하고 깨닫는 것만 해도 대단한 거죠.

남녀의 정은 거래에 가깝다

그러니 ‘위한다’는 말은 진짜 아무나 쓸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사랑과 자비도 그래요. 남녀 간의 사랑은 사랑이라 할 수 없어요. 무한 리피트가 아니니까요. “내가 너를 좋아하니까 너도 나를 좋아해야지. 내가 위해 주는데 너는 왜 나한테 잘 안 해줘” 하면 그게 거래죠. 거래 조건이잖아요. 남녀의 육체적인 정, 이성에 끌리는 욕정에 따라 끌렸을 뿐인데 그걸 사랑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저 사람이 나한테 잘해 줄 것인가, 저 사람 조건이 내가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그렇게 따지면 그건 비즈니스 관계입니다. 그러니 얼마든지 헤어지는 거예요. 배우자는 무촌이라 하잖아요. 남이 만나 한 몸이 되는 거라 촌수가 있을 수가 없어요. 좋으려면 한없이 좋을 수 있는데, 나쁘려면 지극한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안 만나느니만 못한 경우가 생기는 거죠. 그래서 미운 놈이 됩니다. 내 자식 위하는 마음처럼만 했다면 배우자끼리 무슨 이혼이 생기겠습니까. 그게 안 되는 거죠.

내 임종을 지켜봐 줄 한 사람

사람이 살면서 만나는 인연이 수없잖아요. 그게 하나씩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과정이에요. 오래 지속했다고 해서 내가 죽을 때 임종을 볼 수 있는 인연이 되는가, 그 등식은 성립이 안 됩니다.

「나는 나답게 죽기로 했습니다」, 이게 일본의 어느 여성 의사가 쓴 책인데, 재택 호스피스 전문 의사더라고요. 이분이 그런 말을 자꾸 합니다. 내가 죽을 때 내 임종을 볼 수 있는 인연이 누굴까. 사람은 두 명만 있어도 공동체가 된답니다. 결국은 내 임종을 지켜봐 줄 딱 한 명만 있어도 그 사람은 잘 산 거래요.

자기는 4천 명 이상의 임종을 지켜본 의사인데도, 정작 자기가 누구의 임종을 지켜봐 주려고 마음을 먹어도 그게 쉽지 않답니다. 나중에 몸이 힘들어져 “집에서 죽겠다” 고집을 펴도, 너무 고통스러워지면 결국 시설로 입소를 권할 수밖에 없대요. 가족이 감당이 안 되니까요. 그런데 시설에 들어가면 거기엔 비상근 의사가 따로 있어서 자기가 왔다 갔다 할 수가 없고, 간호사가 “이 사람 곧 임종합니다, 얼른 오세요” 하고 전화해 줄 수도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무리 “꼭 저 사람 임종을 옆에서 봐 줘야지” 해도, 시설로 들어가면 일주일 지나 소식 듣는 경우가 태반이랍니다.

그러니까 마지막 순간에 일상생활 속에서 일상의 소리를 들으며 그대로 눈을 감을 수 있는 사람은 진짜 행복한 사람이래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드물다는 거 아닙니까. 현실적으로 드뭅니다. 사람들이 “나는 아직 더 살 수 있어” 생각하니까 마지막 순간을 의외로 못 챙기는 거예요.

나답게 살다 나답게 떠난다

마지막 갈 때를 대비해서 생각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행복하게 살아야죠. 그런데 행복하게 살려고 또 돈을 추구하면 또 에너지 소모를 해야 합니다. 이 의사 선생님이 볼 때는, 그냥 내가 나답게 사는 게 제일 행복한 거래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자기만 즐기는 것이 있었답니다. 외롭고 적적한 걸 못 견뎌 사람 찾아 장소 찾아 떠들고 다니는 게 아니라, 뭔가 독특한, 자기만 즐거워하는 게 꽉 있더라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창문에 조그만 꽃을 놔두고 가꾸는 걸 즐겼답니다. 거창한 취미가 아니라, 자기 일상 속에서 집중할 수 있는 그게 있다는 거죠. “세상이 무너져도 나는 사과나무 한 그루 심겠다”, 그게 바로 그 의미인 것 같아요. 화분에 수선화가 있으면 날마다 물을 줘야 하고, 크는 모습을 봐야 하고, 창문으로 햇볕 쬐면서 멍 때려도 그게 자기 낙이에요. 어디를 가더라도 그 조그만 화분을 꼭 가지고 다니고요.

그런 식으로 자기만의 개성을 가지고 자기답게, 살아온 결대로 사는 사람. 그러다 일상의 소리 속에서, 일상의 인연들 속에서, 그것도 집에서 눈 감는 것. 이 의사가 볼 때는 그게 가장 멋진 삶이었다고 표현하더라고요. 사람은 자기 결대로 살다가 간다는 거예요.

이 책을 보면 1장이 ‘사람이 죽기 전에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2장이 ‘사람은 살아온 대로 죽어간다’로 돼 있더라고요. 무언가에 집착을 하면 그 집착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못 떠납니다. 그래서 이분은 “정말 좋아하는 게 뭐냐”를 자꾸 되묻습니다. 싫어하고 좋아하고, 이거 하고 싶고 저거 하고 싶고가 아니라,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뭐냐를요. 우리 구독자분들은 최소가 60 이상이잖아요. 그러니 됨됨이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허세는 바람 든 풍선이다

그리고 허세를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허세를 부리려다 보면 에너지 소모를 많이 하게 돼요. 풍선에 바람을 팍 넣어 띄우는 것과 같아서, 그 풍선 터져 버리면 꽝인데 그걸 모르고 가오 잡으려는 게 허세잖아요. 허세 부리는 것도 에너지 소모가 엄청난 겁니다. 그러니 느긋하게 생각해야 하고, 무엇에도 마음을 뺏기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을 뺏긴다는 건 내가 거기 빨려 들어가 나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거예요.

마음의 안방을 아무에게나 내주지 마라

지금 우리 대한민국 현실이 자정 능력을 거의 상실하기 직전입니다. 어제 제 영상 댓글에도 어떤 분이 “내가 자정 능력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그거 인정해야 됩니다” 하니까, 거기에 기분이 나빴는지 영상을 꺼버렸다고 화를 내며 댓글을 남기더라고요. 그래도 현실을 어떻게 도외시하겠습니까. 내 목숨이 달려 있고, 내 생존이 달려 있고, 자식 세대의 미래가 달려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무시합니까.

현실로부터 도피하라는 게 아니에요.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매달리지 말고, 차라리 독을 물속에 탁 던져 넣으라는 겁니다. 현실 속에 풍덩 들어가 버리되, 중요한 건 나 혼자 고민하다 에너지를 소진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에너지가 고갈되면 마음이 비틀어지고 매말라집니다. 매말라지면 뭐든 보는 게 예민해지고 신경질이 나요. 나라를 위한다면서 내 신경만 예민해지면, 옆 사람이 피곤합니다. 그런 사람 곁에선 가장 가까운 배우자나 자녀가 더 피곤해요. 걱정도 팔자라고, 너무 에너지를 다 소진해 가며 걱정한다고 나라가 나아지는 게 아닙니다. 현실은 냉철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정치하는 사람들이 돈 받고 링에 올라가 홍코너 청코너로 치고받아야 하는데, 자기들끼리는 안 싸우고 링에도 안 올라가 버려요. 그런데 관객이 입장료 내고 들어와서 자기들끼리 링에 올라가 싸우면 그게 무슨 복싱 경기입니까. 개판이고 패싸움이죠. 그러니 고민도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내 마음이 사막이 될 정도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것도 습관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나라도 웃어야 한다

사람은 살아온 결대로 죽는다고 하잖아요. 이럴 때일수록 나라도 웃어야 합니다. 철없이 웃고, 내 건강 더 챙기고, 무언가에 집중해야 해요. 그런데 너무 몰입하는 것도 한이 됩니다. 한이 되면 못 빠져나와요. 집중은 좋은데 거기서 못 빠져나오면 그것도 하나의 구속이 돼버립니다. 위한다고 고민하고 걱정하는 게 좋은 게 아니에요.

합격은 걱정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합격할 만큼 공부를 해야 되는 겁니다. 원인을 제대로 줘야 해요. 원인을 잘못 주고 결과를 바라면 괴롭기만 하죠. 저도 그런 어리석음을 많이 느꼈거든요. 그 냉철함을 한 번 딱 깨달았을 때 그다음에 합격하게 되더라고요. 감성으로, 감정으로 바라볼 일이 아닙니다. 이럴 때일수록요.

편 가르면 개싸움, 남는 건 피뿐

“왜 대한민국 현실이 이렇게 돼버렸을까” 하고 보면, 비정상이 정상인 것처럼 되고, 잘못한 사람들이 오히려 잘 사는 세상처럼 느껴지니까 환장하죠. 이러면 “나라가 어떻게 이렇게 됐냐” 성질이 나잖아요. 그런데 또 반대편에서는 “무슨 소리냐, 잘 나가고 있는데” 합니다. 그런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면 대화가 안 돼요. 열만 받습니다.

왜 그러냐면, 지력이 좀 부족하면 집단으로 기어 들어간대요. 편으로 들어가는 거죠. 내 편 네 편 갈라서 “이것 봐라” 하면 결국 편싸움이 됩니다. 사냥개끼리 으르렁대며 서로 물어뜯으면 남는 게 뭐 있습니까. 피밖에 없죠. 그러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내가 세상을 바꾸겠다는 그 마음을 좀 놔야 해요. 내가 걱정해서 세상이 바뀐다면 진작 내 인생이 바뀌었겠죠. 배우자가 마음에 안 들어 걱정하면 배우자가 탁 바뀌고, 돈이 부족해 걱정하면 돈이 탁 생기고, 승진 못 해 걱정하면 승진이 탁 되고. 모든 인간한테 그런 일이 벌어집니까. 안 벌어져요.

현실을 너무 많이 보면 지칩니다. 지력이 높아지고 눈이 밝아질 것 같죠? 안 그래요. 지쳐요. 머리가 빙빙 돌면 잠을 못 자고, 그 시간 놓치면 또 밤새우고, 리듬이 깨집니다. 리듬이 깨지면 건강을 잃고, 건강을 잃으면 신경이 예민해지고, 예민해지면 누가 뭘 해도 나를 무시하는 것 같고 벌레 보듯 쳐다보는 것 같고, 혼자 망상에 빠져버려요. 그러니 계속 악순환입니다.

세포가 “주인님, 하루만 조용히 삽시다” 한다

그래서 자꾸 내 자신을 쉬게 해줘야 합니다. 잠도 푹 자야 하고요. 누워야 간이 쉬잖아요. 24시간 전투 상태로, “대한민국이 침몰한다”며 비상 걸어놓고 경계를 선들 며칠이나 가겠습니까. 못 버텨요. 내가 피곤하지 않아야 나라도 잘되는 겁니다. 내 가정이 잘되고 처자식한테 대접받아야죠. 내가 피곤하면 어디서도 대접 못 받아요. 그러니 세상을 먼저 바꾸려 하기보다 내 안의 비상경계부터 해제시켜 줘야 합니다. 내무반에서 좀 쉬게 해줘야 해요.

어떤 의사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이제는 뒹굴뒹굴하는 게 오히려 건강에 좋다고요. 나이 들수록 에너지 소모가 많아지고 몸은 쇠약해지니까, 옛날처럼 움직이지 말고 가끔 뒹굴뒹굴 게으른 것도 건강의 비결이라는 거예요. 국가대표 코치 같은 사람들이 나이 먹고 나와서 심장마비로 급사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가, 자기 운동선수 때 생각만 하는 거예요. 옛날엔 한 달이면 몸을 확 끌어올렸으니 이번에도 그러려다, 자기가 50대인 걸 잊어버리고 급사하는 거죠. 다 자기 성질 못 이겨 죽는 겁니다.

저는 솔직히 우리 구독자분들이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 제 영상을 봐 주실 것 아닙니까. 저같이 홀로 사는 사람, 인연 안 만들고 사는 사람한테는 이게 유일한 소통의 통로예요. 여러분이 봐 주셔야 하지, 나 혼자 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 ‘세금과 인생’ 구독자분들은 건강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모토는 늘 건강입니다.

세포가 퍼지면 그게 병이다

그러려면 정신의 점유율을 줄여야 합니다. 현실이 내 정신에 들어와 땅따먹기 하듯 점유하는 걸 줄여줘야 해요. “너 평소엔 다섯 평짜리면서 함부로 30평까지 점유하려 하지 마라” 이렇게요. 그러려면 모든 뉴스를 다 따라 보지 말아야 합니다. 보면 당연히 신경질 나는데 뭐 하러 봅니까. 그런데 습관적으로 틀어놔요. 식당이나 대기실에서 의도적으로 틀어놓는 데는 안 가면 되고, 가더라도 안 보면 됩니다.

나이 드신 분들은 보청기도 안 끼고 큰 소리로 정치 영상을 듣다가, 다 보고 나면 욕을 하시거든요. 그러면 오늘 또 증오 대상을 하나 더 만든 거예요. 증오할 대상을 만들면 화를 내야 하고, 또 에너지를 소진해 버립니다. 하루 일당이 정해져 있는데 자꾸 가불을 하는 거죠. 세포들이 “주인님, 제발 그만 가불하세요. 우리 죽습니다” 하는데, “내가 주인인데 달라면 줘야지” 하고 계속 밟으면, 세포가 참다 참다 퍼져버립니다. 그게 암이라니까요. 세포가 그렇게 경고를 주는 거예요. 하지 말라고.

정의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일수록

편을 나눠 막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의’ 같은 단어에 속을 필요도 없고요. 정작 정의 정의 하는 사람들이 그 단어 속에 자기 열등감과 지력 부족을 숨기는 경우가 많아요. 아무것도 없는데 허세는 세고, 주인 노릇은 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그러는 거죠. 그러니 짠하다 하고 넘기면 됩니다.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을 정상인처럼 상대하면 나도 같이 휩쓸려요. 답이 안 나옵니다.

내가 무슨 심판자도 아닌데 뭘 안다고 그럽니까. 알아봐야 자기 경험 팔기죠. 그릇이 정해져 있는데 우주를 담는 사람하고 게임이 되겠습니까. 그럴 땐 움직여야 합니다. 햇빛을 보고, 아침 바람을 맞고 — 그래서 자연이 좋다는 거죠. 아니면 독서를 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방에서 그냥 뒹굴든지. 그렇게 해야 에너지 관리가 되면서 오래 버틸 수 있어요. 오래 버텨야 에너지가 마르지 않고, 그래야 70이 넘어도 40대 50대처럼 보이는 거죠. 일단 몸에 염증이 덜 생깁니다.

분노해서, 미운 사람 자꾸 만들어내 봐야 나만 손해예요. 현실은 바뀌지도 않는데 불평불만 해봐야 내 세포만 먼저 죽습니다. 결국 불평불만 해봐야 경제적 약자부터 죽는 거고요. 걱정은 하되 도피하라는 게 아니라, 지혜롭고 냉철하게 하자는 겁니다. 사람을 쫓고 우상화하지 않는 것만 해도 현실이 빨리 다가옵니다. 내가 건강하고, 나라도 한 번 더 웃으면, 내가 원하는 현실이 더 빨리 다가올 수 있어요.

경계가 일어나도 그 마음에 뺏기지 마십시오. 좋은 거든 나쁜 거든 잡으려는 순간 헤어나지 못합니다. 수행자들한테도 “경계가 좋든 나쁘든 잡으려 하지 마라” 하는 이유가 그겁니다. 마음에 끌려다니면 노예밖에 안 돼요. 세상을 끊으라는 게 아니라, 우리가 좀 지혜로워야 한다는 겁니다.

어차피 모두 죽음을 향해 간다

「나는 나답게 죽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죽음을 향해 가는 시간인데 분노할 게 뭐 있고 걱정할 게 뭐 있습니까. 다 기다리는 수밖에 없죠. 어차피 인생의 고통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게 아닙니다. 대한민국도 공업(共業)이 있는 거예요. 국민의 공업이 있으니 원인이 있고,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그렇게 가는 거죠. 밑바닥에 흙탕물이 확 일었다가도, 한번 일고 나면 또 가라앉습니다. 지금처럼 사냥개가 날뛰는 때는 그들이 지치기를 바라는 수밖에요.

자, 한 시간 넘었네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댓글 좀 읽고 끝내겠습니다.

— “긴축으로 빚을 줄여야 좋은 나라가 되는데, 표를 위해 추경으로 돈을 풀면 돈 가치는 떨어지고 경제는 개판이 된다.” 맞는 말씀입니다. 경제를 가르쳤다는 사람들이 하는 사고가 그 정도니, 이제는 누구나 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예요.

— “오의 경계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일체상에 얽매이거나 끌려가 집착하지 않기를 마음 내야겠습니다. 인생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어떤 분이 “심플한 동네 집에서 새소리, 꽃 화단 즐기며 낮잠 자듯 가고 싶다” 하셨는데, 이게 바로 ‘나답게 죽기’예요. 일상의 소리 속에서 죽는 줄도 모르고 가는 거죠.

— “자기 삶의 방식을 정해 놓고 늘 그렇게 되려고 매진하면 자기 뜻대로의 삶을 이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강주 님은 현직 의사 선생님이신데, 70이 넘으셨어도 100여 km를 달려 포천 의료원까지 가서 활동하십니다. “체력 믿고 활동하면 피곤함에 장사 없다, 쉬면서 살아야 건강하게 늙는다”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 “돈 아무리 많아도 건강 없으면 소용없죠.” 오늘 오신, 70 넘어도 50처럼 보이는 그분의 친구는 천억대 재산에 건물이 세 채 있었는데도 65세에 갔답니다. 자식 넷이 결국 싸우고요. 천억이 있었으면 뭐 합니까. 그 천억을 쉽게 벌었겠습니까.

— “어떻게 해야 중생의 산란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묻는 것 자체가 벌써 반문(反問)입니다. 내가 나한테 묻는 거죠. 반문문성(反聞聞性)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게 어떤 경지를 증득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합니다. 좋은 소리 — 파도 소리, 산 소리, 새소리를 듣고, 그 듣고 좋아하는 마음을 다시 안으로 되묻는 게 반문성이에요.

함께하신 모든 분들, 편안한 밤 되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저도 이제 퇴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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