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손처분하면 생각나는 어느 할머니 이야기다. 2006년 일이다. 사무실 문에서 서성거리는 할머니가 있었다. 여기가 법무과 맞냐고 직원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직원들은 다들 바쁘기 때문에 할머니 말에 일일이 대답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 사무실 문밖을 나서면서 우연히 이 장면을 목격하였다. “여기가 법무과 맞아요?” “네. 할머니 무슨 일로 오셨어요?” 그러자 할머니는 세무서에서 여기 법무과로 가보라고 해서 왔다면서 장황하게 사연을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억울하다는 표현은 확실한데 무슨 이유인지는 차분히 들어봐야 했다. 그러니 직원들이 선뜻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세금때문에 온 민원인들을 상대하는 게 쉽지 않다. 항상 억울하다고 하소연하기 때문이다. 남의 하소연 들어주는 게 힘든 일이다. 게다가 그중에는 따지고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이 있기때문에 경험상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더구나 법무과는 민원인을 상대하는 곳이 아니다. 결국 할머니를 상대하는 게 내 몫이 돼버렸다. “할머니 이리 오세요.” 하면서 방으로 모시고 갔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들어봤다. 내용인즉 할아버지가 생전에 집을 팔았는데 양도소득세를 신고도 하지 않고 납부도 하지 않고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세금을 할머니에게 내라고 하면서 예금을 압류했다고 한다. 예금액수는 350만원이다. 할머니는 “나는 그 돈 없으면 죽어.”라고 연신 애처롭게 하소연하였다. “할머니 상속포기를 하지 않으셨어요?” 할머니에게 그 대답을 듣는 것은 기대할 수 없지만 일단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할아버지의 조세채무가 할머니에게 승계되어 할머니가 체납자로 분류되어 있었다. 근데 350만원은 손녀가 한달에 5만원씩 주는 돈을 모은 것이었다. 사정은 딱해 보였지만 언뜻 보기에는 세무서 압류처분에는 하자가 없어보였다. 체납자가 되면 재산을 조사하여 압류해야 하는 게 맞기 때문이다. 세무서는 적법하게 일을 했지만 할머니 사정이 딱하여 법무과라도 가보면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 있지 않겠냐는 심정으로 보낸 것 같았다. 당시 법무과가 사건을 잘 인용해준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과세처분 한 것을 불복으로 취소해주는 것을 인용이라고 한다. 나 혼자 상담할 일이 아닌 것 같아 실력있는 직원 한분을 불렀다. 그와 같이 할머니 사정을 듣고 어떻게 구제해 줄 수 없는지 고민을 해봤다. 일단 사정이 딱하니 위해주고 싶었고, 350만원 정도는 압류를 하지 않아도 국세행정에 지장이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근거없이 무작정 해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세법이 엄격하기 때문이다. 누구 사정 봐주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게 세금이다. 모두들 억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구제마인드로 봐서 그런지 쉽게 해결책을 찾았다. 압류처분이 잘못되었다. 할아버지 결손처분 당시의 세법을 적용해야 하는데 현재의 세법을 적용한 잘못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손처분이 2000년에 개정된 것을 세무서에선 몰랐던 것이다. 원래 결손처분 당시 존재한 재산에 한해서만 압류할 수 있었는데 2000년 개정으로 모든 재산에 대해서도 새로 압류가 가능한 것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세무서는 개정된 세법에 따라 압류를 했던 것이고 적법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세법을 잘못 적용한 위법한 압류였다. 350만원 예금은 할아버지 결손처분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재산이기 때문에 개정전 세법으로는 새로 발견되었다 해서 압류할 수 없다. 할머니 사정이 짠해서 위해주는 마음으로 세법을 들여다보면 이런 하자도 발견할 수 있었다.
고시공부할 때 ‘행정처분의 위법성을 논하라’는 행정법 시험문제를 보고 잔뜩 위법성만 논해서 과락을 맞은 적이 있었다. 구제마인드가 없다 보니 구제를 적지 않았던 것이다. 위법성을 논하라는 의미는 결국 억울한 사람을 구제하라는 말인데도 이를 알지 못했으니 당연히 과락이었다. 그러나 고시를 오래 하다보니 어느 순간 책 속의 내용들이 모두 내 일 같이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자타불이(自他不二)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시점에 고시를 1, 2차 동시에 합격하였다. 사람의 행불행은 확실히 관점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 똑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어떤 이는 부정으로 보고 어떤 이는 긍정으로 본다. 기분나쁜 말을 듣더라도 어떤 이는 분해서 칼들고 달라들고 어떤 이는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고 넘어간다. 그래서 부정적 시각이나 냉소가 안 좋다는 것이다. 몽골을 갔더니 몽골 사람이 올 해 우리나라 겨울에 와서 얼어 죽을 뻔 했다고 말했다. “몽골이 더 춥잖아요?”라고 묻자 한국은 습기가 있어서 더 춥다고 하였다. 몽골 겨울이 영하 30~40도가 되어도 습기가 없는데 한국은 영하 15~20도여도 습기가 있어서 더 춥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습기가 있으면 추위가 폐부 깊숙하게 들어간다고 한다. 그만큼 습한 게 사람 몸에 좋지 않다. 냉소, 부정, 피해의식, 시기, 질투 이런 것들이 다 습한 것에 해당한다. 이런 습한 기운들은 폐부 깊숙히 침투해서 건강을 해친다.
위하는 마음을 내거나 남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기가 쉽지 않지만 진리가 너와 나의 구별이 없다고 하니 함부로 무시할 일은 아니다.
결론은 할머니를 이의신청을 하게하여 그 달 이의신청위원회에서 인용결정을 내려 압류를 해제하였다. 그 후로 생계형 납세자들에 대한 징수행정에 따뜻한 배려가 들어가도록 사례를 모아 서울청장님에게 간곡하게 보고를 하여 지침으로나마 생계형 납세자들에게 따뜻한 징수행정이 되게끔 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