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정위가 시멘트제조업체 성신양회의 법 위반에 대한 과징금 437억 원을 부과했다가 김앤장 변호사가 제출한 허위자료에 근거하여 50%나 되는 수백억 원을 깎아줬다고 한다. 이런 사실이 최근 공정위 국감에서 박선숙 의원에 의하여 밝혀졌다고 하는데 은밀한 속살이 드러났다는 게 더 놀랍다. 공정위는 이런 이유로 대한변호사협회에 김앤장 변호사에 대하여 징계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볼 땐 김앤장 변호사 개인의 일탈로만 국한시키고자 애를 쓰는 모습으로 보인다. 또 하나 의문은 공정위가 과연 허위자료인줄 몰랐는가 싶다. 과징금 부과액을 미리 비용으로 반영한 재무제표를 제출한 사례가 이번이 처음이 아닐 듯싶고, 감면신청을 심사하는 공정위 담당부서에는 그런 사실을 검증하는 게 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더구나 공정위 직원은 오히려 김앤장 변호사에게 이런 자료를 근거로 해서 감면 신청하라고 전화까지 친절하게 해줬다고 한다.
그래서 과연 이런 일이 이번 한번뿐일까 의문이 든다. 나에게 이런 의문을 확인하기 위해 공정위를 감사해보라고 한다면 공정위가 그동안 과징금을 부과 해놓고 재무제표가 적자라는 이유로 과징금을 감면해 준 사례들을 일단 추려낼 것이다. 그리고 과징금을 비용(잡손실)으로 처리한 재무제표가 있었는지 확인해볼 것이다.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그렇게 해서 감면해준 사례가 만일 여러 개 나온다면 공정위 일개 직원의 실수로 보기보다는 실수를 가장한 고의라고 의심이 들 것이다. 이런 사례가 누적되었다면 모럴헤저드가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감사원 재직 시 우리나라 외환위기를 감사해본 결과 외환위기가 오게 된 이유가 규정 따로 관행 따로였다. 규정은 있어도 의미가 없었다. 관행이 우선이었다. 모럴헤저드는 관행 속에서 싹텄고, 결국 국가 하나를 거덜 나게 만들어 수많은 선량한 시민들이 직장을 잃고 가정이 깨지면서 돈이 최고라는 물질주의가 국민들 모두의 뇌리에 각인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공정위 사건 보도를 접하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로펌이 거악의 축이라고 떠도는 말의 속살이 살짝 드러나지 않았나 싶다. 로펌이 기업의 이익을 위해 허위자료를 내주는 게 과연 이번 한번 뿐인지 의문이 든다. 공정위 사건에는 몇 가지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1. 불복사건이다.
2. 허위자료가 작성되었다.
3. 허위자료가 국가기관에 제출된다.
4. 허위자료에 근거하여 국가기관은 판단을 한다.
5. 전관이 존재한다.
6. 국가기관의 공무원은 이상하게 검증도 하지 않고 다 인정해준다.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존재한다.
1. 허위자료 작성을 누가 했을까? 기업 스스로 알아서 했을까 아니면 로펌이 시켜서 했을까?
2. 로펌 변호사 혼자만이 한 일이었을까?
3. 국가기관은 진짜로 허위자료인줄 몰랐을까?
4. 전관과 현직 공무원 사이에 유착은 없었을까?
나 역시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수천억 대의 세금감면을 받은 사건인데 기업의 허위자료가 제출되어 기업이 승소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여기에도 공정위 사건과 마찬가지로 몇 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
1. 불복사건이다.
2. 누군가 허위자료를 작성하였다.
3. 이러한 허위자료가 국가기관에 제출되었다.
4. 로펌은 이러한 자료에 근거하여 주장을 하였다.
5. 국가기관은 이 자료에 의하여 판단을 해줬다.
6. 국가기관의 공무원은 이상하게 검증도 하지 않고 다 인정해줬다.
단지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공정위 사건에선 허위자료를 로펌이 제출했으나 이 사건에서 공무원이 제출해줬다는 것이다. 법원에 제출할 의무도 없고 책임도 없는데 스스로 친절을 베풀어 그것도 허위자료를 제출해줬다는 게 문제핵심이다. 나에게는 수천억 원의 세금소송을 일부러 져주기 위해 해줬다고 의심사기에 충분한 일이다. 이런 사실을 서면으로 법원에 제출하고 관련 기관장들에게 사실 확인을 해보라고 말해봤지만 메아리가 없다. 그러다보니 허위자료라는 사실을 입증했음에도 2심 법원은 별일 아니라는 식이다. 현재는 대법원 계류 중이지만 나는 승패를 떠나 국가기관의 민낯을 봤다. 돈은 사람을 얼마든지 춤추게 한다는 것을 그동안 세금사건을 숱하게 하면서 익히 겪어본 결과 결국 시간이 지나면 사실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사건에는 비밀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단 소송에서 승소해버리면 된다는 식으로 전략을 세우고 애를 쓰고 있는 듯하다.
어느 검찰 고위간부로부터 들은 말이다. ‘검찰은 들켜서 두드려 맞는 거라도 있지만 법원은 판결문 뒤로 숨어버리면 방법이 없다.’ 최근 법원 판결에 대해 사법부 신뢰를 우려하는 여론이 커지자 대법원장이 한마디 하였다.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지 말라고. 근데 대법원장이 작심하고 발언할 만한 일인지 의아하다. 신뢰와 권위는 스스로 만드는 게 아니라 남이 인정해줘야 하는 것이다. 여론을 겸허히 귀 담으면 되는 것을 기분나빠한다는 것은 그만큼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의미다. 권위를 내세우고 좋은 말을 내세우는 이들이 의외로 위선을 범하기 쉽다. 공자님 일화가 있다. 공자가 길을 가다가 길 가장자리에서 똥 누는 이를 발견하고 나무랬다. 그리고 길을 계속 가다가 또 똥 누는 이를 보았는데 이번에는 길가가 아니라 한가운데였다. 그런데 공자는 이번에는 나무라기는커녕 그냥 아무 말 없이 지나갔다. 의아해하던 제자들이 물었다. “왜 나무라지를 않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저 사람은 가르쳐서 될 게 아니다.” 그나마 길가에서 용변을 보는 이는 부끄러움을 알기 때문에 가르치면 자기 잘못을 고칠 수 있지만 길 가운데에서 용변을 보는 이는 뻔뻔하기 때문에 가르친다 해서 고쳐질 일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성공의 비결이 인성이라고 한다. 이만큼 인성은 가르쳐서 될 일이 아니다.
공직자가 뻔뻔해지면 나라가 거덜 난다. 공직도 얻고 돈도 버는 시대는 지났다. 옷만 벗으면 전관예우를 받아 큰돈을 번다는 인식 자체가 고루한 것이다. 시대는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 로펌은 돈만 받으면 무슨 일이든 하고, 공직자는 전관을 통하면 봐주고 모르는 사람이 하면 칼같이 하고, 법원도 사심을 가지고 재판을 하면 공직의 신뢰는 결코 얻을 수 없다. 비판한다고 불만을 말하기 전에 공직자 스스로 신뢰를 만들어내야 한다. 공직자들은 최소한 부끄러움을 아는 양심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