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과세가 죽음을 불러올 수 있다.
예전에 했던 이의신청사건들을 몇 건 떠들어보다가 사건하나에 눈길이 멈췄다. 아직도 의견 진술하러 온 할아버지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탈세제보로 과세가 된 사건이었다. 대체로 탈세제보에 의한 과세사건들을 보면 바로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제보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프다’는 속담이 있듯이 대학생인 아들 명의로 아파트를 샀더니 돈도 없는 아들이 어떻게 아파트를 살수 있냐면서 이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증여한 것이 틀림없다고 탈세제보를 하는 경우도 있고 술집의 경우와 주인과 직원이 같이 잘 일하다가 어느 순간 돈 문제로 이해관계가 대립되어서 해코지 하는 식으로 종업원이 탈세제보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 사건도 그런 케이스였다. 70이 넘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공동으로 사업한 것으로 보고 과세하였는데 그 할아버지는 아는 할머니와 함께 시장에서 상인들을 상대로 단란주점을 오랫동안 해오다가 사위와 처남에게 물려줬다고 주장했지만, 매출누락탈세제보에 따라 실제사업자는 두 사람으로 보고 과세하였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매출누락금액을 산정하는 방법이 참 희한했다. 주방에서 매일매일 안주와 술이 나간 것을 기재한 장부에 적힌 수량에다가 세금을 과세한 년도의 가격으로 일괄적으로 곱한 가액을 수입금액으로 삼았는데 문제는 그 이전 5년까지의 수입금액도 그런 식으로 계산했다는 점이다. 그러니 청구인이 당연히 불복할 수밖에 없었다.
청구인은 맥주나 안주 값이 해년마다 가격변동이 있었는데 어떻게 가장 최근 값으로 일률적으로 곱하느냐고 주장했다.
자그마치 세금이 20억이 넘었다. 단란주점이라면 이렇게까지는 나오지 않지만 유흥주점이라면 유흥음식대금의 20%에 해당하는 특별소비세와 교육세까지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말이 비껴나갔지만 다시 본론으로 이야기하자면 법무과 의견은 재조사로 하였다. 처분청의 조사가 부실한 단적인 예로서, 이의신청단계에서 인용하기는 심리담당자 입장에선 심리적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지금이야 국세행정실명제가 시행되어 부실과세를 견제하고 있지만 그 사건을 심리할 때만 해도 그런 제도가 나오기 전이었다. 부실과세이긴 한데 이의신청단계에서 액수도 크므로 쉽게 인용해주기는 그렇고 따라서 재조사로 의견을 개진할 수밖에 없는데, 조사국에서는 또 재조사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하니 담당자입장에선 샌드위치입장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사하는 사람은 부실과세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세액이 많이 과세되었다 해서 자기 실적으로 잡혀 플러스를 받고, 그것을 인용해주는 법무과 입장에선 부당과세를 잘 견제했다고 칭찬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액수 큰 것을 인용시켰다고 눈치 주는 경우라면 담당자는 피박을 쓰지 않으려고 소극적으로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는 국세행정실명제 정착으로 모든 게 다 정상으로 움직여가야 할 것이다.
이의신청회의가 열렸을 때 의견진술인으로 참석하여 위원회에서 진술했던 할아버지의 말을 대략 기억나는 대로 적어본다.
“저는 72세이고, 동업자인 할머니는 78세로 나이가 많습니다. 이렇게 늙은이가 이런 자리에 나오게 된 것이 부끄럽습니다. 정말 나오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나왔습니다. 동업자는 이 번 일로 상심을 하던 끝에 지난 일요일 쓰러진 후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나보고 쓰러지지 말라 하더니 끝내 먼저 가고 말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제기 이렇게 부끄러운 자리에 나와서 하소연합니다. 좀 봐 주십시오.
우리 두 늙은이가 오랫동안 술장사를 해도 세금 안낸 적도 없고, 남한테 해를 입히고 살아오지는 않았습니다. 데리고 있던 사람 중에 고약한 사람이 있어 투서를 한 모양입니다만, 사실 우리는 늙어 가게를 젊은 사람한테 맡겼기 때문에 세금신고를 적게 했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세금을 적게 신고했다면 우리 잘못입니다. 그러나 고의로 세금을 탈세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적은 없습니다. 또 그동안 아이엠에프다, 불경기다 해서 술값을 오히려 내려 받은 때도 있는데, 5년 동안 술값을 일률적으로 적용하여 세금을 매긴 것은 정말 억울합니다. 이 부분은 정말 여러분들이 다시 한 번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거기다가 술집을 해본 사람은 아시겠지만, 하루 저녁에 안주 한 두개 맥주 몇 병씩은 서비스로 제공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 점도 깊이 살펴 주십시오. 늙은이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하소연합니다. 가진 것 다 팔아 우선 세금이라도 내야겠다고 얼마 전에 24억이나 되는 세금 다 냈습니다. 죽기 전에 빚이라도 정리하고 갈 수 있도록 좀 도와주십시오.”
깜짝 놀랐다.
할머니가 죽었다니. 과장해서 말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세금 때문에 신경 쓰다가 돌아가신 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이 든 것은 유흥주점관련사건에선 청구인들이 대체로 나는 실제사업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기 마련인데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그런 주장을 전혀 안했다. 현재 사업자명의로 되어있는 사람들이 결국 사위나 동서 등 가족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라서 자기들이 총대를 메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조사국의 조사반장도 위원회에 출석하여 진술하였다. 그도 자기들이 좀 과하게 과세했다는 점을 시인하였다.
결국 심의결과 재조사로 결정되었다.
맥주나 양주, 안주가 한 병 또는 한 접시 당 얼마를 받았는지 확인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맥주는 1병당 3500원, 양주 1병 당(360ml, 500ml, 700ml 구분이 없이 일률적으로) 6만원, 안주 한 접시 당 일반안주는 2만5천원, 특별안주는 3만원으로 계산(매출수량 옆에 연필로 누군가가 계산해 놓은 것이다. 아마 탈세 제보한 직원이 해놨을 가능성이 크다.) 해서 5년간의 매출누락금액을 산정한 것은 무리한 과세이므로 합리적인 기준을 정하여 결정하라는 내용이었다.
그에 따라 맥주 값과 안주 값은 청구인이 주장한대로 5억 넘게 감액을 해줬는데 양주 값은 수량만 확인되지 가격은 확인되지 않는다 해서 세무조사시 확보한 최근 3개월 동안의 양주판매전표상의 양주병규격인 대(大)· 중(中) ·소(小) 에서 “중”짜리 양주 값으로 5년 동안의 양주판매수량에 일괄 적용하여 다시 과세하였다.
청구인은 다시 불복하였고 이에 대하여 국세심판원은 인용결정(△23,523,116원)을 내렸다.
결정내용은 다음과 같다.
0 심리 및 판단부분(요약)
– 처분청의 이 건 양주판매량수량 (14,246병)에 대하여 양주의 소 · 중 · 대 규격별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간 판매단가를 일괄 적용하여 양주매출액을 추계경정한 것은 법 소정의 추계방법 중 어느 하나에도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고, 장기간이 경과한 시점에서 처분청이 동업자권형 등 새로운 방법에 의하여 이 건 양주매출액을 다시 재조사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반면, 동 사업장의 최근 1.5개월 상당의 판매된 양주자료(320병)에 의하여 규격별 판매자료(소: 34.4%, 중: 53.7%, 대:11.9%)가 객관적으로 확인되므로, 이들 규격별 판매구성 비율을 각 과세기간의 양주매출수량(14,246병)에 동일하게 적용하여 매출누락금액을 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인정되므로,
처분청이 양주판매단가를 중의 단가로 일괄 적용하여 과세 한 이 건 처분은 잘못이 있는 것으로 판단됨.
과세하는 입장에선 현금업소에 대해서 나름대로 이렇게 어려움이 있다고 하소연할 수 있지만, 반대로 납세자입장을 생각한다면 그들에게는 생존이 달려있는 문제이므로 추계방법이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점은 더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요즘 사회에선 옛날과 달리 국가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의욕이 앞선다면 도청하는 게 제일 쉬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정당성을 내세운다 해도 절차를 거치지 않는 국가권력의 행사는 현대문명사회에선 용납할 수 없다. 결국 조사자나 수사관들이 길목에서 기다리는 지혜로 과세요건사실에 맞춰 입증자료를 확보하는 실력을 키우는 게 국가나 납세자를 위하는 길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