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에 걸리는 데요
http://www.segye.com/newsView/20140527005188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해양경찰의 무사안일에 대하여 국민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언론은 해양경찰에 국한하지 않고 우리나라 공무원 사회의 뿌리 깊은 보신주의와 ‘무사안일’에 대하여 연일 집중조명하고 있다. 그중 어느 언론의 분석기사가 눈에 띄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공무원 1000명을 대상으로 행정에 관한 인식조사를 한 결과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의 원인으로 ‘잘못되면 책임지게 돼서’란 답변이 35.4%로 가장 많았고 ‘보상이 미흡해서’(15.1%), ‘합법성 위주의 감사 때문’(14.5%) 등으로 나왔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감사에 걸릴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감사원과 국세청에 있으면서 직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감사에 걸리는 데요.”였다.
서울지방국세청 법무과장으로 이의신청 업무를 5년 동안 담당해본 적이 있었다. 조사관서의 과세처분에 불만이 있는 납세자가 지방국세청장에게 다시 한 번 고려해달라고 요청하는 게 이의신청이고 그 업무를 법무과에서 담당하였다. 직원들마다 차이가 있지만 유독 기각으로만 결재를 올리는 직원들도 있었다. 그들의 논리는 “납세자 주장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냥 기각해주십시오. 감사에 걸립니다.”라는 게 주된 이유였다. “과세처분을 취소하는 인용의견을 내어서 감사에 걸린다면 과장이 먼저 걸리는데 왜 감사를 신경 씁니까? 우리는 법리대로만 하면 되는데요.” 조직생활 초창기에는 이런 직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직원과 감정이 상하는 우를 범하곤 하였다. 그러나 조직생활에 익숙해지자 왜 직원들이 감사를 두려워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감사를 하는 사람들도 사람인지라 부실감사의 비율이 항상 존재한다. 생사람 잡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일을 제대로 잘하고 있음에도 잘못했다고 감사지적을 하면 어떻게 될까? 이미 내려진 인사경고 등의 불이익이 환원되지 않는다. 부실감사라 밝혀져도 인사상 불이익을 그대로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직원들이 감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일단 감사에 걸리지 않는 방향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과세처분을 취소하는 인용보다는 기각하는 게 현명한 것이다. 이런 문제점들을 모아 국세청을 나오기 직전 당시 서울지방국세청장의 지시로 주간업무회의에서 ‘부실과세의 원인과 대책’이라는 제목으로 2주간 발표한 적이 있었다. 각 국과별로 과세처분한 사건들이 조세심판원에서 얼마만큼 취소(인용)되었는지 3개년 통계를 내본 적이 있었다. 뜻밖에도 감사지적분에 대한 인용율이 평균보다 더 높게 나오다보니 회의장이 술렁인 적이 있었다. 국세청을 떠나는 나를 대신해서 남아있는 직원들은 감사실 눈치를 보느라 애가 탔을 것이다. 공무원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를 탓하기 전에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 단어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살고자 하는 본능이 더 앞서지 사명감이 더 앞서는 것은 아니다. “인사경고를 왜 취소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인사경고도 징계처분이기 때문에 그 당시에 이의를 하지 않으면 확정이 됩니다.” 서슬 퍼런 감사의 칼날 앞에 대들 직원은 없다. 그러니 부당하더라도 불만을 토로하지는 못한 채 속으로 삭여야 한다. 그 결과는 감사에 안 걸리게끔 일을 하면 된다. 내 하는 일속에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애환이 들어있고 내가 맡은 일을 성심껏 열심히 하면 그 사람들의 고통이 해소될 수 있다는 정신을 가지라고 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