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 따로 관행 따로
http://www.segye.com/newsView/20140520005021
선박의 안전을 위해 검사업무를 맡은 사람들이 업무를 소홀히 하였다는 게 최근 세월호 사건을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직원들을 구속시키고 있으나 한편으로 정작 규정은 있었지만 관행이 고착화 되어 있었기에 그들도 규정을 따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규정을 따지는 사람을 아주 싫어하는 게 어느 조직이든 공통의 정서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왕따를 당할 염려가 있다. 구성원들은 조직의 물이 들을수록 규정보다는 관행을 따르고 싶은 본능이 있다. 관행은 ‘내가 편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특성이 있다. 공무원이 관행을 따르면 국민을 피곤하게 한다.
필자는 감사원 시절 ‘IMF 공적자금 금융감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 전에는 ‘왜 우리나라에 외환위기가 왔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가 감사를 하고 난 후에는 ‘규정 따로 관행 따로’가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원들이 의외로 규정을 잘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행위가 규정에 맞지 않은데도 정당하다는 착각을 하였다. 선배가 가르쳐준 대로 행위를 했고, 그것을 후배에게 그대로 물려주는 식으로 업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관행이 고착화된다는 의미다. ‘아! 이래서 모럴해저드가 커지구나.’
엊그제 10년 전 국세청에서 같이 근무했던 직원을 만났다. 그는 세무사 개업을 하였는데 속 터지는 일이 있다면서 조사종결복명서 이야기를 하였다. 세무조사를 종결할 때 조사공무원이 작성하는 서류가 조사종결복명서이다. 조사관서장 입장에선 세무조사를 종결해야 하는지 여부를 그 서류를 보고 판단하게끔 되어있다. 납세자 입장에선 왜 세금이 부과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불복을 위해 필요한 중요한 문서이다. 조세법률주의이기 때문에 자신이 무슨 이유로 과세 당하는지 알아야 과세처분의 정당성 여부를 다툴 수 있다. 그래서 국세청 훈령인 조사사무처리규정(제45조)에도 「조사공무원은 납세자 또는 납세관리인에게 조사결과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여야 하며, 조사결과에 대한 이의가 있을 경우 납세자의 권리구제 방법을 상세히 알려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세기본법 역시 「세무공무원은 납세자가 납세자의 권리 행사에 필요한 정보를 요구하면 신속하게 정보를 제공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무상 ‘규정 따로 관행 따로’다. 어떤 이는 사본을 주고 어떤 이는 비밀이라서 줄 수 없다고 한다. 1996년도에 어느 납세자가 국세청에 왜 안주냐고 질의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국세청은 「납세자가 요청하는 경우 본인에 대한 결정결의서 및 복명서 사본 등을 정보제공 하여야 함」이라고 회신을 하였다. 그런데 지금도 비공개 대상정보와 타인의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는 내부문서이기 때문에 사본을 주면 안 되는 것으로 아는 직원들이 많다. 납세자가 항의를 하면 ‘오면 보여줄 수는 있다’, ‘사본은 안 되니 베껴가야 한다’는 식이다. 그에 반해 결재부분만 가리고 복사하는 직원들이 있는가 하면 당연히 보여줘야 한다면서 사본을 주는 직원들도 있다. 필자를 찾아온 세무사도 조사종결복명서를 받지 못해 국세청에 민원까지 넣었다고 했다. 그에게 물었다. “나와 보시니까 어떻습니까?” “속이 터집니다.” 조직 안에 있으면 조직이 보이지 않는다. 조직을 나와 봐야 예전의 자신들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나라는 법치국가라고 하지만 정부부처마다 보안을 강조하면서 비밀주의가 팽배해 있다면 법치가 언제쯤 이뤄질지 막막하다. 이제는 우리나라 정부부처들도 법리의 수로가 뚫려서 조직이 더 이상 관행이 아니라 규정과 법리에 따라 움직이는 시대가 와야 선진국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