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로 생각하면 공부 쉬워져”
“조세전문가로 최강팀 꾸려 전문로펌으로 성장할 터”
1985년 사시1차 불합격, 1986년 사시1차 합격, 2차 불합격, 1987년 사시2차 불합격, 1988년 사시1차 불합격, 군법무관 1차 합격, 2차 불합격, 1990년 군법무관 2차 불합격, 1991년 사시1차 불합격, 1992년 사시1차 합격, 2차 불합격, 군법무관 1차 합격, 1993년 사시2차 불합격, 1994년 사시1차 불합격, 1994년 사시1차 불합격, 군법무관2차 불합격, 1995년 사시1차 불합격, 그리고 1996년 마침내 사시1차 합격, 2차 합격.
고성춘(사시38회) 변호사의 수험 경력이다. 수험기간 12년, 총 18번의 화려한(?)도전이었기에 그가 얻은 합격의 영광은 후배 수험생은 물론 선방의 스님에게까지 귀감이 됐다. 그 자신에게 있어서는 자기성찰로 본연의 모습을 찾게 된 값진 발견의 시간이기도 하다.
국세청 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지난 달 변호사 개업을 한 고 변호사를 9일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나봤다. 그는 수험생활부터 공직생활까지의 긴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어갔다.
“합격에도 순번이 있다”
10년이 넘는 수험생활을 한 고 변호사에게 변호사라는 직업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는 “애당초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 적은 없었다”고 뜻밖의 답변을 내놨다. 어학 분야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던 고 변호사가 법대로 진학한 이유는 간단했다. 1980년대는 이과는 의대로, 문과는 법대로 진학하는 일이 당연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영어와 독일어를 잘 했던 그가 법대로 진학해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하다 보니 성적도 자연 낮은 데서 맴돌 수밖에 없었다. 그는 “대학 성적은 그나마 잘 했던 과목이 비제로(B0)였고 C와 D를 맞은 과목도 태반이었다”고 털어놨다. 고시를 위한 공부 역시 법대 졸업 후 당연한 절차로 여겨 시작했다. 고 변호사는 그 당시를 “법조인은 무조건 좋은 직업, 선망의 대상이라고 여겼던 때”라고 소회했다.
살아오면서 특별히 실패를 경험해 보지 못했던 그는 넘치는 자신감으로 시험 준비에 돌입했으나 매번 고배를 마시기 일쑤였다. 실망감에 사로잡혀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고 변호사는 “나와 만나기 위해서 고향에서부터 먼 길을 달려 온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일이 귀찮을 정도였다”며 “그 일은 아직도 가슴에 불편하게 남아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한 해, 두 해를 지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머릿속엔 ‘잘 되기 위해 아등바등 하던 치열함’보다는 ‘잘 살기 위해 성찰하는 공부’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잘 되고 싶은 마음만 앞선 나머지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는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자 그는 ‘그동안 잘 되기 위해 애써왔던 노력은 또 하나의 나를 만들기 위한 공허함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 전체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