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을 떠나면서 장문의 보고서를 만들어 청장에게 보고하였다.
전체 간부회의에서 내 보고로만 2주에 걸쳐 두 번이나 할 정도로 20~30년 넘게 근무한 국세공무원들에게 어필하는 내용이었다.
그 중의 한 제목이 있었다.
“알면 봐주고 모르면 칼같이” 였다.
이는 제도개선으로 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에게는 잘하려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잘 안다는 개념이 모호하지만, 규제를 해야 대우받고 상대를 아쉽게 해야 이득이 생긴다면 당연한 것도 당연하지 않다고 해야 청탁이 많이 들어올 것이고 설혹 아쉽게 접근하고 용을 쓰는 사람만 봐주더라도 일처리가 잘못된 것이 하나도 없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관예우는 증거가 없는 것이다.
솔직히 법조계나 어느 부분에도 전관예우가 없을 수 없다.
그게 잘못되었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없는 것을 있다 하고 있는 것을 없다 하면서 나에게 잘하면 없는 것을 없다 하고 있는 것을 있다 하니까 문제인 것이다.
만인에게 사심없이 한다면 오히려 칭송을 받을 것이다.
고시를 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여 신분상승을 꾀하고자 하는 마음이야 누구나 있지만 끼리끼리 자기들만의 리그를 만들고자 용을 쓰고 고시합격하여 고위직에 올라가려 했는가 생각하면 공직도 얻고 돈도 벌려는 모습이 욕심사납게 보인다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돌리는 위치에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전관예우 중 유독 법조계의 전관예우가 문제되는 이유는 그만큼 검사나 판사에게 기대하는 것이 높은 것이고 그들이 뒷골목의 양아치처럼
“우리가 남이가“
하는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검판사는 아쉬운 사람들만 상대하다 보니 자칫 자신들이 선이고 정의의 사도 인줄 착각하기 쉽다.
그게 문제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