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진 실패 소중한 발견] 10 . 포기하고 싶은 수험생에게
수능시험 끝나고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수시로 이미 대학이 결정된 이가 있는 반면 수시가 안 되고 정시를 기다려야 하는 이들도 있다. 원하는 대학에 붙은 이의 어머니는 합격턱으로 점심을 지인들에게 사고 있다. 그렇지 못한 어머니는 속이 상하지만 그래도 기분전환 삼아 모임에 나와 떨떠름한 축하를 해주고 있다. 너무 안정적으로 지원한 이는 벌써부터 과가 맘에 안 든다고 반시를 하겠다고 한다. 반시가 뭔지 몰랐는데 대학을 다니면서 수능시험을 준비한다는 말이라고 한다. 수시가 안 된 수능수험생이면 아마 인생의 첫 실패일지도 모른다. 수시가 안 된 이에게 “축하한다. 네 인생의 첫 실패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스쳐지나가듯이 했던 말이 학원에서는 선생님이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서 베스트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말을 한 이유가 있다.
포기하고 싶은 수험생에
시험을 처음 볼 때와 여러 번 떨어진 후의 차이가 있다. 처음엔 당당하고 기운도 쌩쌩하지만 여러 번 떨어지다 보면 시험을 대하는 느낌도 무뎌져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지게 되고, 특히 단순한 생활의 반복으로 무기력해진다. 또한 무모할 정도로 그렇게 좋던 결단력도 사라지고, 살짝 부는 바람에도 갈대가 휘날리듯 마음이 왔다 갔다 하면서 안주를 못하고, 볼펜하나 선택하는데도 고민이 많아진다.
나 역시, 실패를 여러 번 하다 보니 열등감만 쌓이고, 나에게 기대를 가졌던 주위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계속 커지다 보니 오히려 그들의 기대가 큰 부담이 되었다. 나 혼자라면 자신이 못나서 그런 것이므로 후회는 없겠지만, 기대를 갖고 물심양면으로 정성을 쏟은 사람들에게 보답을 못했다는 자책감은 지울 수 없었다. 그때는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 주위의 인연들에게 얽히고설키어 꼼짝 없이 갇혀 있다는 구속감을 느꼈다.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갑갑하였다. 산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고 사람이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자살도 생각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성적 제일주의이기 때문에 좋은 대학, 좋은 회사를 가려면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고, 공부 잘한다는 사람들만 한다는 판검사 임용만 보더라도 1등부터 몇 등까지 성적순으로 자르고, 발령지 결정도 성적이 기준이 되는, 한마디로 평생을 성적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현실이다, 성적이 나쁜 사람들은 인생의 실패자로 취급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숨이 콱 막힐 정도로 답답한 심정이다. 이국땅에 있어보면 이런 모습들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그동안 공부를 열심히 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하도 의자에 오래 앉아 있어서 엉덩이에 종기가 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 공부는 시험공부였고 그것은 소모전이었다. 제각기 잘난 사람들끼리 붙어서 경쟁에서 뒤지면 폐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공부를 오래 했다 해서 남에게 인정받을 정도로 실력이 쌓이고, 더군다나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현실의 모순을 비판한다 해서 내 모습이 달라질 수는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시험공부밖에 없었다. 그러기 때문에 공부가 아무리 힘들더라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머리가 멍청하고 능력이 안 되더라도 결국 포기만 안하면 되는 것 같다. 실제 공부를 포기하게 되면 부처님이나 하느님이 합격을 시켜주고 싶어도 해줄 수가 없다. ‘포기만 안하면 합격은 늦더라도 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항상 후배들에게 강조하곤 한다.
그러나 그것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남의 경우로서 집안사정 때문에 어쩔 수없이 공부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를 여러 번 본적이 있었다. 이와 반면에 장남이지만 집안에서 밀어줘서 공부여건이 되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포기 않고 고시공부를 하긴 했지만 결국 합격이 안 되었다. 포기하지 않았는데도 안 되는 이유는 열심히 안했기 때문이다. 공부를 건성 건성으로 하면 시간이 오래가도 합격은 되지 않는다.
포기하지는 말되 열심히 해야 한다. 공부를 포기하는 원인 중에 여건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은 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계속 떨어지니까 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서 공부에 부담이 된 경우이다. 열심히 했는데도 안 되는 사람들은 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클 수밖에 없다. 나의 경우를 보더라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물심양면으로 밀어 주려고 갖은 애를 쓰시는 부모님을 뵐 때마다 합격을 해서 보답을 하려고 했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잘 안되다 보니 미안한 마음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오히려 공부에 장애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고 해서 공부가 잘 된다면 얼마든지 그런 마음을 가져야겠지만 마음이 편치 않은데 공부가 잘 될 리 만무했다. 그러나 궁하면 통한다는 식으로 ‘지금 당장은 부모에게 최대한 불효를 하자. 지금의 불효가 오히려 나중에 효도가 된다’ 라고 생각을 바꿔버리자 그런 부담감을 떨쳐 버릴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공부는 심리적 요인에 많이 좌우되는 것 같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그런지 남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지만 자신에게 어려운 때일수록 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 같다. 그러나 막상 따져보면 다른 사람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시험에 떨어진 사람은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은 ‘떨어졌는가보다’ 라는 정도에 불과하다.
후배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그는 사법연수원 수료할 무렵 어렸을 때부터 키워온 검사의 꿈을 당연히 펼칠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사정으로 검사임용에서 탈락된 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불쑥 연락이 와서 만났다. 그리고 그가 했던 말 중 생각나는 것이 있다.
“사실 지금 가장 괴로운 것이 내 장래보다 주변의 시선이다. 처음에는 탈락했다는 충격이 컸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적응이 될 뿐 아니라 생각이 바뀌니까 새로운 앞날에 대한 희망까지도 생기더라. 그런데 여기까지는 나의 몫인데 어려운 것은 가족들에 대해서는 미안함과 나를 아는 주위 사람들에게는 창피함이었다. 그런데 실상 그들이 나보다 더 고민할 수도 더 심각할 수도, 또 오래 기억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만 괜히 사람을 의식했을 뿐이다.”
사실 원하던 일이 안된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문불출하거나 위축되거나 비굴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추한 모습으로 변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 하나 시험 떨어지는 것은 별것 아니다. 따라서 후배의 경우처럼 마음을 바꿔먹으면 된다. 수험생이라면 내년에 다시 한 번 더 보면 되는 것이고, ‘이렇게 다시 공부해 봐야지’ 라고 생각하면 된다. 결코 남의 이목 때문에 우리가 세상 살거나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공부란 마음을 인색하게 쓰거나 의욕만으로 자신을 쥐어짜듯이 밀어붙인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느리지만 천천히, 급하더라도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고 해야 오히려 더 잘된다.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공부를 통해 가지게 된 그런 마음가짐들이 요즘 살아가면서 소중하게 와 닿는다. 살면서 어려움들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음은 이봉주 선수가 한 말인데,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슴에 와 닿는 말인 것 같아 소개하고 글을 맺고자 한다.
“ 황영조가 너무 힘들어 차에 뛰어들고 싶은 적이 많았다고 했듯이 마라톤은 힘들고 고독한 운동이다. 그러나 즐기면서 기분 좋게 훈련하려고 노력한다.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찾아 하나씩 보완해 나가다 보면 실력이 늘고 그만큼 보람과 즐거움도 따른다. 마라톤은 자신을 이겨야 하는 운동인 만큼 매사에 스스로를 참고 절제해야 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