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에서의 5년] 30 부담부증여 사건으로 대판 싸우다 직원 중에 본청에서 내려온 6급 직원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 방에 들어와 “도대체 결재 안해주는 이유가 뭡니까?” 라고 따졌다.
이의신청결재를 하면서 4달 이상 처리가 안 된 사건이 있기에 “처리가 늦어진 이유가 뭡니까?”라고 의견을 달고 사인을 해주지 않은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을 빌미삼아 자기 기분 나쁘다는 것을 어필하러 온 것이었다.
논란의 내용은 간단한 것이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1억짜리 주택을 증여하면서 다음과 같은 증여계약서를 작성하였다.
(조건 : 아들이 주택을 임대하고 받은 임차보증금을 어머니에게 돌려줄 것)
쉽게 말하자면 ‘아들아! 내 주택을 너에게 줄테니 대신 5천만원을 주라.’ 는 의미다.
몇달 후 아들은 5천만원을 자기 돈으로 주는 게 아니라 임차인에게 받은 보증금으로 어머니에게 줬다.
그리고 나서 세무서에 부담부증여로 신고하였다.
주택가액 1억원에서 5천만원을 뺀 5천만원만 증여받았다고 하였다.
그러자 세무서는 부담부증여가 아니므로 증여세 과세가액을 1억으로 하여 계산한 증여세를 결정고지하였다.
아들은 증여세 과세가 잘못되었다면서 법무과에 이의신청을 청구하였고 그 직원이 담당을 하였다.
별 문제없이 처분청의 처분이 정당한 것으로 판단하고 결재를 하였고 법무과 의견은 기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뜻밖에도 이의신청심의위원회가 개최되어 외부위원 두 사람이 이의를 제기하였다.
문제가 전혀 안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정세무사가 의문을 제기했다.
나름대로 세법에 대해 많이 안다고 프라이드를 가진 사람이었다.
“실제로 증여한 가액은 5000만원밖에 되는 것 아닙니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위원도 거들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너무 당연한 거라 논쟁거리가 되지도 않을 거라 생각했기때문에 이게 왜 문제되는지 의아했다.
회의분위기가 이상했다.
그 직원과 담당계장도 위원들 의견에 동의하였다.
계장은 특히 위원들 생각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말하였다.
세법이 무슨 아이디어로 해석되는지 의아했다.
미처 예상 못한 거라서 머뭇거리다가 차라리 법리검토를 확실히 해서 처리하는 게 좋겠다 싶어 다음 달에 재상정하는 것에 동의하였다.
갈등의 씨앗이 이때부터 증폭이 되었다.
법규과에 질의해보는 등 법리검토를 다시 해본 결과 결론은 처분청의 처분은 적법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러나 위원들 시각은 5천만원이 되돌아갔으니까 결국 어머니는 1억짜리 집을 주고 5000만원을 받았으니까 증여재산가액은 5000만원이라는 것이다.
언뜻 그들의 논리가 일리가 있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법은 고무줄이 아니다. 편리에 따라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세금은 세법에 의해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는게 원칙이다.
증여재산가액이 5000만원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규정이 세법 어디에 있는지. . . 결국 근거가 있다면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 아닌가.
그러면 어머니가 아들에게 위와 같이 1억짜리 주택을 증여하면서 “너가 나중에 임대해서 보증금 받거들랑 돌려주라”는 조건을 달았을 때 (돌려줄 금액이 얼마인지도 확정되지 않은 경우다) 아들이 1억원을 돌려줬다 가정하면 위원들 논리대로 하면 증여재산가액은 0원이 되고 양도가액이 1억원이 되어 세율이 낮은 양도세만 과세되게 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러면 증여세를 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전부 위와 같은 방법으로 조작해서 양도세를 내지 세율이 높은 증여세를 내겠는가. 나라도 안낼 것이다.
결국 1안 2안으로 해서 내 의견과 담당자의견이 별개로 해서 위원회에 재상정되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이 없었다.
어떻게 직원 의견과 과장 의견이 별개로 해서 상정될 수 있는지.
법무과 의견도 달지 말라고 하는 마당에 황당했지만 끝끝내 과세를 취소시키겠다는 여러 사람들의 집착이 묻어있다보니 기강이 서지 않았다.
그나마 이렇게 버틴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다. 관리자가 직원 이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눈 감고 결재하는 게 신상에 편하다고 옆의 과장이 조언을 해줬다.
그런데 일이 꼬이려고 해서 그런지 이의신청위원회 회의를 진행하는 도중에 청장님께 중요사건보고를 급히 해야 할 일이 생겼다.
그래서 1시간 정도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담당계장이 회의를 주도하였는데 세금을 취소하는 인용으로 결정이 났다.
고민에 빠졌다.
눈 한번 꼭 감고 그냥 넘어가면 되는 일이었다. 사실 그동안 이런 일이 한두 번 이었겠는가.
며칠 동안 고민을 한 끝에 다시 재심의를 하기로 결심하였다.
인용결정이 나도 청장님 결재를 받으면 다시 위원회에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이의신청결정문이 혹 납세자에게 발송되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얼른 전화로 확인해봤다.
황당했다. 이의신청결정문이 이미 발송되었다는 것이다.
“아니 청장님 결재가 안떨어졌는데 어떻게 결정문이 발송이 됩니까?”
그의 변병은 간단했다.
이 달에는 청장님까지 결재할 사안이 없기 때문에 국장님결재만 받으면 발송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는 것 같았다.
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 결정문들이 우편함을 떠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간신히 발송을 보류할 수 있었다.
이 사건 하나 때문에 그 직원과 갈등의 골이 증폭되었다.
그 사람 뒤에는 사통오달의 여러 세력들이 있기 때문에 결국은 그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는 격이 되었다.
그 직원은 자존심이 무척 상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와 다툰 이후로 조직에 말이 말을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직원 한 사람이 ‘어’라고 말하면 전달하는 과정에 ‘아’가 되었다가 ‘야’로 되어 결국엔 ‘야새끼’가 되기 마련이다.
조직생활을 하다보면 사람들 본능이 남을 칭찬하는데 상당히 인색하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이 시기심이나 질투 이런 원초적 본능을 웬만한 인격자가 아니면 벗어나기 힘들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말이 어른이지 애들과 마음 쓰는 것은 틀리지가 않다는 생각이 가끔씩 들곤 한다.
남 흠잡는 말은 고속철보다 더 빠른 빛의 속도로 전파되기 마련이다.
직원이 37명이다 보니 과장 말 한마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질 수밖에 없지만 이런 경우처럼 누가 만일 악의를 가지고 말을 퍼트리고 감찰에 투서를 하고 그러면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돌아가신 당시 1계장이 술자리에서 한 말이 있다.
“인성이 안 된 놈은 끝끝내 안됩니다. 그런 사람은 포용하려 하지 마시고 다 내보내야 합니다.”
출근을 늦게 했다든지 누구만 편애한다든지 점심때 술 먹고 늦게 들어왔다든지 최근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감찰 등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곳에 투서를 한 모양이었다.
그런 이야기가 나돈다는 것을 국장님으로부터 전해 듣고 맥이 팍 풀렸다.
“참 dirty해도 더럽게 dirty하다” 너무 너무 추접하고 더러운 짓거리였다.
차라리 업무가지고 무슨 비판을 했다면 수긍이 갔을 것이다.
거물과 다투고 나면 후환이 있기 마련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런 식으로 비판하는 사람의 눈에도 업무가지고 장난치는 것은 보이지 않았는가 싶었다.
그런데 얼마나 한을 품었는지 소문의 강도가 예전사람들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예전에도 국세청비리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고 투서한 직원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 술렁거릴 정도였다.
더구나 개방직위 임기연장을 위해 심사를 하면서 이런 말들이 오고 간 것으로 들었다.
그리고 서울청 총무과장이 불러 조심스럽게 말하기를 출근을 늦게 한다고 말이 나왔다면서 유의해달라고 하였다.
마음이 크게 상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 5시에 출근해서 11시에 퇴근하는 것을 거의 1년 이상 할 때는 아무 말 없다가 감기 걸려 콜록콜록 하면서 병원 갔다 오는 며칠을 30분 정도 지각한 것을 가지고 마치 일부분이 전부를 왜곡하는 것 같았다. 꼬투리를 잡을게 그렇게도 없었는가 싶었다.
게다가 1계장에게만 살짝 말한 것을 다른 직원이 어떻게 아는가.
더구나 사무실이 여의도 별관이라서 회의 때문에 10월에 청으로 들어가는 횟수가 최소 14번은 넘었는데 직원들에게 일일이 과장 어디 가는 일정을 공시하고 다녀야 하는지 그 이야기를 퍼트린 직원 놈이 참 추접하고 더러워보였다.
어떻게 보면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인 것 같았다.
과장 PC를 훔쳐보지를 않나……
이제 그런 직원들이 자기들 힘으로 해보다가 법무과장 임기 연장을 못 막으니 스스로 나가라는 편지를 보낸 것 같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가 20년 넘게 순응했던 관행이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는 내가 피곤하게 보였을 것이다.
난 지금도 생각한다.
우리나라 IMF 가 온 이유는 ‘원칙과 동떨어진 고착된 관행을 원칙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내가 신입사원으로 들어왔을 때 선배가 가르쳤고 나도 그게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고 나중에 후배들에게 그렇게 가르쳐온 게 사실은 규정과는 거리가 먼 조직의 관행이었고 그것도 아주 뿌리 깊게 박힌 고착된 관행이었다는 것이 우리나라를 위기로 만든 것이다.
감사원 감사관 생활을 잠깐이나마 하면서 느낀 것이다.
어느 조직이나 원칙은 규정대로인데 실제로 돌아가는 것은 관행대로 움직인다.
감사는 규정에 벗어나 관행을 찾아 시정을 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아주 뿌리 깊은 고착된 관행을 찾아내면 큰 감사 건이 되는 것이다.
그런 고착된 관행을 건드리면 피감사기관 조직이 흔들린다.
최후에는 조직 수장 측근이 내려와 흥정을 한다.
“사람들은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데 손해배상만큼은 하지 말아주세요.”
이런 말 나오면 제대로 잡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관철하기가 그렇게 힘들다.
다들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만 열심히 한 사람만 바보되고 또라이 되기 쉽다.
그들의 무기는 소문이다.
그렇게 싹을 제거해버린다.
평판은 엿가락이다.
예쁜 사람은 무시하고 미운 사람은 그걸 이유로 내친다.
https://youtu.be/mPz__sIkg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