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돌이켜보면 수험생으로서 내가 가질 수밖에 없는 그 때 그 심정들이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었다고 생각된다. 처음 실패했을 때는 떨어졌다는 실감을 하지 못하였다. 몇 달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누워만 있었다. 떨어지면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자신을 심하게 채찍질하다보니 몸도 마음도 지쳐버려 의욕을 거의 상실하였기 때문이었다. 다음해 이러한 몸을 억지로 끌고 다시 한 번 시험을 봤지만 또 떨어졌다. 그렇게 되자 더 이상의 공부는 무리였다. 지친 몸은 쉬면서 회복하면 된다지만 한번 지쳐버린 마음을 회복시킨다는 것은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도 12번 이상을 ‘군대를 갈까, 계속 공부할까’ 고민하다가 마침내 군입대를 하였는데 공병대로 배치되었다. 졸병 때는 삽질도 못해서 욕도 많이 먹고 서러웠지만 나중에는 삽질의 도사가 되었다.
그리고 군대 제대 후 다시 공부를 하였다. 세상이 많이 변해 있었다. 특히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전에는 1차 시험에서 82점정도 맞으면 좋은 성적이라고 그랬는데 막상 제대 후 첫 번째로 보는 시험에서 그 점수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떨어졌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도 열심히 한다는 증거였다. 그것도 모르고 그 점수대만 나오면 합격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2차 시험공부에 치중하였다. 결국 시대는 변했는데 의식은 옛날에 머물렀던 셈이었다. 그때 나이가 29살이었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이 막상 30대로 접어든다고 생각하니 착잡하였다. 그러면서 오는 것이 열등감이었다.
빨리 합격한 친구들에 비해 결코 못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들보다 많이 뒤쳐져 있는 현실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럴수록 나 자신에 대해 그렇게 화가 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열등감만 계속 쌓여갔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묘한 것이 남들과 비교하는 마음을 가지면 꼭 열등감을 느낀다는 점이다. 아마 이런 상태가 오래갔더라면 정상적인 사람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때 그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이 못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마음을 고쳐먹은 때부터이다. ‘잘나도 내 인생, 못나도 내 인생, 못났다고 해서 버릴 수도 없고, 더군다나 포기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만일 내 몸이 기계라면 마음에 안 드는 부분 특히 머리를 새로운 부속품으로 바꾸겠지만 내 몸이 기계가 아닌 이상 그럴 수도 없는 일, 힘들더라도 어쩔 도리가 없지 않은가’
이렇게 자신에게 사정을 하면서 살살 마음을 달래줄 수밖에 없었다. 絶處求生(절박한 곳에서 살길을 찾는다)이라는 말처럼 절망의 끝에서도 살길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기 마음속에 있었던 것이다.
실패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실패는 매우 두려운 말이다. 특히 수험생의 경우 시험에 떨어진다는 것은 대단히 쓰라린 일이다. 따라서 어느 누가 실패를 하고 싶겠는가. 그러나 시험은 경쟁이기 때문에 합격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떨어지는 사람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내 인격이나 잠재력까지도 순위가 매겨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학을 하거나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리고 사람은 언젠가는 한 번씩은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실패를 이겨내는 것이다.
언젠가 한번은 경험해야 할 것이 빨리 찾아왔다고 생각하면서, 다만 그 해 합격순번에는 못 들었다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현실을 100% 냉정하게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 ‘힘들더라도 어쩔 도리가 없지 않느냐’ 하면서 살살 자기 자신을 달래야 한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남과 비교하는 마음, 나 자신을 열등하게 느끼는 마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내 몸이다 해서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귀한 도자기를 다루듯이, 친한 친구를 사귀듯이 살살 다루다보면 분명히 좋은 일이 생기리라고 본다.
앞서나간다 해서 항상 앞서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뒤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뒤에 있던 사람이 앞서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