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소식(자유를 향해서)
시험에 합격했다.
10년 넘게 공부한 결실을 본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것은 합격발표 하루 전이었다. 경남하동에 있는 어느 스님의 토굴에서였다.
지리산 화엄사 쪽에서 섬진강을 따라 계속 가다보면 연곡사 피아골이 나오고 거기서 더 가다보면 화계장터로 유명한 쌍계사계곡이 나온다. 쌍계사 쪽으로 들어오는 길 양쪽으로 벚나무들이 아름드리 심어져 있어서 봄날의 벚꽃철이 되면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쌍계사를 지나 계속 가다 보면 칠불사(七佛寺)가 나온다. 그 절은 아자선방으로 유명한 곳이다. 내부구조를 보면 진짜 아(亞)자처럼 되어있다. 모서리 네 귀퉁이가 바닥보다 불룩 위로 튀어나와 있다. 부엌에서 한번 불을 때면 일주일 이상은 그 온기가 유지된다고 한다. 아자선방에서 나무로 만든 문을 열고 조금 더 올라가다보면 운상선원(雲上禪院)이 나온다. 구름 위에 있다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그만큼 높은 지대에 있다는 말이다. 칠불사라는 명칭에도 다 설화가 있다. 옛날 가락국의 왕비가 인도에서 온 여자였는데 그 밑으로 일곱 왕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들 모두가 이 절터에서 도를 닦아 득도를 하였다고 한다.
지리산 산행을 한 후 그 날 저녁 광주에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였다.
“어머니, 저 여기 암자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야겠습니다.”
당일치기로 다녀오겠다고 하고 왔기 때문에 어머님이 걱정하고 계셨을 것이다.
“왜 이제 전화 하냐! 소식 못 들었냐?”
“무슨 소식이요?”
“너 후배한테 전화 왔더라.”
“누구?”
“후배라고 하면서 너 합격했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한동안 멍했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다니 …. 그런데 한편으로는 싱거웠다. 기쁘기보다는 오히려 허탈했다. 기쁨은 그야말로 스쳐가는 바람에 갈대가 흔들리는 정도의 찰나에 불과했다.
다음날 가을 날씨가 화창한 시간에 집에 도착하였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뭔가를 하고 계셨다. 그 모습을 먼발치서 지켜보면서 평소 나 때문에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하는 어머님의 마음이 헤아려졌다. 서른넷이나 된 장성한 아들이 고시라는 것 하나에 얽매여 앞길을 개척해나가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그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을까? 나는 내가 좋아서 했다지만 어머니는 무슨 죄가 있어서 그런 고통을 감내해야 했을까? 그게 어머니라는 이유로 감당해야 할 짐일까? 아마 어머니의 이런 헌신적인 희생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날마다 잠을 잘 때마다 소원했다.
‘이렇게 머리가 시원한 상태에서 내일 아침은 눈을 뜨지 않게 해 주소서’
남들은 ‘합격하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했는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그런 기도가 나오지 않았다. 예전에 다 해봤기 때문이다. 이제는 무엇을 원한다는 것 자체가 업력으로 느껴진다. 잘 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다. 원한다고 해서 바로 성취된다면야 힘들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빌어서 됐으면 힘들다고 하겠는가? 무엇을 비는 마음마저 닳아 없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머리하나는 무척 시원했다는 점이다. 결가부좌든 반가부좌든 가만히 앉아있으면 머리 정수리 쪽으로 가늘고 뾰족뾰족한 바늘 침이 ‘뿅뿅’ 나가듯이 머리의 시원함은 그렇게 상쾌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마도 내 인생의 최고의 시원한 머리상태였던 것 같았다. 그리고 누워있든지 앉아있든지 서있든지 간에 내 몸이 실제 뻥 뚫려있는 느낌을 계속 받았다. 헛것이 아니라 실제 그랬다. 허공에 부는 바람이 아무런 걸림 없이 내 몸을 시원스럽게 통과하는 기분이었다.
사람은 없는 것을 있다하고 있는 것을 없다고 한다. “내 몸을 꼬집어보면 분명 아픈데 어찌 내 몸이 없다고 할 것인가?”라고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분명 없는 것이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렇게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을 때 죽는다면 그래도 복이 많은 것 같았다. 날마다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죽지만 과연 이런 시원한 머리를 가지고 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당시 나는 잠잘 때는 죽음을 원했고 눈을 뜨고 있을 때는 죽지 못해 사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다.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지내야 했던 어머니의 심정을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심정이었다.
합격을 하고나니 기분이 좋겠다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속으로 말했다.
‘별로! 오히려 합격을 안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아’
이 말을 사람들이 실제로 들었다면 분명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자식, 배부른 소리하고 있네.”
그러나 나에게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사람에게는 체력과 원기가 다르게 존재한다고 믿는다. ‘진을 뺐다’고 할 때의 표현은 후자를 일컫는 말일 것이다. 내가 볼 때는 이게 몸에서 다 빠지면 죽음인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로 소진될 수밖에 없다. 어린 아이들은 눈이 오는 날에 맨몸으로도 놀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신진대사가 활발하기 때문이다. ‘신진대사가 왕성하니까 그렇다’고 표현하지 ‘체력이 좋아서 그렇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이젠 나에게도 딱 한번 쓸 분량만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 이것을 또 소모적인 고시공부에 쓰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 영원한 것에 쓰고 싶었다. 그동안 여러 스님들과 교우하면서 단전호흡부터 요가 그리고 기도도 해보았다. 몸도 유연했고 체력도 적지 않게 있었다. 아침에 책을 펴면 언제 점심시간이 왔는지 모를 정도로 집중하였다. 서너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기 십상이다. 집중하다보면 온 몸이 정화되고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눈도 한층 밝아진다. 어떤 경우는 시간이 전혀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이젠 나의 남은 정열을 잘되기 위한 것보다는 본격적으로 수행을 하는 것으로 쏟아 붓고 싶었다. 게다가 시험에 대해 더 이상의 미련은 없었다. 합격하기 바로 직전년도, 시험에 또 떨어졌지만 기분이 이전의 것과는 상당히 달랐다. 구속으로부터의 해방감이라고 할까, 너무 너무 시원한 기분이었다. 후회도 없고 미련도 없었다. 조그마한 티끌도 남아있지 않았다. 해방감이라는 느낌이 실제 있었다. 그러다보니 원효스님의 《초발심자경문》이 구구절절이 가슴에 와 닿았다. 특히 막속불호(莫速不乎;급하지 아니한가)! 막속불호(莫速不乎)!라는 구절은 결단을 내리게끔 은근히 압박을 하였다.
결국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고시공부를 버리고 출가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떻게 보면 사망심(捨妄心) 취진리(取眞理)였다. 그러자 이제는 합격에 대한 고민보다는 어느 절로 그리고 또 누구에게 출가를 해야 하는가가 문제였다. 그동안 알고 있던 스님 중에서 얼른 떠오르는 사람이 청화스님과 송담스님이었다. 결국 아는 스님의 권유로 인천 용화선원으로 가게 되었고, 그날 첫눈이 내렸다. 출가를 축하라도 해주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주는 꽃비인가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합리화하려는 생각일 뿐 한편으로는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왔기 때문에 내 마음이 좋을 리 없었다. 부모형제 중에서 제일 마음에 남는 사람 한사람만 선택하라고 하면 당연히 어머니를 선택하겠다. 실제 그랬기 때문이다. 출가하겠다고 마음먹은 후 마음에 걸린 사람은 아버지도 형제도 아니었다. 다 남인 것처럼 아무런 미안함과 미련이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만큼은 마음에 걸렸다. 어머니가 나나 우리 형제들을 위해 헌신하며 고난의 세월을 보낸 것을 익히 옆에서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지금생각하면 아버지 역시 그에 못지않은 세월을 보내셨지만 자식들에게 실감이 크게 오지 않는 이유는 아버지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글을 쓰는 동기도 우리 자식들에게 이 글을 통해 아버지로서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당시 어머니의 모습이 생각난다.
“어머니, 이제 출가하렵니다.”
“이놈아, 네가 출가하면 내 자식이 아니다. 내 가슴에 이렇게 못을 박을 수 있느냐.”
아무리 세상을 등지고 거꾸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그 본능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결국 하룻밤의 꿈으로 끝난 채 집으로 돌아왔다. 내 마음 깊숙이 잘되고 싶은 본능이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출가에 대한 미련은 지워버릴 수 있었다. 오히려 내면의 갈등은 없어지고 마음이 편했다. 저절로 책이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예전과 다른 공부를 하게 되었다. 공부하다 지치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하였다. 그때 내가 한 운동이 오전에는 산책과 조깅을 하였고 오후에는 헬스를 하였다. 그리고 저녁에는 테니스를 하였다. 테니스를 예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우연히 테니스선수를 만나서 배울 수 있었다. 주말에는 등산을 한 후 백화점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것으로 일주일을 정리하였다. 수영장 앞에는 실내골프연습장이 있었는데 사람이 한적한 점심시간을 틈타 공을 몇 개씩 쳐보곤 했는데 이런 나의 모습이 짠하게 느껴졌는지 코치가 가르쳐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다 보니 공부가 질릴 일이 없었다. 그렇게 출가하겠다는 생각은 내면 한구석으로 몰아넣어두고 다시 공부해서 1, 2차 동시합격을 하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만큼 마음이 안정되고 편했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환경이 결코 편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마음이 편하니 외부자극에 시달리지 않은 채 무덤덤하게 장애(障碍)를 잘 넘긴 것 같았다. 그 당시 마음이 평온하다 보니 잔디밭에 앉아 먼 산을 쳐다보는 나이 먹은 누렁이의 모습만 보더라도 어떤 초연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로부터 벌써 강산이 두 번 변화했다. 나이도 50대 중반을 넘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자기 적성에 맞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법학이 적성은 아니다보니 남보다 시간과 노력이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마다 자기가 잘하는 것이 분명 있다. 공부를 잘한다는 의미는 여러 과목을 모두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고 좋아하는 분야에서 남보다 더 많은 열정을 가진다는 것이라고 본다. 획일적인 교과공부를 전 과목 잘해서 노벨상 나온 사람 있는가. 자기 분야에서 잘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어릴 때부터 개발해주는 것은 부모의 몫이다. 그러나 부모 역시 그런 부모를 만난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결국 합격이 분명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또 다른 시작일 뿐이다. 합격은 곧 시작이다. 새로운 세계에 첫발을 나서야 한다. 그러나 경험만 색다를 뿐이지 어디가나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마음 쓰는 것은 색다를 것이 없다. 세상에 나와 뭐를 해도 만족하기가 참 어려운 게 현실이다. 뭐를 성취한다 해서 되는 게 아닌 것 같다. 하나를 얻으면 또 다른 하나를 구하는 게 사람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구한다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보니 불평불만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렇다 해서 누가 만족을 시켜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결국 자기 스스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세상 어디에서 뭐를 하던 간에 항상 ‘나 잘되고자 하는 마음’은 지워버릴 수가 없다. 그런 본능이 발전의 동력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잘못하면 알게 모르게 죄를 짓게 된다. 그리고 너무 허탈하고 무상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집착한다 해서 잘 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껄떡거리는 자기 마음을 쉬게 할 수밖에 없다. ‘버리면 얻는다’는 말의 의미는 결국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 마음을 쓰느냐에 따라 그 방향대로 자신의 삶의 흔적이 될 것이다. 그걸 보고 인생(人生)이라고 하는가. 결국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사는 것이다. 결코 다른 사람이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시험공부가 단순히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징검다리 정도로 본다면 선뜻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시험공부든 그 자체에 인생을 살아가는 비결이 다 녹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시험은 시험이지 무슨 시험공부를 도 닦듯이 하느냐고 핀잔줄 사람도 있겠지만 어차피 세상살이 잘하는 것이 큰 수행이다. 잘되고자 하는 본능으로 시험을 보기 때문에 그로 인해 겪어야 할 일들을 미리 체험해보면서 무엇이 환영(幻影)인지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시험공부를 단지 나 잘되기 위한 정도로만 보면 앞으로 뭐를 하든 겪어야 할 불안과 초조는 증가될 것이고, 시험공부가 마음공부였다면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보다는 불안으로부터의 자유와 초조로부터의 해방감을 맛볼 수 있을 것 아닌가. 거기에서 자유가 나오는 것 같다. 자유가 있어야 초탈도 있다. 결국 자유는 아무에게나 오는 것은 아니다. 원하는 것을 성취한다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도 허상일 수 있다. 불타는 집(火宅)에 살면서도 불길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인간의 본능이 너무 강렬하다. 결국 자유는 자기 스스로 느끼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배짱이 필요할 뿐이다.
(‘공부로부터의 해방’과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