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인지는 정확하게 생각나지 않는다.
그 해 7월 초 장마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사법시험 2차는 나흘 동안 하루에 두 과목씩 각각 오전 오후로 나눠서 치른다. 그러다보니 4일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어지간한 배짱이나 여유가 없으면 잠을 태평하게 잘 수가 없다. 극도의 긴장감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될 수 있으면 잠을 많이 자려고 했지만 하루 3~4시간 이상 자기가 어려웠다. 특히 마지막 날은 거의 밤을 새다시피 했다. 긴장이 최고조로 올라 와 있기 때문에 잠이 와서 자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자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나중에 깨달은 것이지만 사실 잠을 적게 자면서까지 공부해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단지 그렇게 안하면 불안하기 때문에 자기만족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험생의 심정은 잠을 안자는 한이 있더라도 책 한 줄을 더 봐야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몸만 더 지치게 된다.
이럴 때 가장 유혹이 되는 것은 약이다. 긴장을 풀어 줄 수만 있다면 돈이 아깝지 않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선호하는 것 중에 하나가 우황청심환이다. 나 역시 많이 애용을 하였다. 그러다보니 이에 대한 역효과도 컸다.
시험장에 입실하여 시험감독위원이 들어오고 문제지가 아직 배포되기 전 그 짧은 시간 동안의 분위기는 마치 폭풍전의 고요와 같다. 가슴은 두근두근 거리고, 초조하기만 했다. 따라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우황청심환을 반쪽 잘라서 먹었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문제를 막상 접했을 때도 평정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답안을 그럭저럭 잘 메꾸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황청심환의 효과는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놀란 가슴 안정시키는 데는 탁월하다. 그런데 그 약효라는 것은 두뇌를 잠시 마취 시켜서 멍한 상태를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멍한 상태에서 어떤 초조함도 없이 시험을 보았다. 의외의 문제가 나왔어도 당황하지 않은 것 까지는 좋았는데 출제의도를 잘못 파악하고 다른 답안을 계속 적고 있어도 그게 잘못인지를 몰랐다. 결국 그 해에도 떨어졌다. 지금도 생각해본다. 만일 내가 절반이 아닌 한 알을 전부 먹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위와 같이 약이라는 것이 실상 따져보면 아무리 좋은 약도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또한 적정량을 떠나 극히 소량이라도 간에 부담을 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에 좋다는 약 한 번 먹지 않은 수험생이 어디 있을까. 힘들면 약이라도 먹고 버텨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도 약의 유혹을 강하게 받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어머니는 자식 위하는 마음에 더 적극적이다. 이런 심정을 오히려 더 부추겨서 상술을 발휘하는 사람들도 우리 주변에는 너무 많이 존재한다.
사실 머리 쓰는 사람들에게는『신경』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정신노동자들의 거의 대부분이 “신경을 많이 써서 피곤하다”고 하지 “몸을 많이 써서 피곤하다”라고 말하지 않듯이, 신경을 많이 쓰게 되면 기운이 소진(消盡)되면서 힘이 달리게 되어있다. 이것을 보고 원기(元氣)가 손상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체력은 운동하면서 푹 쉬면 회복된다고 하지만 원기가 손상되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이 그만큼 우리 몸과 정신에는 좋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결국 수험생이 약을 먹는 이유도 체력이 딸려서라기보다는 기운이 자꾸 소진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먹는 약보다 더 좋은 약이 있기에 소개하고자한다.
어느 누가 이런 질문을 나에게 한 적이 있었다.
“ 절집의 스님들도 고기를 먹느냐”
대답해주기를
“잡념이 많은 사람은 먹어야 할 것이고, 적은 사람은 물만 먹어도 될 것이다.”
한때는 나도 먹는 것에 무지 집착을 한 적이 있었다. 힘이 부치면 공부가 의욕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짜증이 무척 났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두 번씩 뷔페식당에 가서 3시간이상을 쉬지 않고 줄기차게 먹어대곤 하였다. 그렇게 먹어도 뒤돌아서면 허기가 지곤 하였으니 잘 먹어야 힘이 난다고 생각할 만도 했었다. 그러나 막상 합격할 때는 밥을 조금만 먹으면서도 공부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결국 사람이 잘 먹는다 해서 기운이 나고 못 먹는다 해서 힘이 없고 그러지는 않는 것 같다. 기분이 좋으면 밥을 안 먹어도 배고픈 줄 모르듯이 사람은 기운을 먹고 사는 것이지 음식을 먹고 사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음식을 적게 먹게 먹으면 속이 편해지기 때문에 머리가 시원해진다. 그런데 수험생이 공부외적인 환경에 신경을 쓰거나, 공부가 의욕대로 잘되지 않는다고 몹시 초조하고 불안하여 어쩔 줄 몰라 하다보면 안 써도 될 불필요한 신경을 많이 쓰게 되므로 힘이 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먹는 것에 예민한 수험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먹는데 신경 쓰지 말라. 마음을 편하게 가지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음식이며 최고의 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