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gG8pGeqzHAM
33살 고시 10년차, 그 당시 나의 솔직한 심정을 글로 담아본다. 앞뒤로 꽉 막혀 빼도 박도 못하는 심정이다.
그래도 나 자신의 생활은 규칙적으로 연속된다. 감각적인 생활이 아니다. 감각적인 요소는 배제되어 있다.
머리는 시원하다. 앉아있으면 오래 앉아 있다. 단전의 열기를 느낀다. 호흡도 안정되어 있다.
그러나 내 앞길이 잘 뚫리지 않는다. 내 인생의 진도가 전혀 나가지 않는다. 하는 일이 꽉 막혀 답답할 뿐이다.
그래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제일 힘든 것은 내 인생, 내 열정, 나의 노력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는데 주위 사람들이 업신여긴다.
내가 남에게 밖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항상 부족하다. 그러니 할 말이 없다.
사람들에게 시달린다.
그게 힘들다.
시간이 되면 잠이 온다. 책상다리로 앉은 자세에서 상을 물리고 그대로 뒤로 눕는다.
이때가 제일 마음이 편안하다. 머리도 시원하다.
단지 한 가지 원이 있다면 이대로 누운 채 다음날 일어나지 않고 싶다.
다음날 눈을 뜨고 일어나면 어제 했던 일을 또다시 해야 한다.
원효대사의 말씀이 생각난다.
“세상에 나지 말지어다. 죽는 것도 고통이니라. 죽지도 말지어다. 다시 세상에 나는 것도 괴로우니라
(莫生兮其死也苦 莫死兮其生也苦)”.
어머니를 장사지내러 온 아들 사복이 “말이 너무 번거롭다”라고 하자 이에 원효는 다음과 같이 고쳤다고 한다.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모두 괴로운 일이다.(死生苦兮)”
실감나는 말이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항상 생존의 고통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죽음으로써 그런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사는 것에 더 이상의 미련은 없다.
잘되어 본적이 없기 때문에 집착할 것도 없다.
차라리 정신이라도 맑은 지금의 상태로 죽으면 손해는 없을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 더 이상의 죄는 짓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는 살기 위해 더 이상 몸부림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생각은 생각으로 그친다.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눈이 떠진다.
언제 그랬느냐 할 정도로 또 하루가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시작된다.〉
참회라는 말을 생전 처음, 마음으로 깊이 느껴 봤던 때가 1995년이었다.
나름대로 고시 합격을 위해 엄청 노력을 했지만 20대 청춘은 가버리고 30대 초반까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세월만 간다 생각하니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7월의 아직 익지도 않은 푸르디푸른 벼처럼 세상모르고 뭐든지 할 것 같았던 예전의 기운이 저절로 꺾어졌다.
그 뒤로는 풀이 죽어 지냈다. 분명 그동안의 노력과 열정이 있었건만 막상 내 손에 잡히는 실체가 전혀 없 었다.
오히려 있다면 나 하나 잘되고자 하는 욕망에 눈이 멀었던 것이 후회스럽고, 게다가 사람에게 잘 못했던 일들만 뚜렷하게 마음의 흔적으로 남았다.
나를 보기 위해 멀리서 찾아온 친구가 귀찮게 느껴졌던 기억 등 …. 그 때는 시간이 참 아깝게 느껴졌다.
그만큼 마음이 인색하였다는 증거였다. 마치 바늘하나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였다.
결국 나에게 남는 것은 과거에 대한 회한밖에 없었다. ‘후회된다. 허탈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했던 우쭐함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그런 나의 어리석음이 밉다.
나의 매정하고 냉정함에 마음이 아팠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나 따뜻한 마음을 쓰는 게 어렵거나 돈이 드는 것이 아니지만
그 때는 그만한 인격을 갖추기에는 내 그릇이 너무 적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용량이었다.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어떤 심정일까?
무엇을 바라기위해 몸부림치지는 않을 것이다.
대법원의 대법관을 지내신 어떤 분이 해주신 말씀이 기억난다.
“이름 석 자가 중요하네. 죽을 때 ‘그 사람 참 아까운 사람이었는데 또는 좋은 사람이었는데’ 라는 말을 들어야지 ‘그 사람 잘 죽었어’ 라는 말을 듣지는 않아야 하네.”
결국은 삶의 흔적, 지나온 과거에 대한 회한밖에 남지 않는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기억과 자신의 어리석었던 행동들만 남는다.
마치 허공에 레이저를 쏘듯이 흔적이 다 남는다.
이게 다 업력이 되어 그에 상응한 과보를 받는다.
인과응보(因果應報)라 하지 않던가.
그러나 지금이라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참회의 마음이 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법신(法身)은 순수무구(純粹無垢)한 우리의 자성(自性)을 말하는 것이고,
업력(業力)이라는 말은 그 자성과 동떨어져 있는 것을 말하고,
참회(懺悔)라는 말은 업력을 소멸하기 위해서 자성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라고 한다.
우리가 지은 죄는 허공에 다 담아도 부족하고, 알게 모르게 지은 죄가 더욱 크다.
그리고 참회는 절실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을 한다.
복을 빌었다가 안 되면 뒤돌아서버리는 그런 게 아니다.
집에서만 공부하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몸이 무거워 책을 접고 잠시 기분전환 삼아 목욕탕을 갔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평소 보이지도 않던 선풍기에 쌓인 먼지들이 유난히 눈에 거슬렸다.
마침 일하는 아저씨가 보이기에 아무생각 없이 “아저씨, 선풍기 먼지 좀 터세요.” 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나의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자주 닦아요.” 하면서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그는 잠시 뒤 다시 오더니 대뜸 나에게 말했다.
“당신! 나이도 젊은 사람이 왜 기분 나쁘게 말해!”
그는 화가 나있었다.
내 말투에 기분이 나쁜 것 같았다.
상황을 보아하니 얼른 고개를 숙여야 하겠기에 “미안합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일부러 그 사람을 피해 욕조에 들어가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사실 내 말투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무심코 하는 말인데 듣는 사람은 기분 나쁘게 들리는 모양이었다.
그 사람은 욕탕 안을 몇 번이나 들어왔다 나갔다 하였다.
분이 안 풀리는 모양이었다.
차라리 기분 나쁘다고 그 자리에서 성질을 냈으면 나았을 것을
그때는 아무 말 못하다가 속으로 분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니까
그 사람도 자기감정을 어떻게 주체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얼른 자리를 피하고자 욕탕을 나왔더니
그 사람이 1층 매표소에 있던 주인을 데리고 와 있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자식이 싸가지 없게 말한 그 놈이다.”
나는 다시 한 번 그에게 공손히 인사하면서
“미안합니다.”를
거듭 반복함으로써 아무 일 없이 욕탕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무겁고 착잡했다.
‘언제까지 이런 일을 겪고 살아야 하는지’
참 인생이 서글퍼졌다. 아파트에 도착하자 경비 아저씨가 소포가 왔다면서 물건을 전해줬다.
아는 분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분은 내가 대학교 4학년 때 하숙을 할 때 만났던 분이었다.
가끔씩 좋은 책을 보내주곤 하였다.
집에 들어와 소포를 뜯어보니 책이었다.
고마움이 물 밀처럼 밀려왔다.
나같이 세상에 내세울 것 없는 서글픈 사람에게도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책을 보내준 그분의 따뜻하고 고마운 마음이 느껴졌다.
그러니 그 책을 그냥 받을 수 없었다.
고마움에 대한 예의를 차리고 싶었다.
그 책을 상위에 올려놓고 평소 잘 듣던 천수경 테이프를 틀었다.
“정구업진언 수리수리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처음 시작하는 이 부분을 독경 소리에 맞춰 따라하자마자
갑자기 속에서 어떤 기운이 꿈틀거리더니 눈물이 솟구쳤다.
눈물뿐만 아니라 콧물로 범벅이 되면서 엉엉 울었다.
‘참아야지’ 해도
가슴 속 깊은 데로부터 용솟음쳐 나오다보니 주체를 할 수 없었다.
‘목 놓아 운다’는 말의 느낌을 실감하였다.
그 날 얼마를 울었는지 모른다.
마침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다행이었지
위층 아래층에선 내 울음소리에 무슨 큰 일이 났는가 싶었을 것이다.
엄청 큰소리로 울었기 때문이다.
억제해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주체할 수 없었다.
마치 시추공에서 석유가 펑펑 나오듯이 눈물이 계속 솟구쳤다.
앞으로도 그렇게 많이 울어볼 기회가 과연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건 지금까지 울어봤던 울음이 아니었다.
가진 것을 잃어버렸을 때,
일이 잘 안 풀릴 때
가슴을 태우고 우는 눈물이 아니었다.
울음이 그쳤을 때는 얼마나 시원했는지 모른다.
마치 태풍이 지나간 후의 맑은 바람이 부는 것처럼.
나 자신이 무척 깨끗해지고 가벼워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罪無自性從心起 죄무자성종심기
죄라는 것은 원래 실체가 없이 마음 따라 일어나니
心若滅是罪亦忘 심약멸시죄역망
마음이 소멸되면 죄 또한 없어져서
罪忘心滅兩俱空 죄망심멸양구공
죄도 죄짓는 마음도
是卽名爲眞懺悔 시즉명위진참회
그런 상태를 이름하여 진참회라 부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귀한 눈물이었다.
외적인 조건을 성취하기 위해
그동안 고시라는 거울 속의 그림자에 시달려왔던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거울 속의 그림자가 아무리 형형색색, 울긋불긋하다고 해도
그 실체는 공(空)하다고 한다.
그렇다고 현실로는 없지 않으니 없는 듯하되 있고,
있는 듯하되 없다고 한다.
눈앞에 보이는 겉모양들이 보기에는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없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면 진리를 발견한다고 하였다.
그 동안 그 그림자가 허망한 그림자임을 알지 못했으니 착각 속에 살았던 것이다.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온갖 겉모양은 모두 허망하니 모양이 모양 아닌 줄 알면 바로 여래를 보리라.
형상에 속지 말고 본바탕을 보아야
부처도 보고 진리도 보고
삶도 넉넉해지고 여유가 생겨
즐거워지고 행복해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