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주시주상봉(化主施主相逢)>
경상남도 산청군(山淸郡)에 심원사(深遠寺)라는 절이 있다.
심원사는 너무 오래되고 낡아서 비가 오면 빗물이 법당 안으로 새어 들어와서 주지인 지경(志經)스님은 이 절을 중수 하고자 원(願)을 세워 백일기도를 하였다. 기도 회향 날 꿈에 부처님께서
“네가 내일 동구 밖에서 맨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시주(施主)를 청하라.”하시었다.
이튿날 아침. 지경스님은 아침 예불을 하고는 권선문을 들고 설레는 마음을 달래며 동구 밖에서 서성거렸다. 그런데, 맨 처음 나타난 사람은 윗마을 조부자 집에 사는 머슴 삼돌이가 아닌가?
‘부처님도 무심하시지. 저 머슴이 무슨 돈이 있다고 시주를 부탁하란 말인가?’
그만 맥이 탁 풀린 스님은 땅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이 모습을 본 머슴이 다가와
“스님!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하며 부축을 해 일으켰다.
스님은 몇 번을 망설이다가 그래도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떠올리며 절을 중수하고자 하니 시주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뜻밖에도 머슴은
“절을 중수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모르지만 제가 그동안 장가가려고 모아 온 품삯을 드릴테니 스님 보태어 절을 중수하십시오.”
그러면서 기꺼이 권선문에 백냥이라고 써 달라는 게 아닌가?
“아니 당신에게 어떻게 이처럼 큰 돈이 있을 수 있습니까?”
“예 스님. 저는 조부자 집에서 삼십여 년 간을 머슴으로 살아오면서 장가가려고 한 푼도 안 쓰고 모았습니다만, 장가가는 것보다 더 뜻있는 일에 써야지요.”
“고맙습니다. 부디 소원성취 하십시오.”
지경스님은 머슴 삼돌이의 마음에 감탄을 하며 몇 번이고 인사를 하였다.
며칠 후 머슴은 돈 백 냥을 가지고 심원사로 왔다. 머슴이 법당 안에 들어서자 언제나 근엄한 모습의 부처님께서 빙그레 웃고 계셨다.
“부처님! 저는 못 배운 게 한이올시다. 이렇게 남의 머슴으로 평생을 지내고 있습니다만, 부처님! 다음 생에는 부디 저도 배워서 남의 머슴신세만은 면하게 해주십시오.”하며 머슴은 부처님 전에 절을 하였다.
머슴 삼돌이가 평생을 모아 온 뼈아픈 그 돈을 시주한 이야기를 들은 동네 사람들은 모두 다 미쳤다고 수군거리며 지경스님이 꼬여서 돈을 뜯어냈다고 헛소문을 내고 다녔다. 모두들 욕을 하고 비방을 해도 절을 중수하는 일은 착오 없이 진행이 되어 마침내 심원사는 비가와도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도록 훌륭하게 중수되었다. 허나 모든 재산을 다 바친 머슴은 이제 돈이 없어 장가도 갈 수가 없었다.
절이 중수되어 한 해가 지나갈 무렵 그 머슴은 중풍이 들어 앓다가 앉은뱅이가 되어 버렸다. 머슴은 조부자 집에 살 수도 없었다. 사람들 등에 업혀 절에 들어오게 된 머슴을 스님은 정성껏 간호를 하였다. 시주한 공덕이 있으니 꼭 나으리라 믿으면서 머슴을 위해 백일기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백일기도도 마치기 전에 그는 우연히 눈이 멀더니 덜컥 죽어 버렸다. 허탈한 마음을 달래며 정성껏 화장하여 장례를 치루어 준 스님은 허망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이토록이나 부처님이 야속할 수 있단 말인가. 한 푼 쓰지 않고 평생을 머슴살이 하여 모아 온 그 돈을 부처님께 시주한 공덕도 몰라주시다니.”
화가 난 스님은 도끼를 들고 법당에 들어가 영험도 없는 부처님을 한없이 원망하며 부처님 이마를 도끼로 내리쳤다. 그랬더니, 도끼가 이마에 박혀 빠지지를 않았다. 온 힘을 기울여도 빠지지 않자 겁이 난 스님은 도끼를 그대로 놓아두고는 절을 떠나버렸다.
바랑 하나 걸머지고는 이 산 저 산 명산대찰(名山大刹)을 찾아다니며 공부하기 어언 이십 오륙 년.
그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스님은 무심히 흘러가는 흰 구름만 보아도, 봄이면 피는 노오란 창포난을 보아도, 안개비가 소리 없이 내리는 것을 보아도, 심원사를 생각하며 그 옛날을 그리워했다.
‘지금쯤 심원사는 완전히 폐허가 되지나 않았는지? 지금쯤 심원사 법당 앞뜰에는 창포난이 만발하겠지. 지금쯤은 누군가가 들어와 도끼를 빼고 부처님 시봉을 하고 있겠지.’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어느 날은 심원사 부처님을 뵈옵고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절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날, 산청군에 새로 부임한 박영제(朴永劑)라는 원님이 심원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그럴 리가 있느냐. 내가 가서 한 번 빼보리라.”하며 이방과 몇 명 권속들을 데리고 절을 찾아왔다.
원님이 심원사에 오신다는 소문에 온 동네 사람들이 절로 모여들었다. 원님께서 심원사에 와서 보니 과연 듣던 이야기대로 부처님의 이마에는 도끼가 박혀 있었다.
“참 괴이한 일이로구나.”하며 손으로 부처님 이마의 도끼를 잡으니 쑥 빠지는데 ‘화주시주상봉(化主施主相逢)’이란 쓴 글자가 도끼날에 씌여 있었다.
그 글귀를 보는 순간 원님은 활연대오(豁然大悟)하였다. 그때야 원님은 전생의 자기를 볼 수가 있었다.
도 끼를 뽑는 순간 구경꾼들 속에 있던 지경스님은 원님 앞에 나아가 절을 하니 원님은 스님의 손을 잡으며 “스님! 나는 전생에 스님의 덕택으로 시주한 공덕이 있어 일자무식으로써 삼세에 받을 업보를 한 생으로 끝마치고 금생에 좋은 곳에 태어나 이런 벼슬을 하게 되었구려.”하며 스님과 함께 부처님 앞에 나아가 한없이 절했다.
얼마 후 부처님을 쳐다보니 도끼가 빠져 이마에 난 상처는 깨끗이 없어지고 이마에서는 백호광명이 빛났다. 이것을 본 원님은
“스님!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나와 함께 이곳에서 공부합시다.”하며 스님을 붙잡았다. 구경하던 마을 사람들은 모두들 이제부터는 부처님을 정성껏 섬기기를 다짐하며 부처님께 절했다.
천심으로 시주한 공덕으로 한 생을 머슴살이로, 한 생을 앉은뱅이로, 한 생을 눈 먼 장님으로 이렇게 삼생(三生)을 고통 속에 살아야 할 악업의 업보를 한 생으로 끝마쳤다 한다.
당해야 할 고통은 피할 수 없다
이상은 무등산 광륵사에서 발행하는 「광륵지」에 소개된 글을 있는 그대로 인용하였다.
우연하게 그 글을 보았지만 그 글을 읽고 난 순간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한줄기 서광이 비치는 듯하였다. 무릎이 절로 쳐지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해답을 전혀 알지 못했던 의문이 확연히 풀렸다. 나는 분명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고시생이라는 장면에서 더 이상 진도가 나아가지 않았다. 한 장면에 무려 10년 이상 정지되어 있었다. 영화라면 관객들은 지루해서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하물며 보는 사람이 그 정도라면 당사자의 속은 어떠했겠는가?
그동안‘어째서 내 인생은 이렇게 잘 풀리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달고 살았다. 패기만만했던 젊은 청춘이 아무 것도 이룬 것 없이 고시 하나에 매달리게 되어 버린 내 모습을 보면 너무 너무 처량하고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답답할 뿐이었다. ‘인생의 패배자’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원했던 모습은 실상 이런 게 아니었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처량한 신세가 되어버렸는지….
20대 청춘이 고민만 하다 흔적도 없이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어떻게 보면 세상이 무섭게 느껴졌다.
그 러나 위 설화를 읽고 나서 한 생각 바꿔버리니 오히려 나는 인생의 실패자가 아니라 축복받은 사람이었다. 참 희한한 일이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한심하고 힘든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업장을 소멸하는 과정이었다. 축복받은 시간이었다. 고통이 강하면 강할수록 업장 소멸도 더 잘되었을 것이다. 남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받은 것은 전생에 내가 남을 무시하는 업보를 쌓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금생에 그 업보를 달게 받아야만 했던 것이다.
결국 내가 받아야 할 고통은 내 업보였을 뿐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동안은 어차피 내가 풀어야 할 매듭들이다. 금생에 풀어버리면 그만큼 값어치 있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고시’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동안 나는 업장 소멸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받아야만 할 고통이라면 늙었을 때보다는 오히려 젊었을 때 받는 것이 더 축복받은 일이 아니겠는가?
내 가 생각할 때 이 설화의 주제는 받아야 할 고통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당대에 한꺼번에 받느냐 아니면 여러 생에 나눠서 받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복 있는 사람은 그래도 당대에 한꺼번에 받아 업장소멸하고, 다음 생은 좋은 인연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 머슴은 금생에는 별 볼일 없었지만 업장 소멸이 되다보니 다음 생에는 원님이 되었다.
그 것도 여러 생으로 찔끔찔끔 나눠 받는 것보다는 당대에, 또 젊었을 때에 한꺼번에 받아버리는 것이 그나마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논리의 비약이 없듯이 받아야 할 과보는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럴 바에는 체력과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있는 젊은 시절에 겪는 게 상책이다. 그래서 옛 분들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 먹기 나름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마음 한번 돌이키니 부정이 긍정으로, 고생이 축복으로, 비관이 낙관으로, 초조가 여유로 마술같이 변하였다. 희한한 일이었다. 그 후로 내 처지를 비관하는 못난 짓을 스스로 하는 일은 없었다.
心滅故龕墳不二(심멸고촉루불이)
마음이 생기면 만물의 갖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멸하면 무덤, 해골물이 둘이 아니구나
-원효스님의 오도송-
원효 스님이 입당유학(入唐留學)을 하고자 의상 스님과 서라벌을 출발하여 남양(지금의 수원) 해안에서 해골 물을 마시고 대오(大悟)하여 의상에게 말하였다.
“법 이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는 것이요, 먼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 가지 생각 가운데 있는 것도 아니고, 한 생각을 돌이키는 데 있는 것일세. 이제 이것을 깨닫고 보니 멀리 당나라까지 가서 다른 사람에게 물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네.”
心生卽種種心生 心滅卽種種心滅 如來大師云 三界虛僞 唯心所作
한 생각이 일어나니 갖가지 마음이 일어나고, 한 생각이 사라지니 갖가지 마음이 사라진다. 여래께서 이르시되, 삼계가 허위이니 오직 마음만이 짓는 것이다. -금강경-
옛 말에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이라고 했다. 춥고 배가 고파야 도를 닦을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비록 시작은 잘되고 싶어 하는 본능으로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쟁취하고자 노력을 했지만, 실패하고 좌절하고 비관하고 그랬던 그동안의 시간이 그저 사는데 급급한 것만은 아니었다. 후회가 없었다. 참 좋은 공부를 하였다.
부 처님도 온갖 난행과 고행을 거쳐 성불하였듯이 세상살이에 난행과 고행이 없을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의 사바(娑婆)라는 개념은 ‘참고 견뎌야 하는 세계’라고 한다. 결국 우리는 사바세계에 살기 때문에 참고 견뎌야 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런 모든 어려움이 나의 의식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하면 인욕(忍辱)하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