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이 약자들에게 적용되는 사례
이 한목숨 끊어 속죄하고 싶으나(명의신탁의 피해자들)
준게 없는데 준게 없다는 것을 증명하라니(명의신탁의 문제점)
자료철들을 정리하다가 탄원서라는 파일을 보게 되었다.
탄원서의 내용을 읽다보니
평소 우려하던 상황이 공식처럼 시간 순서대로 납세자에게 벌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탄원서는 원고가 담당재판부 판사에게 구구절절이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 내용이었다.
사실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본다.
갑은 건설업을 하기 위하여 자본금 1억으로 A회사를 설립하였다.
발기인들과 회사임원들이 필요하다보니
매형, 동생, 조카, 처, 원고 본인 등으로 임원 또는 주주로 등재하였다.
물론 모든 회사경영은 갑이 다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명의만 빌린 것이다.
그 후 종합건설업등록을 하기 위해 자본금을 16억으로, 또 다시 30억으로 증자하였다.
물론 가장납입이다. 하루에 1억 원당 15만원씩 이자를 주기로 하고 사채를 빌렸다.
그러다 회사가 어려워 4억 원에 회사를 매각하기로 하고 계약금 1억 원을 받고
소유주식 전부를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매수인이 잔금을 차일피일 주지 않자 계약을 해제하고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
그러나 갑은 매수인의 꼬임에 넘어가 매각대금을 한 푼도 못 받았다.
그 사이 회사 이름은 B회사로 바뀌었다.
갑은 매수인을 수십 차례 찾아다녔으나 행방이 묘연하여 현재까지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과세요건사실에 해당한다.
명의신탁증여의제다.
회사설립하기위해 친척들 명의로 주식분산을 했기 때문에 증여의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명의 빌려준 사람들은 증여세를 내야 한다.
갑은 탄원서 중간 중간마다 자신의 무식함을 한탄하고 있었다.
탄원서는 계속 이어졌다.
어느 날 회사사무실로 세무공무원 두명이 찾아왔다.
그들은 B건설의 주식변동상황조사를 통해 갑의 주식양도사실을 알고 확인하기 위해 현지조사하러 나왔던 것이다.
명의를 빌려준 친척들에게 명의신탁 증여의제로 세금이 나간다는 조사자들의 말을 들었다.
갑은 친척들에게는 세금이 나가지 않도록 해달라고 사정을 하면서 조사자들에게 확인서를 써주는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 소송에서는 그 확인서가 명의신탁을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
갑의 당초 기대와는 달리
매형 앞으로 4억6600만원,
동생 앞으로 2억3600만원,
조카 앞으로 7100만원,
갑 본인에게는 양도소득세와 증권거래세 1800만원,
그리고 법인세 합계 7억9000만원의 세금이 부과되었다.
그리고 3개월에 한 번씩 신용불량으로 등재한다는 통보장이 각자의 관할세무서에서 집으로 통보되었다.
이정도가 되면 그 다음 상황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가정이 점점 깨지는 소리가 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재산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압류해서 공매 해버릴 것이고 설령 재산이 없더라도 신용불량자로 은행연합회에 통보해버린다.
그 다음은 신용불량자로서의 고통이 따르게 된다.
탄원서는 또 이어진다.
매형은 그나마 가지고 있는 땅 조그만 한 것과 아파트를 압류당하다보니
누나와 자꾸 싸우게 되고 결국 이혼소송까지 가게 되었고,
37살 동생은 4살, 2살의 아이들과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는데 신용불량으로 사회생활에 규제를 받아 가정이 파탄지경이며,
32살 조카 역시 3살 1살의 애들과 처 4명의 가족에 화목함이 사라지고 생존의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갑은 현재 그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지금의 심정은 차라리 무식한 이 한목숨을 끊어 여러 가족들에게 속죄하고 싶으나
다른 가족들의 신용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명의신탁증여의제로 증여세과세한 건을 아주 많이 보면서 느낀 점을 말하고자 한다.
우선 명의신탁증여의제로 한 번 걸면 국세청이 패소할 확률이 아주 낮다.
그 이유는 조세회피목적이 없다는 점을 납세자가 증명해야 하는데
이를 증명하기란 상당히 어렵게 법으로 규정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사공무원이 실적내기도 참 좋다.
그러나 거의 다 체납이다.
야누스의 얼굴이다.
그동안 사건을 보면서 느낀 게 명의신탁을 하는 동기가 다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별된다는 점을 알았다.
부동산명의신탁은 무효이므로 위 규정은 주식에서만 문제된다.
첫째 유형은,
주가조작을 하기 위해 차명거래가 필요한 작전세력들이나
협회등록을 대비해 시세차익에 대한 주식양도소득세를 회피할 목적으로 주식을 분산시키기 위해 차명계좌가 필요한 대주주들
그 외 시세차익을 얻기 위한 사람들에게 차명계좌를 만들어 주거나 스스로 주민등록증을 제출하여 차명계좌개설에 협조해주는 수탁자들
둘째 유형은,
회사설립을 위해 발기인 또는 주주가 필요하므로 가족회사차원에서 가족들이 명의를 빌려주거나
회사설립만을 목적으로 주주로 등재된 사람들로서
이 경우 회사설립이후 주식양도가 없는 경우이고 주주로서 권리행사가 전혀 없는 경우다.
셋째,
경제적약자로서 회사 사장 등 생존권을 위협하면서
반강제적으로 주민등록증이나 인감증명의 요구에 별일 없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로 명의를 빌려주는 사람들
위 세 가지 유형 중에서 진짜 명의신탁증여의제를 걸어야 할 유형은 첫째 유형이다.
스스로 협조하거나 자기 명의를 빌려주면서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탁자에게도 소득이 있기 마련이다.
둘째 유형은 단지 회사설립용으로 사람들이 필요해서 이름만 빌려 설립해놓았지만 명의 빌려준 사람들이 회사경영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경우다.
따라서 이들에게 명의신탁증여의제라 해서 증여세를 과세하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질 것이다.
70세가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아들의 회사설립에 발기인으로 인감을 떼어 준 죄로 억이 넘는 세금이 부과되는 사건도 있었다.
세 번째 유형은 진짜 과세를 할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대체로 그들은 회사 윗사람들로부터 명의 빌려줄 것을 요구받지만 거절하면 그 불이익이 두려워서 할 수없이 빌려주는 경우다.
경제적 약자로서 서러운데 세금까지 부담해야 한다면 밥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서 도저히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탄원서의 내용 중 한 구절을 인용해보기로 한다.
“존경하오는 판사님 본인은 무식하여 잘은 모릅니다만
세금이라는 것은 이익이 발생하여 그에 대한 세금을 내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본인이 잘못 알고 있는지요?
본인은 위장납입을 했다 해서 700만원의 벌금형을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자본금이 없다하여 벌금형을 받았는데 세무조사에서는 명의 빌려준 친척들에게 증여세를 부과하였습니다.
가진 게 없는데 무엇을 증여하였다고 증여세를 부과하였으며
조세회피목적이 없다는 증명을 하라고 하는데 준게 없는데 준게 없다는 증명을 하라고 하여
증명할 방법을 알아 보러 여러 변호사들을 만나보아도
현재로서는 증명할 방법을 모른다고 하고
국세청에 문의를 하여도 답이 없다고 하여
세무박사님을 만나서 상담을 해보니
헌법재판소에 위헌신청이 되어있으니 그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이런 악법은 없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국민이면 법을 따라서 사는 게 당연하지만
없는 것을 주었다고 증여세 부과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되며 ……..
무식한 본인을 처벌하여주시고 매형 동생 조카는 죄를 사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이게 일반인이 느끼는 법감정이다.
바로 현실과 법에 괴리가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런 일들이 계속 발생해도 법원은 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명의를 빌려 세금을 내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게 이유였다.
현재 세금이 회피되지 않았더라도 그럴 개연성이 존재하면 증여세 과세가 정당하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명의 빌려준 행위를 제재하려면 과태료로 할 것이지
증여세라는 고율의 세금폭탄으로 하는 것은 위헌법률이라고 여러차례 위헌소송이 제기되었다.
지금까지는 합헌이라고 결론이 났지만 위헌 의견이 그래도 증가하고 있는 경향이다.
지금은 대법원도 사소한 조세회피 가능성만으로는 증여세 과세는 위법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같은 법규정을 놓고 보는 관점이 다르면 판례가 달라진다.
이게 전문성이다.
시각을 더 넓게 보면 똑같은 규정이라도 얼마든지 더 따뜻하게 해석할 수 있다.
세금은 절대 남의 일이 아니다.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언젠가 세금이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는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을 손볼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