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나는 절에서 영가천도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아왔다. 그때마다 의문이 있었다.
‘과연 이렇게 천도재(遷度齋) 한 번 했다 해서 죽은 영가들이 좋은 데로 가는 것일까?’
속초 홍련암에 갔었을 때였다.
일주일이 다 되어 떠나기 전날 기도를 회향하는 의미에서 같이 갔던 일행 중 한분이 남편에 대한 천도재를 지냈다.
나와 같은 방황과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가상(假想)의 스님을 빗대어 나의 생각을 말하고자 한다.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49재를 왜 합니까”
스님은 ‘하하하’크게 웃으면서 말을 하였다.
“시간과 건강을 가진 사람이 진짜 부자입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 죽음인 줄을 모르고 본성을 거슬리면서 오직 자기이익을 위해서만 살았다면 그 죄업을 어느 누가 대신해서 씻어준단 말인가.
좋은 일을 해야 마음이 뿌듯하지 남을 해칠 때 뿌듯해지는 것이 아니잖은가. 마음이 음침해진다. 이 공간에는 수를 세지 못할 정도로 수많은 파장들이 있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 수 있는 이유가 전파 때문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전파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에도 파장이 있다. 이러한 마음의 파장은 여러 갈래이다 보니, 좋으면 좋은 파장으로 연결되고 어두우면 어두운 파장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얼굴에 그것이 나타나는 것이다.엉큼하고 어두운 마음을 쓰면서 해맑은 미소를 지울 수 없기 마련이다.
세상일은 다 유유상종이다. 친구도 끼리끼리 만나듯이 선과 악은 끼리끼리 어울리게 된다. 선은 선끼리 악은 악끼리 말이다.
그러니 내 파장이 어둡고 침침한 것이라면 그에 걸맞은 사건들이 뒤따라오는 것이다.
누워서 침 뱉기처럼 그동안 살면서 뿜어냈던 독한 기운들이 그대로 다시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게 후손에게도 다 미치는 거다. 선한 사람이 살아생전에는 사는 재주가 없어 힘들게 사는 것 같아도, 그건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판단한 것이다.
지금 생 말고도 앞으로도 해야 할 멀고 먼 여행길을 생각한다면 그게 다 복으로 남는다. 후손들에게도 좋은 길을 닦아놓는 것이다.
설령 어떤 병을 앓게 된 것도 또는 가족의 죽음도 어떤 무언의 암시라고 보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是罪亦忘) ’이라고 했다.
모든 죄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마음으로 참회하면 그것으로 모든 죄가 소멸된다는 것이다.
살아생전에 그런 참회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가진다는 것이 오히려 얼마나 다행인가. 비명횡사하는 사람들은 참회의 시간도 없는 것이다.
몸은 분명 없어졌는데 자신은 죽었다는 것을 모르고 계속 살아있다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럴수록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삶에 대한 그리움과 애착이 더 강해져 갈 길을 못가고 구천을 헤매는 것이다.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사명이 「순수를 추구하는 마음」 이라고 할 때 인간으로 태어나서 비록 한 발짝일지라도 그 한걸음을 내딛으면 결국 진보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발 한발 내딛는 것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멀리 나가는 사람부터 여러 부류이겠지만, 오히려 뒷걸음치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난 보람이 없는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렵냐하면 불교설화에 이런 표현이 있다.
“만년 묵은 자라가 만 미터에 사는데 숨을 한번 쉬기 위해 만년에 한번 수면위로 떠오를 때 마침 떠내려 오는 통나무의 뚫어진 구멍으로 자라의 목이 탁 걸렸을 때의 확률과 똑같다.”
찾지 않아도 이미 있는 것을 마치 저 멀리 있는 것처럼 또는 노력해서 얻어야 할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니 사람 따라 장소 따라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잎처럼 한평생을 안주하지 못한 채 사는 것이다.
그래서 참회가 중요한 것이다.
진실로 자기 것은 없다.
사람이 잘 먹어야 힘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먹는 것보다는 어떤 기운을 먹고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무엇을 가지려고 하거나 추구하려고 하다보면 그 집착의 기운이 결국 우리 몸을 태우는 것이다.
찾지 않아도 이미 있는 것을
그동안 열심히 애써왔던 것들이
또 하나의 나를 만들기 위한 공허함
손에 잡히는 실체가 아님에도
결국 남는 것은 부끄러운 행적뿐
나 자신에게 속았다네.
구름 속에 살았다는 것을 알고
청산을 보고자 마음먹었지만
이 또한 어리석은 이야기
마음내서 찾을 정도로 멀리 있지도 않은 것을
구태여 찾으려고 애를 썼다네.
찾지 않아도 이미 있는 것을
태어나기 전 나, 죽어서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