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29세 때 사법고시 2차 시험을 보고 난 후 한 여름이었다.
7월 중순쯤 전화가 왔다. 옥과 용주사에서의 기도스님인 혜각스님이었다. 영해 유금사라고 하였다. 그 다음날로 대충 짐을 싸서 일주일정도 있을 심산으로 길을 떠났다. 우선 포항으로 갔다. 은사스님이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포항시내에 있는 고불선원이었다. 그 스님은 볼이 푹 꺼진 내 얼굴을 보더니 대뜸 말 한마디를 던졌다.
“그까짓 고시에 얽매여 살아갈 필요가 있나”
이렇게 말하는 게 스님들의 속성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스님들은 뭐든지 세상일이 무상하고 별 볼일 없다는 투로 말한다. 그 대안은 제시하지 않는다. 그 스님의 경우도 내심으로는 머리 깍아 중되는 것이 낮지 않겠느냐는 투였다. 그러나 머리 깎아 중 되는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면 지금이라도 깎을 것이다. 그러나 뭔가에 자신의 온 열정과 청춘과 인생을 걸고 열중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지 못한다. 단지 그들은 결과만을 보고 말할 뿐이다.
“제가 좋아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자 그 스님은 “열심히 한다?”라는 말을 혼자 여러번 중얼거리면서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하긴 자기가 좋아서 한다면야’라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 스님으로부터 영해까지 가는 교통편을 전해 듣고 그 다음날 오전에 출발하였다. 영해까지 버스로 가는 길은 동해안을 끼고 가는 도로였다. 차창 밖으로 바닷가를 보면서 가다보니 별로 지루하지는 않았다. 대게로 유명한 영덕을 지나서 영해에 도착하였다. 거기서부터는 택시를 타야 했다. 산길을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임도인 비포장도로를 따라 한참 올라가다보니 저 멀리 산 정상에 절이 보였다. 첫눈에 괜찮아 보였다. 그 절도 주지가 비구니인 절이었다. 혜각스님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주지스님이나 공양주보살에게 인사를 한 후 혜각스님이 말하였다.
“고군, 여기 있으면서 예불 드릴 때마다 108배 정도만 하게. 그리고 편하게 쉬었다 가”
그 스님은 기도를 참 성심성의껏 잘하는 분이었다. 요령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염불도 나지막하고 굵은 목소리로 참 잘하였다. 그날 저녁예불부터 절을 하였다. 절을 해보니까 이게 운동 삼아 하기에는 참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108배정도면 속도를 빨리 하면 10분이 채 안걸린다. 기도시간은 전체 2시간이고 정근만 거의 1시간인데 10분하고 나면 별할일 없이 서있어야 한다. 염불독송도 절을 하면서 하는 것과 막연히 서있으면서
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왕이면 몸을 움직이면서 하는 게 훨씬 낫다. 체력이 못 받쳐주니까 절을 못하는 것이지 체력만 있다면 원 없이 해도 몸에 이로우면 이롭지 절대 해가 되지 않는 게 절이다. 절하는 곳이라 해서 절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30분, 한 시간, 한 시간 30분씩 점점 절을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리고 하는 속도가 훨씬 더 빨라졌다. 한 번씩 법당에서 절을 하고 나오면 온몸에 땀으로 가득하였다. 빨래하는 게 일과가 되었다.
스님은 지장기도를 하였다. 지장보살이라는 분이 있다. 그분은 지옥에 있는 중생들을 다 제도하고 난 후에야 성불하겠다고 부처님에게 서원을 세운 분이라고 한다. 지옥은 오지마라고 아무리 막아도 구름같이 몰려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지장보살은 평생 성불하기가 어렵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원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었다.
처음 일주일 정도 될 무렵 기도의 반응인지 목소리가 떨리면서 점차 몸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합장하였던 두 손이 마치 자석에 끌려 서로 붙여진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영적 기운이 오는 듯 했다. 뭔가 색다른 경험을 하는가 싶었다. 근데 갑자기 스님의 호령이 떨어졌다.
“고군”
큰 소리에 눈을 뜨니까 그 이상한 힘은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고군, 삿되게 기도하지 마. 앞으로는 속으로만 정근을 하도록 해.”
아쉬웠다. 뭔가가 오는 것 같았는데 삿된 것이다 하니 할 수없이 속으로만 지장보살 지장보살 할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꿈을 꾸기 시작했다. 처음 하루는 내가 알고 있는 가족들 몇 사람만 보이더니 이게 하루가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꿈에 보이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었다. 약 일주일정도 꾸었다. 일주일쯤 되자 하룻밤에 꾼 사람의 숫자가 대충 짐작해도 엄청난 숫자였다. 수천 명 정도는 족히 된 듯 했다. 꿈은 꼭 새벽 일어나기 직전에 꾸었다. 그러다 도량석 소리에 꿈에서 깨어나도 꿈이 너무 생생하다보니 현실을 분간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마지막 날 꿈에는 경내에서 어떤 스님이 절을 떠나는 모습을 내가 위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 뒤로는 꿈을 꾸지 않았다. 나이들면서 보니 이런 꿈을 다시한번 더 꾸고 싶다. 산사람이 사는 원리와 죽은 사람이 사는 원리가 똑같다고 한다. 산사람도 고통을 당하고 있거나 누군가에 도움을 원하고 의지해야 할 경우가 생기면 우선 가장 가까운 혈육을 찾아가듯이 죽은 사람도 우선 자기가 의지할 만한 가까운 혈육을 찾아 간다는 것이다. 산사람의 고통은 돈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겠지만 죽은 사람의 고통은 돈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기도를 해주어서 그들에게 기도의 효험을 나눠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안에 스님 한사람 나오면 몇 대가 천도된다는 말이 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 사라진 다음부터는 온몸에 전기가 오듯이 짜릿짜릿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산책을 할 때 더 그랬다. 온몸의 세포가 환희심을 내어 좋아한다는 증거라고 하였다. 머리 정수리쪽에서는 마치 바늘침같은 것으로 기관총을 쏘듯이 빠져나왔다. 머리가 시원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저러나 난 그런 내용들에 관심이 없었다. 고시공부 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즐거울 뿐이었다. 차라리 절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 순으로 합격을 시켜준다면 자신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은 해우소(解憂所)에서 여자 화장품냄새가 났다. 방금 전에 여자가 들어왔다 간 것 같았다. ‘누구지?’라고 의문만 가진 채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났지만 그런 냄새가 날마다 났다. 그래서 어느 날 가만히 생각해 봤다.
‘도대체 누가 여기까지 와서 해우소를 쓰는 여자가 누가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한사람씩 따져봤더니 절에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유일하게 젊은 사람이 주지스님인데 그분은 이 해우소를 쓰지 않았다. 재래식 화장실이라서 짚을 깔아놓지 않으면 자칫 큰 것을 보다가 똥물이 튀킬 위험이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 이 절에 왔어야 하는데 산 정상까지 오려면 차가 아니면 올라오지 못한다는 생각이 미치자 주변을 돌아봤다. 산 밑에서 올라온 차는 없었다. 그렇다면?
“혹 내 몸에서 나는 냄새란 말인가?”
예전에 어떤 분으로부터 기도를 한창 하던 중에 입안에서 향기가 났다는 말을 무심코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이 상기되었다. 며칠이 지나면서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몸에서 향기가 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했다. 온몸이 짜릿짜릿하면서 머리는 너무 시원했고 얼굴에 윤기가 돌아 누가 봐도 나를 고시에 찌든 얼굴이라고 보지 않았다. 밥도 너무 잘 먹었다. 주는 대로 개걸스럽게 먹었다. 특히 기도스님은 예전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주지스님에게 자기가 먹는다고 부탁하여 요구르트 등 간식거리를 나에게 건네주곤 하였다. 스님은 이참에 나의 업력을 조금이라도 소멸시키게 앞길을 터주게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스님은 기도 중에 “고군은 여자들이 따라다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라고 말씀하였던 적이 있었다. 내가 봐도 그런 것 같다. 담을 넘어가는 데 한쪽 발을 누군가가 잡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애증이라는 말도 남녀관계에서 나오는 말이다. 사랑이 있기 때문에 미움이 있는 것이다. 사랑하지만 그만큼 돌아오지 않으면 마음이 상하고 그러면서 생긴 미움이 가슴에 두고두고 쌓이면 스스로를 괴롭히다가 한이 되는 듯하다. 남녀가 존재하는 한 애증의 관계가 청산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을 가지면 귀신이 된다는 데 그렇다면 귀신도 계속 많아질 것이다.
절에서는 3.7기도라고 표현을 한다. 21일 기도를 하는 경우를 말한다.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기도시간에 쉼없이 절을 하였다. 그리고 저녁예불이 끝나고 나서 밤 9시부터 나 혼자 계속 철야기도를 하도록 스님은 권했다. 오로지 촛불 몇 개만 켜진 깜깜한 텅 빈 법당 안에서 그 다음날 새벽예불시간까지 절을 하는 거였다. 저녁예불이 끝난 8시 이후에 땀에 젖은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수박 몇 조각을 건네주자 이를 맛있게 먹은 후 법당에 올라가서 절을 하기 시작하였다. 처음 한두 시간은 열심히 하였다. 그러나 밤 12시도 되지 않았다. 남은 시간이 많았다. 시계를 보다보니 갈수록 지루한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 요령껏 절을 하는 속도도 천천히 늦춰서 해 보았으나 요령피우는 마음이 한번 들어가자 계속해서 지루한 시간이었다. 나름대로 한참 하였다고 생각하고 법당 벽면에 걸어져있는 시계를 얼핏 보면 십분도 채 안되었다. 1시간 했다고 생각한 게 10분밖에 흐르지 않았다.
“에잇 요령 피워 봤자다. 이왕 하는 거 화끈하게 해보자”
다시한번 정신을 가다듬고 빠른 속도로 절을 하였다. 그러다가 조금씩 지치면 절 한번 하는데 몇 분 걸리는 것 같았다. 그럴 때는 귀신같이 스님이 나타나 호령이 떨어졌다.
“요령피우지 말고 해”
여름이다 보니 법당 문이 모두 열려 있었다. 스님도 주무시지 않았던 것 같았다. 법당 부근의 토굴에서 한번 씩 내려와 잘하고 있는지 관찰하였다. 그 때는 스님이 저승사자같이 느껴졌다. 스님도 무척 애를 썼다. 그날 밤중에 두 번이나 와서 나를 지켜봤다. 스님은 마치 내가 기도를 열심히 하게 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비구니 스님이어도 그때만큼은 남자 못지않은 추상같은 기운에 눌렸다.
“밖에서 밥 먹고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데 이까짓 하나 엄살 피우는 그따위 정신으로 뭐를 하겠어.”
일부러 꼭 신경질 나게 하는 말만 골라하였다. 실제로 그 효과는 있었다. 그 소리를 듣기 싫어서라도 열심히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절하는 속도는 108배 정도는 5~6분이면 충분하였다. 그런 속도로 하다 보니 다른 잡념이 들어올 여지가 없었다. 그야말로 아무 정신이 없었다. 있다면 내 몸이 아프다는 느낌밖에 없었다. 그것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픈 부분이 달라졌다. 절도 진짜 오래하면 통증이 신체부위에 따라 이동을 한다. 처음에는 허벅지부분이 아파온다. 그러다가 아픈 부위가 허리 아랫부분으로 옮겨져 몇 시간은 통증이 허리에 머물러 있다. 가장 마지막으로 오는 통증부위는 어깨쪽지였다. 허벅지는 아플 뿐이고, 허리는 끊어질 듯이 아팠고, 어깨쪽지는 찢어질 듯이 아팠다. 생눈물이 났다. 이 고통은 새벽예불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계속 지속되었다. 어깨쪽지가 가장 아팠다. 사지를 찢는 고통이 뭔지를 알 것 같았다. 아무튼 다른 부위 아픈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때 내 체력은 성인의 표준체력으로 산길을 1시간 걸린다면 나는 30분이면 충분하였다. 복근이 발달하여 임금왕자가 그려질 정도로 하체가 튼튼하였다. 절도 21일 동안 하루 8시간을 했는데도 마치 생전 처음 절을 하는 것처럼 몸의 여러 부위가 아픈 것을 경험하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모든 게 평온했다. 마치 폭풍이 지난 직후 고요함처럼. 절은 다음날 새벽 4시까지 계속 되었다. 법당 안으로 새벽예불을 드리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소문듣고 절에 올라온 사람들도 있었다. 모두들 나를 방해하지 않고자 내 자리 반대편으로 멀찍감치 떨어져 자리를 잡았다. 혜각스님도 도량석을 끝내고 법당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말하였다.
“고군, 예불 끝날 때까지 하게”
마침 그냥 끝내기에는 허전해서 계속할지 잠깐 동안의 내면의 갈등이 있었는데 스님의 말 한마디로 갈등이 말끔히 씻어졌다. 그리고 새벽 6시까지 계속하였다. 이제는 누가 말리지 않으면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몸은 완전히 풀려있었다. 신체의 장애는 없었다. 아무런 힘이 들지 않았다. 절을 해도 절을 한다는 느낌 자체도 없었다. 새벽예불이 다 끝나자 스님은 “이제 그만하게”라고 말하였다. 그 말을 듣고 절을 멈추었다. 그리고 스님에게 큰절을 드렸다. 그때 그 순간 나는 말이 끊어졌다. 일체의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단지 있다면 얼굴에 그려진 묘한 미소였다. 입 양쪽 끝이 위로 올라가는 스마일의 미소 바로 그것이었다. 내 얼굴 전체에 미소가 머금어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힘이 양쪽 입꼬리를 위로 슬며시 잡아당기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스마일이 연상되었다. 비로소 법당 밖을 봤다. 날이 훤히 밝아 있었다. 나는 아무 느낌이 없었다. 시원하다 뭐하다는 느낌도 없었다. 그렇게 그 절에서 기도체험을 하였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