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여름은 영해 유금사에서 기도를 하면서 보냈다. 21일 기도를 회향한 후에도 계속 하루 4번씩 기도에 참석하였다. 머리가 시원하다 못해 정수리에서 바늘침 같은 게 기관총 쏘듯이 ‘두두두’하고 나갔다. 그때 느꼈다. 머리의 시원함이 내 큰 재산이라는 것을. 비록 가진 것 없고 이룬 게 없는 보잘 것없는 고시생이지만 어느 재벌보다도 내가 더 큰 부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생각이 맞은 것 같다. 내 인생에서 그때가 가장 시원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공그리가 쳐지고 게다가 뜨겁기까지 한다. 두번 다시 그런 머리의 시원함을 느낄 수 없을 거기 때문에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만일 세상에 나가는 일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가끔씩 뒤돌아보지만 그때마다 근기가 부족하고 그릇이 적은 내 인연이 거기까지라고 자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해는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시험에 합격할 것 같았다. 부처님 상호를 보면 미소짓는 모습이 인자하게 보였다. ‘합격하면 좋은 일 많이 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하곤 하였다.
절집에는 두번의 안거가 있다. 하안거와 동안거다. 여름과 겨울에 정해진 날짜에 모여 약 90일 정도 정진을 한다. 그해 9월 1일 하한거가 해제되자 비로소 절을 나섰다. 기도스님은 유금사를 오면서 들렀던 스님을 찾아 인사드리고 가라해서 다시 찾아가 뵈었다. 이번에는 경주에 계셨다. 선원이 경주에도 있고 포항에도 있기 때문에 스님이 양쪽을 왕래한다고 하였다. 경주는 신라고도라서 그런지 주택가 옆에도 큰 능이 있는 것이 인상에 남았다.스님이 내 얼굴을 보더니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기도를 아주 열심히 했다더니 얼굴이 아주 좋구만”
나는 속으로 대답하였다.
“사람에게는 두개의 얼굴이 있는 듯 합니다. 본연의 얼굴과 살면서 살아가는 얼굴, 사람을 보려면 그 사람의 본연의 얼굴을 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편해지면 그 얼굴이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단지 세상살이를 하다보니 그 얼굴이 감춰져 있는 경우가 평상시에 많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내 얼굴을 보고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너무 흐뭇한 표정이었다.
어머님에게 큰 절을 올렸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좋아했다.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고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供養具)다’ 라는 말이 실감났었다.
공부한다고 찌들어 있는 얼굴을 보면서 사람들이 기분 좋아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얼굴을 항상 밝게 하면서 산다는 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좋게 해주는 것인데 그게 평상시에도 된다면 대단한 도력일 것이다.
집에서 며칠 머물다 다시 경주에 갔다. 당시 그곳에는 출가준비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이가 나와 같았다. 비위가 약해서 그런지 세상일에 시큰둥하였다. 고시공부하는 이들을 욕망에 집착하는 단순한 존재들로 생각하는 반면 자신은 머리를 깍아 올바른 선택을 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마 세상일을 자기가 좋아서 열심히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다음날 그와 함께 경주 남산에 있는 백련암이라는 조그만 암자를 찾아갔었다. 그 근처에 일제시대 때 독립운동을 하였던 용성스님이 기거했던 절이 있었다. 어느 날 새벽예불을 끝낸 후 그 절에 같이 기거하고 있는 보살과 같이 셋이서 남산을 포행하였다가 난생 처음 운해를 보았다. 정말 장관이었다. 남산은 그리 높은 산이 아니다. 기껏해봐야 468미터 정도 되는 산인데도 아득히 저 멀리 보이는 토함산부터 시작해서 바로 발밑까지가 구름바다였다. 그냥 발 한걸음 내딛고 싶을 정도로 뭉게구름이 내 발 밑까지 뒤덮혀 그야말로 말 그대로 운해(雲海)였다. 경주남산이 야외박물관이라고 칭하는 이유를 알만했다. 남산에는 뭔가가 특이한 기운이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 신라사람들이 이 산에 올라와 갖가지 불상과 석탑을 만들고 정성을 드렸을 것이다. 보살은 판소리를 하는 사람이었는데 운해에 심취해 판소리를 감칠맛나게 하였다. 운치가 있었다. 그 보살은 절에 기도하러 왔는데 스님이 되고자 하는 이와 나를 대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내가 혹 옆에서 절을 하고 있으면 먼지가 난다고 뭐라고 하는 가하면 나에게 절법도가 뭐라는 것을 가르치려고 하였다. 사람들이 어려서는 연예인을 따르고 나이 먹어서는 우리 스님, 우리 목사님, 우리 신부님하면서 그들을 따르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우상을 만들어 의존하려는 속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 우상은 꼭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보면 그 보살이 관세음보살의 화현이었던 것 같다. 푸대접한다는 시비심을 콕 찔러 아만심이 얼마나 끓고 있는지 보게끔 해줘 그때 그순간 업을 녹일 수 있는 기회를 줬는데도 무심히 지나다보니 그뒤로 세상살이 하면서 항상 그런 경계에 시달리게 되었다. 대접해주면 기분이 붕 뜨고 무시한다 생각들면 사나워진다. 그러니 남의 눈에는 순진하고 맹하게 보일 수밖에 없으니 속임도 당할 수밖에 없는 거다.
집에 와서도 절을 한시간씩은 계속 하였다. 지장경도 계속 읽었다. 한번 다 읽을 때마다 바를 정자로 표시한 게 300독이 되었다. 유금사에서 밥 먹는 시간만 빼고 하루종일 거의 법당에만 있었다. 기도시간 외에는 지장경 독경을 하였다.법당 밖은 여름햇빛이 장렬했지만 법당안은 시원하였다. 가끔씩 부는 시원한 바람은 피부에 와 닿을 때마다 왠지모를 충만함으로 가득하였다.
가을이 왔다. 제35회 사법시험 2차 합격발표가 있었다. 대체로 수험생은 시험장을 나서는 순간 합격 여부를 직감할 수 있다. 그때가 가장 냉정하게 느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뇌는 자기 유리하게 물질을 분비한다고 한다. 그러니 점점 더 합격하는 쪽으로 유리하게 작용한다. 결국 시험을 못봤으면서도 합격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마디로 착각이다. 그해는 시험을 못봤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합격을 기대하였다. 근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내 이름은 합격자 명단에 눈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또 떨어졌다.
그래도 다행히 실망은 없었다. 기대하다가 기대에 못미치면 세상 무너진 것처럼 실망하기 마련인데 그해는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실망했더라면 더 자포자기했을 건데 그나마 기도의 덕을 본 거다. 그뒤로 법당에서 본 부처님의 상호는 매정하게 보였다. 특히 눈꼬리가 그랬다. 매섭게 보였다. 그때 알았다. 진리가 냉정하다는 것을. 자기 기분이 좋다해서 합격하는 게 아니다. 합격할 수 있을 정도로 시험을 잘 봐야 합격을 하는 것이다. 이치가 단순하다. 물론 시험채점자 입장에서는 똑같은 답안이어도 할때마다 점수가 달라질 수 있기때문에 기도를 열심히 하면 잘못 적은 부분이나 미진하게 적은 부분을 채점자의 눈을 가려서 잘 본 것처럼 점수를 맞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실제 그럴 확률은 극히 드물다고 보면 된다. 논리의 비약이 없듯이 진리가 냉정하다. 대충 아는 척해서 잔뜩 쓰는 것보다 확실히 개념을 알면 그 취지나 근거규정, 해석을 함에 있어 논쟁이 생기는 이유와 그것을 사건에 포섭하는 과정을 논리의 비약없이 간결 명확하게 적을 수 있게 되고 그러면 합격이다. 그 뒤로부터는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해도 남탓이나 주위탓을 하지 않게 되었다. 뭐든지 자기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막연한 기대를 하지 않게 되니 착각으로 시달리는 경우가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그 해 경험은 내 인생의 자양분이 되었다고 본다.
이 경험으로 적은 게 ‘합격에도 순번이 있다’는 글이다. (‘값진실패 소중한 발견’ 참조)
합격에도 순번이 있다
시험에 모두가 좋은 성적을 내서 원하는 바를 성취하고 싶지만 모두가 다 그렇게 될 수는 없다. 모두들 실력이 좋더라도 각기 성적이 다르고 그에 따라 순위가 매겨질 수밖에 없으므로 합격하는 수험생과 떨어지는 수험생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다만 떨어지는 수험생이 내가 아니기를 바랄뿐이다. 사시2차 시험을 보고나면 대충 잘 봤는지 못 봤는지 느낄 수 있는데 그해는 시험을 못 봤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 한마디로 말하면 착각이었다. 그러다보니 부처님 상호(相好)를 보기만 해도 인자해 보였다. 특히 눈 꼬리가 휘감기는 것이 더욱 그랬다. 그러나 몇 달 후 제35회 합격자명단에는 눈을 씻고 봐도 내 이름은 없었다. 그 후 보게 되는 부처님의 상호는 냉정했다. 특히 눈 꼬리가 더 그랬다.
사람의 머리는 참 묘한 것이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게 된다. 위와 같이 시험을 망친 정도만 아니라면 하루 지나고 이틀정도 지나면 점점 합격하는 쪽으로 생각이 들다가 결국 착각으로 끝난다. 비록 착각이라도 기대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생기발랄할 수 있지만 만일 그것이 깨지면 세상 무너진 것처럼 깊은 실망을 하게 된다.
나 역시 한때는 시험에 떨어지자 온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진리가 냉정하다는 것을 모를 때의 일이었다. 자기 기분이 좋다 해서 못 본 시험이 잘 본 것으로 될 수 없는 것이다. 자기가 시험을 잘 봐야 합격하는 것이지 시험을 못 봤으면서도 합격을 바라는 것은 설령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살아 돌아와도 들어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시험에 떨어졌다 해도 세상이 무너지는 일은 결코 없다. 단지 나 자신만 무너질 뿐이다. 이것을 깨달은 후로는 시험에 떨어져도 내 노력과 정성이 부족해서 아직 합격티켓을 못 받았다고 생각하였다. 수험생 모두 다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지만 실패를 하더라도 너무 실망할 필요가 없다. 합격순번은 자신이 얼마나 절실한 마음으로 진실한 노력을 했느냐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명나라 때의 큰 선비인 원요범(袁了凡)이란 분이 그의 아들 천계(天啓)에게 주는 가훈으로서 내려오는 「인과실화(因果實話)」라는 책에서 좋은 말이 있어 이를 그대로 인용하고자 한다.
『옛말에 “뜻을 공명에 두면 반드시 공명을 얻고 뜻을 부귀에 두면 반드시 부귀를 얻는다(有志于功名者 必得功名 有志于富貴者 必得富貴)”고 하였다. 이것은 그 입지가 견고하여 굽히지 않고 게으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입지는 나무의 뿌리와 같아서 나무는 뿌리로 말미암아 성장하고 사람은 입지(立志)에 따라 발전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 입지를 나무뿌리와 같이 확고부동하게 세워서 빈 마음과 겸손한 마음씨로 천지를 감동시키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요즘 급제하려는 자들 중에 처음부터 이 같은 확고한 입지 없이,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이라는 일시의 뜬생각으로 살아가니 어떻게 입신출세를 하겠는가?
맹자는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속된 음악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 “왕이 뜬 마음을 버리고 본심으로 음악을 즐긴다면 그것으로 제나라는 태평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급제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뜬생각을 버리고 본심으로 구한다면 그 마음대로 출세의 길이 열리리라.』
*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고 지위가 높으면 얼마나 높겠습니까? 살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죄가 많지 않을 이 누가 있을 것이고 주객이 전도되지 않고 깨어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제 글은 그냥 제 흔적을 정리하는 것일뿐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순수했던 시절에 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본능과 본성의 구도속에서 스스로를 돌이켜 마음의 고향을 그리워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