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스크랩: “국가는 죽음의 길목에서 유산의 절반을 징수한다” – 조선일보
“국가는 죽음의 길목에서 유산의 절반을 징수한다”
최상현 이코노미조선 기자
입력 2020.02.14 08:00 | 수정 2020.02.18 11:06
[이코노미조선]
1월 28일 서울 문정동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고성춘 조세전문변호사.
“국세청은 항상 당신의 임종을 기다리고 있다. 살아생전에는 세금을 피할 수 있지만, 사후에 부과되는 상속세는 절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1월 19일 별세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1조원이 넘는 유산을 남겼다. 우선 상속 대상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2남 2녀. 누가 가장 많은 유산을 물려받게 될까. 정답은 ‘국세청’이다. 전문가들은 주식과 부동산 등으로 구성된 신 명예회장의 유산 1조원에 대해 국세청이 약 4000억원의 상속세를 부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상속세는 소위 ‘부자세’로 불린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8년 상속 인원 35만6109명 중 97.75%에 해당하는 34만8107명이 과세표준에 미달해 상속세를 내지 않았다. 반면 상속세를 내는 상위 2.25%에게는 가혹한 상속세율이 적용된다. 상속세 과세표준 50억원부터는 최고세율 50%가 적용돼, 절반에 가까운 유산을 국가에 고스란히 납부해야 한다.
1월 28일 서울 문정동 사무실에서 ‘이코노미조선’과 만난 고성춘 조세전문변호사는 “세금 구조 자체가 생전의 탈세를 모두 잡아내지 못하는 대신, 사후에 한꺼번에 상속세를 걷어가는 방식으로 짜여있다”며 “미리 대비할 방법도 대부분 막혀있는데, 그렇다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으면 정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고 말했다. 고 변호사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서울지방국세청 법무과장을 지내며 수만 건의 조세소송을 지휘했다. 2008년 ‘국세기본법 사례연구’를 최초로 펴내기도 한 고 변호사는 “상속세를 절세할 방법은 없는가”라는 질문에 “없다”고 딱 잘라 답했다.
상속세를 절세할 방법은 정말 없나.
“상속세는 국가가 자산가에게 부과하는 최후의 세금이다. 일단 재산이 상속되고 나면 어떤 방식으로도 상속세의 그물에서 빠져나가기 어렵다. 신 명예회장의 경우를 보면, 1조원이 넘는 유산의 상당 부분이 그룹 주식이다. 공익재단에 기부한 재산은 상속가액에서 빠진다고 하는데, 주식은 딱 5%까지만 공제가 적용된다. 공익재단을 실질적인 지주회사로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정이다.”
부동산이나 예금만이라도 공익재단으로 편입한다면 상속세가 상당히 줄어들 텐데.
“유산으로 공익재단을 설립하려면 상속인들이 모두 합의해야 하는데, 그 기한이 고작 6개월에 불과하다. 재단 설립에 성공해도 ‘공익적 목적’을 엄격히 검증하고, 충족하지 못하면 상속가액으로 산입된다.”
살아생전에 자식·배우자 등에게 증여하는 방법은 유효하지 않나.
“사망 시점으로부터 10년 전까지 증여한 재산은 모두 상속가액으로 ‘간주’된다. 같은 기간 출처가 불분명하게 나간 돈도 대부분 상속가액으로 ‘추정’된다. 평균 수명이 75세 정도니, 65세부터 증여한 재산은 모두 상속세 대상이 된다는 얘기다. 또 증여세의 과세표준과 과세율은 상속세와 동일할뿐더러 공제도 거의 되지 않는다. 일시에 증여해서 상속세를 내는 것과 다름없다.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쪼개기 증여’를 하지 않는 이상, 세금을 줄이기 어렵다.”
상속 시작 시점이 중요하다는 것인가.
“그렇다. 사람은 보통 자신의 수명을 실제보다 높게 산정한다. ‘한 80세쯤 죽겠지’라고 생각하다 80세가 되면 ‘앞으로 10년은 더 살겠지’라며 또 상속을 미룬다. 보통 건강이 악화돼 거동이 불편할 정도가 돼야 상속을 고민한다. 한창 팔팔한 40~50대부터 상속을 시작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자수성가한 부자 대부분은 그러지 못하고 끊임없이 돈을 벌려고만 한다.”
일찍 상속을 시작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나.
“미래 가치가 높은 자산부터 증여하는 것이 좋다. 입지가 좋은 부동산이 대표적이다. 증여할 때는 증여세가 아깝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 부동산 가치가 올라가고 나면 상속세를 몇 억원은 아낀 셈이 된다. 은행 예금을 남겨두는 것은 가장 좋지 않은 상속 방법이다. 상속세를 부과할 때 국세청은 세무조사 권한이 생긴다. 은행 예금은 단돈 1원도 봐주지 않고 세율 그대로 낼 수밖에 없다. 보유한 자산이 많다면 일찌감치 공익법인을 설립하는 것도 방법이다. 보유한 주식이나 현금을 부동산으로 바꿔 부동산 공익법인을 설립하고, 가족끼리 지분율을 나누면 된다. 다만 어느 정도 공익적인 목적을 꾸준히 달성해야 한다. 공익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공제에서 제외된다.”
중소·중견기업 등에서 가업을 승계할 경우에는 주식을 포기하기 어려운데.
“자녀를 일찍부터 회사에 취업시켜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충족하면 500억원까지 상속세를 공제받을 수 있다. 다만 사후관리에 대한 기준이 조금 까다롭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10년간 지분율, 정규직 비율, 자산 처분 등에 제한을 받고, 위반 시 상속세가 한 번에 부과된다.”
결론적으로 상속세는 피할 수 없는가.
“피할 수 없다. 편법을 써서 국세청을 잠깐 속일 수는 있겠지만, 그랬다간 나중에 반드시 가산세까지 붙어 돌아온다. 사실 궁극의 절세 방법은 ‘상속할 재산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살아생전에 자녀·배우자에게 골고루 증여하든, 사회에 환원하든, 자신을 위해 돈을 써버리든가 하라는 얘기다. 대부분 돈 버는 법만 알지, 쓰는 법은 모른다. 한평생 벌어들인 돈을 저세상까지 들고 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반드시 죽고, 국가는 절반을 가져간다. 살아 있을 때 쓸 수 있는 돈은 죽어서 남길 수 있는 돈의 곱절이다.”
◇plus point
미리 준비하는 상속 방법
1│주식은 가치가 낮아졌을 때 증여하라
상속세는 증여 당시의 가액에 대해 부과된다. 주가가 3000원일 때 증여한 주식은 상속세 산정 시점에서 주가가 6000원까지 올랐더라도 여전히 3000원으로 평가된다. 외부 요인으로 인해 주가가 일시적으로 낮아졌을 때가 증여의 적기다. 실제로 여러 상장회사의 오너들이 2008년 금융위기로 주가가 폭락했을 때 배우자나 자녀에게 주식을 대거 증여했다.
2│미래 가치가 높은 부동산부터 증여하라.
서울 지역 부동산, 특히 강남 부동산 가격은 꾸준히 오른다. 자녀에게 일찍 증여하고 증여세를 납부한다면, 상속세 산정 시 ‘이미 세금을 납부한 재산’으로 처리된다.
3│가업상속공제를 이용하라. 다만 사후 요건에 주의하라.
중소기업 오너 대다수는 사업용 재산에 대해 최고 500억원까지 가업상속공제가 적용된다. 상속인인 자녀가 상속 개시일 전 2년 이상 가업에 종사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공제받기는 쉽지만 사후 요건이 까다롭다. 사망일로부터 최소 10년 동안 상속 개시일 당시의 상시근로자 수에 비해 100% 이하로 감원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항과 가업용 자산을 20% 이상 처분하면 안 된다는 조항 등을 지켜야 한다.
4│증여할 때는 10년 단위로 계획을 세우라.
증여세는 10년 단위로 증여재산공제가 적용된다. 증여재산공제는 10년 통산 사전에 증여한 자산을 합산해 배우자에게 6억원, 성인 자녀에게 5000만원, 미성년 자녀에게는 2000만원까지 공제해주는 제도다.
5│조손에게 바로 증여하라.
조손에게 직접 재산을 증여할 경우, 상속세를 한 번 덜 내는 효과가 있다. 또 조손에게 증여하는 자산도 배우자·자녀에게처럼 증여재산공제를 적용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