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전문변호사 고성춘
[국세청에서의 5년]38 제일 큰 수행은 세상살이를 잘하는거야
지리산 화엄사에 가면 아주 큰 선방이 있습니다. 건평만 108평이나 됩니다. 아름드리 나무기둥들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뭔가 충만한 느낌을 느낍니다. 건물 안에서 방문을 열어 앞의 풍광을 보고 있노라면 저 멀리 노고단이 보입니다. 지리산을 보면 볼수록 참 펑퍼짐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루하다해서 지루산이라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뾰쪽뽀죡한 설악산과는 달리 펑퍼짐한 지리산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선방을 나서면 아담한 넓이의 마루가 있습니다. 그 마루는 건물을 빙 둘러있습니다. 천천히 그 마루를 따라 건물을 한바퀴 또 한바퀴 돌다보면 걷는 중에도 사색에 잠길 수 있습니다. 상당히 길거든요.
선방이 워낙 길다보니 한쪽끝에서 다른쪽 끝에까지 마이크를 써야만 목소리가 들릴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웬만한 목소리로는 끝에까지 들리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확 듭니다. 주지스님에게 물어봤습니다. 몇 명이나 앉을 수 있냐고? 50명이상은 너끈하다고 합니다. 현재는 약 38명에서 40명만 방부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방은 스님들이 결가부좌나 반가부좌를 튼채 하루 8시간 이상씩 많게는 16시간씩 참선을 하는 곳입니다. 대체로 3개월정도 90일간 하는게 보통입니다. 그 기간을 안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안거를 푸는게 해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하안거와 동안거가 있습니다. 원래 부처님이 계실당시에는 인도에선 우기를 피해서 부처님계신데 같이 모여 공부하던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도에선 우기를 피하기 위한 하안거 한번만 있었는데, 중국이나 우리나라는 인도와 달리 겨울이 있다보니 동안거가 생겨 1년에 두 번의 안거가 있게되었습니다. 동안거는 음력 10월 16일부터 이듬해 1월 15일까지로 정해져 있습니다. 선방에 등록하는 것을 방부를 들인다고 합니다.
방부를 들인 사람들은 안거전날 모두 모여 방부를 짭니다. 선방에서 참선수행하는 스님들을 따로 首座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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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 법무과에 와서 근무를 하면 할수록 화엄사선방이 생각납니다. 그 선방의 크기나 우리 법무과 사무실의 크기가 우선 비슷하고 또 방부들인 사람들의 숫자가 같습니다. 그리고 경륜이 많은 사람만 방부를 받듯이 우리 과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국세청이라는 조직에서 닦은 수행경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물어봤습니다. 국세청에 온 소감이 어떠냐고. 솔직한 저의 첫느낌은 이랬습니다. 소프트하고 젠틀하다. 거친말투에 곤조만 강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막힌 숨이 트이는 느낌이었습니다. 누구하나 흠잡을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직원 모두가 다들 수좌들로 느껴졌습니다. 우리 법무과에는 무슨 무슨 선원이라는 명칭은 없지만 법무과 자체가 저에게는 하나의 큰 선방입니다. 명칭이 있어야만 선방입니까? 사람들이 명칭붙이기를 좋아하고 장소가 눈에 보여야만 있다고 할 뿐이지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 무슨무슨 선원이라고 명칭붙인데가 있었습니까?
저에게는 지금 이곳이 저의 선방입니다. 같이 서로 배우면서 수행정진할 수 있는 좋은 도반들도 있고 또 제가 모셔야 할 어른 스님들도 계십니다.
멍석을 깔아놔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환경을 만들어줘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화엄사선방을 지을려고 동분서주했던 스님이 지나가는 말처럼 저에게 해줬던 말씀이 있습니다. “제일 큰 수행은 세상살이를 잘하는거야”
세상살이와 절집생활을 구별하는 갈등을 알아채고 하신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의 의미를 나름대로 체득하기까지는 그후로도 5년가까이 걸린 것 같습니다.
실전무술에서 익힌 무술이 진짜이듯이 세상살이를 하면 허물어져버리는 참선은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살이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생각하면 공직자가 해야 할 사명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보람을 느끼면 그게 살아있는 수행이고 세상살이에서 오히려 허물어지지 않고 빛나는 수승한 경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2003. 9.15.
태풍매미가 지나간 가을문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