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지치기만 바라는 공무원들
http://www.segye.com/newsView/20140114005608
‘대통령만 바라보는 내각’이라는 비판이 있다. 대통령은 지시하고, 공무원은 따르는 척하고, 그러니 되는 것은 없고…. 국세청에서 근무한 5년 동안 5명의 국세청장을 대해 봤다. 국세청장들은 매번 취임사에서 국세청 개혁을 강조했다. 그런데 왜 매번 국세청장은 개혁을 말할까? 개혁이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이다. 국세청장의 뜻을 실행하는 것은 조직의 구성원들이다. 그런데 청장의 뜻이 일선 직원까지 내려가기까지는 몇 년 정도 걸릴까? 아마 임기가 끝날 무렵에 될지도 모른다. 조직은 생명과 같아서 구성원의 심리에 의해 움직인다. 윗분이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좋은 말을 해도 사람인 이상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싫기 마련이다. 그게 개혁이든 말든. 직원들은 관리자를 수없이 봐 왔고 겪어봤다. 일을 해서 무슨 문제가 생기면 “시키는 대로 했는데요.”라고 하면 되고, 왜 일을 하지 않았냐고 하면 “감사에 걸리는 데요.”라고 하면 된다. 이 말은 만병통치약이다. 관리자만 사명감이 있을 뿐이다. 조직은 심리다. 혼자서 애쓴다 해서 맘대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공무원을 대할 때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다그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호통 치면 안 된다. 배가 산으로 가버릴 수 있다. 그 피해는 국민이 고통으로 감내해야 한다. “과세한 근거가 뭡니까?” “옆에 사람이 그러던 데요.” 세법이 있어도 물어서 다수가 답을 한 게 세법이 될 수 있다. “액수가 크면 인용시키지 마라.” 세수가 부족하면 이런 지시가 안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억울합니다.” “억울하면 불복하세요.” “액수가 몇 백만 원 밖에 안 되는데 과세처분 취소결정(인용)을 해줘도 될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야. 그냥 기각해.” 요즘같이 사정의 칼날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때에는 뭐든지 오해 살 일을 하지 않으면 된다. 기각을 했다고 감사하는 일은 없다. 인용사건을 가지고 왜 인용했냐고 감사하기 때문이다. 멀쩡히 일을 잘하고 있는 직원에게 감사실 직원이 나와서 말하기를 “과세를 해야 하는데 왜 과세를 안 했습니까? 규정에 어긋나게 일을 했으니 시말서를 쓰세요.” “법리대로 하면 과세를 하면 안 됩니다.” “무슨 소리하고 있어요. 내부 규정에는 과세하게 돼 있잖아요.” 결국 담당자의 하소연은 허공에만 맴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납세자의 불복으로 과세처분 한 것이 잘못 된 것으로 확정되었더라도 한번 이루어진 인사경고는 취소가 어렵다는 대답만 돌아온다. 직원들은 이런 일을 직접 겪거나 수없이 지켜보다 보면 저절로 ‘일단 과세하고 보자.’ ‘시키는 대로 하지.’ ‘괜히 납세자 위한다고 마음내지 말자.’라는 심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직원들이 자기 생존권을 내걸면서까지 이상을 추구하는 바보는 없다. 대통령이나 국세청장이 되니까 좋은 생각도 하고 이상도 추구하는 것이다. 조직마다 길목이 있게 마련이다. 장수는 전장에 나가 동서남북 휘젓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높은 곳에서 전황을 살피고 길목을 지키고 있어야 이기는 법이다. 공직생활을 아무리 오래 했어도 “네. 그렇습니까.” 라는 말만 되풀이 한 사람에게는 그 길목이 보이지 않는다. 조직에서 순수해지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런 사람들이 모난 사람으로 정을 맞기도 하지만 그런 순수한 사람들의 경험이 결국 조직을 살리고 나라를 살린다. 장수는 일하는 사람과 일하는 척 하는 사람을 잘 구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