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의 검은 거래가 이번 정은호 사건을 계기로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몇 십억 원의 수임료가 오고가고 담당재판부 재판장이 법조브로커를 만나고 정운호가 옥중에서 작성한 로비리스트 명단, 그들이 재판부에 로비를 했다는 설 등이다.
이에 대해 법원은 “법조브로커 등이 로비를 명목으로 정 대표에게 돈을 챙긴 뒤 근거 없는 낭설을 퍼트리고 있다”는 입장이다. 언론기사에 따르면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믿고 싶지 않은 사태가 벌어졌다”며 “오랜 시간 힘겹게 쌓아온 사법 신뢰가 한순간에 위협받게 됐다”고 우려했다고 한다.
이 기사를 보면서 나는 옛말이 떠올랐다. 범부들은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하지 못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본다는 말이다. 돈자돈시 불자불시(豚者豚視 佛者佛視) 라는 말도 있다. 돼지는 돼지로 보고 부처는 부처로 본다는 의미다. 무학대사와 이성계와의 대화에서 유래된 말로서 사람은 사물을 주관적으로 본다는 의미이다. 그 판사는 사법부가 얼마나 국민들로부터 신뢰받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신뢰가 무너졌다고 말하는 걸까? 무너질만한 신뢰가 있는지 의문이다. 전관예우가 없다고 믿는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정녕 알지 못한다는 말인지 의아할 뿐이다.
변호사들 사이에 회자되는 이야기다.
판사에게 최대한 공손히 하라는 말이있다.
법정에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보든 안 보든 공손히 인사하고, 앉으라 할 때 앉고 말하라 할 때 말하라는 것이다.
법대에 앉아 있는 판사들이 안 보는 것 같아도 인사를 하는지 안 하는지 다 지켜본다는 것이다. 이게 다 판사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는 의미다. 실제 심기를 건드리면 그들이 판결로 보복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판결이유를 설시한다는 것이다. 판사들은 권위를 중시하기 때문에 그들의 권위가 침해되지 않도록 그들의 권위를 존중해줘야 한다는 충고를 전관출신들에게 전해듣기도 하였다. 그런데 권위가 남이 인정해줘야 생기는 것이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게 아니다. 심기가 불편하고 권위를 침해했다 해서 판결로 보복하는 경우가 없다고 아무리 항변한들 오랜 세월동안 그런 말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실제 그런 일들이 존재한다는 반증이다.
세상에는 말이 존재하면 항상 실체가 있는 것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는 게 속담이다. 국 세청에서 막 나와 판사출신 전관들이 많은 어느 로펌에 들어갔을 때였다. 조세를 전문으로 한다는 어느 고법 부장판사 출신이 보자고 하기에 그의 방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가 나에게 물어봤던 말이 기억난다. “의뢰인들이 몇 명이나 되죠?” 나는 그때 너무 의아했다. 공직을 나와서 이제 막 변호사를 하러 온 사람에게 의뢰인이 몇 명이나 되는지를 물어본다는 게 너무 이해가 안 되었다. 그렇다면 그는 의뢰인들을 판사시절 만들어놨다는 말인지 오히려 반문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정은호 사건에서 보듯이 건설사 대표 명함을 들고다니는 법조브로커와 함께 룸싸롱을 갈 정도의 인맥 정도는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특히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서 사업을 해야 할 처지에 있는 경우에는 더 인맥이 필요할 것이다. 변호사가 필요한 인맥은 모범생들이 아니라 사고를 저지를만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지방 법정에서의 일이다. 행정소송에서 대리인만 원고석에 있고 원고는 방청석으로 가라고 한 재판장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재판장마다 다르다고 하지만 그가 왜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그랬는지 이해가 안 된다. 어떤 법정에서는 원고보고 진술하라고 해놓고 ‘억울합니다’라는 몇마디 말조차 목소리가 크다고 진술을 끊어버리더니 ‘여기는 신성한 법정이지 도때기 시장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85세된 노인을 훈계하였다. 마치 자신은 신성의 상징인 듯이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판사의 권위가 너무 하늘을 찌르는 것 같았다.
서울지방국세청에서 법무과장으로 근 무할 때였다. 직원들끼리 통하는 말이 있었다.
‘모르면 기각이다’라는 말이다.
세법을 모르는 사람이 이의신청 사건을 맡으면 거의 대부분 과세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해버리기 때문에 그런 말이 생겼다. 실제 그랬다.
우리들은 그런 사람을 ‘100% 기각맨’이라고 표현하였다.
사람 심리가 대동소이하다. 잘 알지 못하고 자신이 없으면 사람의 심리가 일단 소극적으로 나가게 되어 있다. 법리는 자신이 없으니까 의심을 하는 것으로 본능이 자극된다. 억울하다는 신청인의 주장은 ‘믿을 수 없고 증거가 부족하다’ 는 게 기각결정의 주된 근거이다. 그러니 결정문이 몇 장 되지도 않는다. 규제가 본능이지 구제가 본능이 아니다 보니 뭐든지 의심을 하고 거짓말을 한다고 보는 게 그런 부류들의 공통적인 특색이다. 그런 부류들도 유독 과세처분을 취소하는 게 맞다고 하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가뭄에 콩나듯이 있기도 한다. 그 경우는 청탁을 받은 걸로 보면 된다. 예외가 없다.
‘ 알면 봐주고 모르면 칼같이’ 한다고 서울지방국세청장에게 보고한 적이 있었다. 국세청의 개혁을 위한 제언을 하였다. 당시 청장은 ‘이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솔직하게 청탁이 들어오면 직원들이 긍정적으로 보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건에서는 긍정적으로 봐줘야 하는 경우에도 감사에 걸린다는 핑계로 부정적으로 보려고 하는 것은 납세자 권익구제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설명하였다. 청장은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그분도 그런 세상인심을 모를리 없었다. 단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서로 얽히고 섥혀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 재직시 항상 직원들과 하는 말이 있었다.
“납세자가 억울하다고 하소연 하면 들어보려 하고 나 자신이 억울한 일을 만들어 내지 않는 게 복을 쌓는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허공에 뱉은 말처럼 공허한 경우가 태반이었지만 그래도 그 말에 공감해주는 직원들이 있었다. 10년이 지나도록 그들을 지켜본 결과 확실히 사심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사람 심리가 세무공무원 다르고 판사 다를까? 왕후장상의 씨가 다르지 않다는 만적의 말처럼 사람 심리는 거의 대동소이하다. 도를 닦았다 해도 한 순간의 경계에서 한번에 훅 무너져 버리는 게 사람이다. 법정이 아무리 신성한 들 재판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친척 중에 부장판사가 있었던 국세청 소송수행자가 재판을 갔다 온 후 푸념을 한 적이 있었다. 재판장에게 ‘법령은 그렇게 돼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한 것에 불과한데 ‘나를 가르치려는 거냐’는 식으로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재판이라는 게 항상 당사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리 잘해도 불만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누가 그런 것을 모르는 게 아니다. 다만 막말하는 판사부터 전관예우의 문제 등으로 재판의 공정성을 의심하는 경우가 생기는 게 문제이다. 고시합격생들이 대체로 머리회전이 좋다보니 순발력이 빨라 짜증을 잘 내는 게 특색이다. 자신의 사고틀에 벗어나면 단두대에 삐져나온 팔다리와 목을 쳐버리는 것처럼 말을 함부로 하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근데 사법고시를 한 이유가 뭘까? 입신양명? 그들 모두 합격기를 쓰면 국민의 권익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고시를 해서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지 못하고 하늘에 사는 사람처럼 대우받으려고 할까? 판사나 검사를 하면 세상이 다 아래로 보이는 걸까? 왜 그리 입신양명에 목을 매려고 할까? 왜 공직을 나오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걸까? 공직에 있으면서 의뢰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왜 할까?
몇 분의 판사들의 경우 그들을 대하면서 윤동주 시인의 감성처럼 순수함을 느꼈던 분들도 있었다. ‘그러니 대법관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대법관 출신이면서도 정치판에 뛰어들어 체면을 구긴 사람도 있지만 검찰출신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정치지향적이다. 공직자가 정치지향적이라는 것은 좋은 의미가 아니다. 그만큼 눈치를 본다는 것이고 사심이 낀다는 말이다. 권력이나 돈의 눈치를 보기 마련이다. 그러면 공정성이나 양심에 기대할 것이 그만큼 떨어지는 것이다.
거지가 거지를 해코지 한다고 했다. 사법고시를 한 사람들 대부분이 서민의 자제다. 근데 서민의 자제들이 오히려 서민을 해코지 하면 모순이다. 돈 있는 사람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알려고 하고, 부자들 사건에는 관대하고 서민들 사건에는 냉정하게 하면 형평성이 무너지는 것이다. 세상이 그럴 때 사회가 불안해진다.
법정에서 판사에게 ‘이게 아닙니다.’라는 식으로 변론해도 판결결과를 걱정하지 않아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들만의 리그가 따로 있다는 의심을 받지 않아야 사법부가 공정하다고 믿을 것이다. 법원에 쓴소리를 해도 권위에 도전했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 변호사가 불만이 있어도 괜스리 말해서 법원에 찍히면 좋을 게 뭐 있겠느냐는 식이다 보니 함부로 나서서 말을 삼가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은 돌고 돈다고 했다. 공직 안에서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 인생 살면서 복 쌓기 어렵고, 특히 사업자가 되면 더더욱 어렵다. 한번 뿐인 인생 죽음을 목전에 있다 생각하면 공직에서 사심없이 일하는 게 복 쌓는 최선의 비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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