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려우니 경기가 죽고, 경기가 죽으니 소득이 없고, 소득이 없으니 서민들은 힘들고, 이런 일련의 악순환을 누가 만들었는가?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 하지만 결국 나라가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 나라가 자기 책임을 다 하지도 못해놓고 그 책임을 애매한 경제적 약자인 서민들의 재산을 빼앗는 것으로 전가할 수 있단 말인가?
나라라는 존재가 손에 잡히지도 않고 감정도 없는 추상적인 존재라고 하지만 나라나 나나 불쌍한 사람을 보면 측은해하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위해주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나라라고 해서 마음이 없는 게 아니다. 나라가 노숙자들을 양산시키는 꼴을 하고 있다.
국세징수법의 입법취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재산권박탈을 해서 징수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세금징수를 위해 재산권을 보전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사업이 휴업 또는 폐업된 경우 거래처가 부도난 경우 등에는 징수유예를 할 수 있도록 해 놨다. 개인사정 안 봐준다면 그런 규정을 둘 필요가 있겠는가?
이런 취지의 말을 직원 한 분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게 아닙니다.”
“예?”
난 의아했다. ‘아니다’는 말에 적잖이 놀랐다. 그의 말을 계속 들어봤다.
“원칙은 압류하면 공매해야 하는 겁니다. 다만 그런 예외가 있으면 징수유예를 한다는 겁니다.”
“사업을 하다가 어려워진 경우까지 납세자의 유일한 재산인 집을 공매해서 재산권박탈을 해가면서까지 징수하라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물론 그렇죠. 그러나 징수유예는 납세자가 신청을 해야 합니다.”
하긴 납세자가 신청을 해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제도를 알고 활용하는 납세자가 몇이나 될까?
그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조직도 이제는 자꾸 규정대로 하고 재량을 없애려고 하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형성되다보니 직원들 입장에선 규정대로 해버리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괜히 재량을 부려 납세자 개인 개인의 사정을 봐줄려 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납세자를 접촉하지 말고 자료를 가지고만 조세행정을 하라고 하니까 공부상에 재산이 있으면 압류를 하는 거고 공매를 하는 겁니다.”
“그래도 세무서장이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만 그게 일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직원들 입장에선 감사가 무섭습니다. 왜 공부상에 재산이 있는데 압류를 안했느냐 그리고 공매대행의뢰를 안했냐고 지적을 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감사가 얼마나 무섭습니까?”
“실제 당해보면 귀찮고 무섭습니다.”
‘감사에 걸리는 데요’ 라는 말을 자꾸 직원들이 한다. 직원입장이라면 사사건건 토를 달고 발목 잡는 식의 감사를 하면 밀리는 게 직원들이다. 감사가 제대로 지적하든 말든 우선은 주의나 경고를 당하면 나중에 그 감사 지적이 불복청구과정에서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어도 원상으로 회복이 안 된다. 기껏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사람에게 왜 이렇게 했냐고 잘못한 것으로 감사 지적했어도 당하는 사람만 당하고, 지적을 잘못한 사람에게는 불이익이 없다. 피드백시스템이 감사에는 작동이 되지 않는다.
국세징수법이 얼마나 경직되게 운영될 수 있는지 또 하나의 예를 하나 들어 보겠다.
(4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