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에서의 5년] 30 부담부증여 사건
2005.12.12. 오후4시쯤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사송으로 우편들이 배달되었다. 내무를 보는 직원이 내 우편물을 책상에 놓고 갔다. 그런데 우편물 중 발신인은 없고 수신인만 적혀있는 봉투하나가 보였다. 행정봉투에 얇은 편지지가 담겨있었다.
문을 열고나가는 내무에게 물었다.
“이게 뭡니까?”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상하다는 정도로 의문을 남기고 선고결과보고를 하러 들어온 직원의 결재를 마저 하였다. 그러고 나서 편지봉투를 뜯어보았다.
A4 용지 한 장에 컴퓨터로 쓴 글씨가 보였다.
글을 한줄 한줄 읽으면서 보통 편지가 아니다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었다.
내용은 ‘이제 당신은 그만 국세청에서 나가라’는 식의 칼날 섞인 글들이었다. 구체적 내용을 인용하기에는 수준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에 생략하도록 한다. 그해는 서울지방국세청 법무과장 4년차로 들어서는 무렵이다 보니 직원의 결재에 쉽게 끌려다니지는 안했다. 그러니 자기영역이 줄어들면서 점점 내 결재에 엄청난 불만을 가진 사람의 소행으로 보였다.
글을 다 읽고 난 후 느낌은 별 무덤덤했다.
마음의 파장이 일지 않았다. 출렁거릴 일이 아니었다. 이미 한번 해코지를 당했기 때문이다. 불과 1~2주 전의 일이었다.
2003년과 2004년 인사이동시 서울청 법무과로 지원하려면 서울청 조사1국장 빽보다 더 높아야 했다. 도대체 어떤 빽들이 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조사국장이 추천한 한 사람만 들어줄 정도로 거물들이 법무과에 진입하였다. 내가 개방직이어서 참신할 것 같아 일부러 지원했다고 생색내는 이도 있었지만 법무과가 당시에는 큰 인기였다.
그때 들어왔던 직원 중에 본청에서 내려온 6급 직원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 방에 들어와
“도대체 결재 안해주는 이유가 뭡니까?” 라고 따졌다.
황당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얼른 이해가 안됐다. 그리고 더 가관인 것은 결재를 하든 안하든 과장영역인데 직원이 과장보고 결재 안 해준다고 따지러왔다는 그 자체가 매우 불쾌했다. 더구나 감기까지 걸려서 한 달 이상을 콜록콜록하는 힘든 상태이었다.
이의신청결재를 하면서 4달 이상 처리가 안 된 사건이 있기에 “처리가 늦어진 이유가 뭡니까?”라고 의견을 달고 사인을 해주지 않은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을 빌미삼아 자기 기분 나쁘다는 것을 어필하러 온 것이었다.
‘이 사람이 과장을 무슨 호구로 보나’하는 생각에 그의 손을 잡고 내 방을 나갔다. 그리고 그에게 큰소리를 쳤다. 사무실분위기가 썰렁할 수밖에 없었다.
(이의신청 처리기한은 국세기본법상 30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30일을 지키는 것이 어렵게 되어있다. 그렇더라도 60일 이내는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개월이 넘는 경우도 허다하게 발생하였다. 관리자가 직원에게 맡겨만 놓고 사후관리를 안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그래서 사후관리를 지속적으로 하다 보니 처리기한이 많이 짧아졌다. 그러나 과장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다보니 계장의 도움이 필요함에도 계장은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게 아니었다. 그가 진짜로 기분나빠한 이유가 있었다. 그가 맡은 이의신청사건을 결재하면서 논란이 벌어졌는데 그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논란의 내용은 간단한 것이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1억짜리 주택을 증여하면서 다음과 같은 증여계약서를 작성하였다.
(조건 : 아들이 주택을 임대하고 받은 임차보증금을 어머니에게 돌려줄 것)
수증자인 아들은 자신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한 후 몇 달이 지나서 제3자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받은 임차보증금 5천만원을 어머니에게 지급하였다. 그리고 나서 세무서에 증여사실을 신고하면서 임차보증금 5천만원을 뺀 나머지 금액만 증여받은 것으로 신고하였다. 이에 세무서는 부담부증여가 아니므로 증여세 과세가액을 1억으로 하여 계산한 증여세를 결정고지하였다. 수증자인 아들은 서울지방국세청 법무2과에 이의신청을 청구하였다.
유재학조사관은 그때까지만 해도 부담부증여가 혹 되지 않는지 여부에 대해 고심하였다. 그가 부담부증여에 대해 물어왔을 때 부담부증여가 안되는 것으로 말을 해줬다.
“부담부증여는 민법상의 채무인수개념입니다. 수증자가 증여자의 채무를 인수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증여자가 제3자에 지는 채무를 인수해야 부담부증여가 되는 것이지 이 사건처럼 수증자가 증여자에 대해 채무를 지는 경우는 아닙니다.”
별 문제없이 처분청의 처분이 정당한 것으로 판단하고 결재를 하였고 법무과 의견은 기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뜻밖에도 이의신청심의위원회가 개최되어 외부위원 두 사람이 이의를 제기하였다. 문제가 전혀 안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회의결과 다음 달로 재상정되었다.
정병용세무사가 의문을 제기했다. 나름대로 세법에 대해 많이 안다고 프라이드를 가진 사람이었다.
“실제로 증여한 가액은 5000만원밖에 되는 것 아닙니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위원도 거들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미처 생각을 못해본 거라서 머뭇거리다가 차라리 법리검토를 확실히 해서 처리하는 게 좋겠다 싶어 다음 달에 재상정하는 것에 동의하였다.
갈등의 씨앗이 이때부터 증폭이 되었다.
유재학 조사관이나 계장이나 모두 위원들 의견에 동의하였다. 계장은 특히 위원들 생각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말하였다.
세법이 무슨 아이디어로 해석되는지 의아했다.
본청 법규과에 질의해보는 등 법리검토를 다시 해본 결과 결론은 처분청의 처분은 적법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증여세과세가액을 산정하기 위해서는 상증법 제47조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데 증여재산가액에서 부담부증여인 경우 채무인수가액을 차감하도록 되어 있다. 이 사건의 증여재산은 주택이고 증여당시 평가액은 1억원이다. 그리고 부담부증여가 아니므로 차감할 금액이 없으므로 증여세과세가액은 1억원이 된다. 여기에 증여세율을 곱하면 증여세액이 산출된다.
그런데 위원들이나 담당자의 시각은 달랐다.
위원들 시각은 5천만원이 되돌아갔으니까 결국 어머니는 1억짜리 집을 주고 5000만원을 받았으니까 증여재산가액은 5000만원이라는 것이고 유재학조사관의 시각은 증여재산은 위원들 생각이 맞고 그렇다 해서 그것으로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5000만원은 양도가 되어 양도세를 부과하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언뜻 그들의 논리가 일리가 있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법은 고무줄이 아니다. 편리에 따라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증여세 성립시기는 증여일이고 그 시점을 기준으로 증여재산을 확정하고 재산가액이 얼마인지 평가해야한다. 부동산의 경우 성립시기는 소유권이전등기시이고 그 때의 증여재산은 주택이고 그 재산가액은 1억원임에 다툼이 없다. 그리고 증여세과세가액은 상증법 제47조에 의해 1억원이 된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증여재산이 5000만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세금은 세법에 의해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는게 원칙이다. 증여재산가액이 5000만원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규정이 세법 어디에 있는지 제발 말을 해주고 논리를 폈으면 한다.
결국 근거가 있다면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 아닌가.
그러면 어머니가 아들에게 위와 같이 1억짜리 주택을 증여하면서 “너가 나중에 임대해서 보증금받거들랑 돌려주라”는 조건을 달았을 때 (돌려줄 금액이 얼마인지도 확정되지 않은 경우다) 아들이 1억원을 돌려줬다 가정하면 위원들 논리대로 하면 증여재산가액은 0원이 된다. 유재학조사관 논리대로 하면 증여재산가액은 0원이지만 1억원에 대해 양도세를 부과하면 된다는 결론이 된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들에게 분명히 주택을 증여했는데 세무서는 증여가 아닌 양도한 것으로 보고 양도세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러면 증여세를 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전부 위와 같은 방법으로 조작해서 양도세를 내지 세율이 높은 증여세를 내겠는가. 나라도 안낼 것이다.
그리고 마치 세법이 무소불위의 능력을 가진 것처럼 위험한 생각을 가진 직원들이 꽤 많다. 그리고 그게 세법인양 알고 있다.
가령 어머니가 비상장주식을 아들명의로 취득했다고 하자.
실제 소유자는 어머니이지만 명의만 아들 것을 빌렸다고 한다면 명의신탁관계로서 증여의제가 되어 아들이 증여세를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아들명의 주식이 제3자에게 양도되었을 때 양도세는 누가 내야하는가?
어떤 세무서 직원은 증여가 되었기 때문에 소유권이 아들에게 넘어갔고 따라서 아들이 양도세를 내야한다고 판단하고 과세하였다.
그러나 그의 판단은 전적으로 잘못되었다.
증여의제가 된다 해서 사법상의 법률효과가 변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세법이 사법의 원칙을 함부로 부정할 수 없다. 사법의 원칙은 명의신탁자에게 소유권이 있다. 세법이 이러한 원칙까지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물며 사법상 법률행위 성질까지 세무공무원이 자기 마음대로 증여가 아닌 양도라고 판단하고 세금을 매긴다는 것은 세법도 못하는 것을 세무공무원 자신은 할 수 있다는 결과이고 더욱 심각한 것은 그런 것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 위험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 세금을 부과하는 자리에 있다고 한다면 답답한 마음 그지없다.
결국 1안 2안으로 해서 내 의견과 담당자의견이 별개로 해서 위원회에 재상정되었다.
그런데 일이 꼬이려고 해서 그런지 이의신청도중에 청장님께 사건보고를 급히 해야 할 일이 생겼다. 그래서 1시간 정도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인용으로 결정이 났다.
고민에 빠졌다.
눈 한번 꼭 감고 그냥 넘어가면 되는 일이었다. 사실 그동안 이런 일이 한두 번 이었겠는가.
며칠 동안 고민을 한 끝에 다시 재심의를 하기로 결심하였다. 인용결정이 나도 청장님 결재를 받으면 다시 위원회에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이의신청결정문이 혹 납세자에게 발송되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얼른 전화로 확인해봤다. 황당했다. 이의신청결정문이 이미 발송되었다는 것이다.
“아니 청장님 결재가 안떨어졌는데 어떻게 결정문이 발송이 됩니까?”
그의 변병은 간단했다.
이 달에는 청장님까지 결재할 사안이 없기 때문에 국장님결재만 받으면 발송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 결정문들이 우편함을 떠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간신히 발송을 보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청장님 결재를 받았다.
이의신청회의 인용결정사건 재심의 요청
□ 사건개요 요약
모(母)가 자(子)에게 주택(평가액 1억원)을 증여하면서 5천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증여계약을 체결한 경우
□ 청구인 주장
부담부증여이므로 5천만원을 증여세 과세가액에서 공제해야 함
□ 처분청 의견
부담부증여가 아님
□ 이의신청회의결과 : 재상정되어 인용 결정
ᄋ 인용결정 내용
부담부증여는 아니지만 증여재산가액을 5천만원으로 하여야 하고, 5천만원을 양도로 보는 것은 별론임
□ 관련규정 근거 (상증법 제47조)
(요약) 증여세과세가액 =
증여재산가액의 합계액 – 당해 증여재산에 담보된 채무로서 수증자가 인수한 금액
□ 인용결정의 문제점
ᄋ 부담부 증여를 인정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하여는 다툼이 없음
ᄋ 따라서, 상증법 제47조의 규정에 의해 공제할 채무가 “0” 이므로 증여세과세가액은 증여재산가액인 1억원이 되어야 하는 것임
ᄋ 그러나 이의신청위원회 결정은 법적 근거가 없이 증여재산가액을 5천만원으로 봐야 한다는 그릇된 판단을 하였음
□ 재심의 필요성
ᄋ 부담부증여에 해당하는 경우만 하나의 법률행위에 증여와 양도라는 별도의 과세가 이루어짐
ᄋ 부담부증여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부담부증여와 같은 법률효과발생을 용인한다면 증여 당사자간 채권․채무를 지는 식으로 외관을 작출(作出)하여 증여세 포탈(逋脫)이 용이해짐
ᄋ 더구나 직계존비손간의 부담부증여를 인정하지 않는 입법취지가 몰각됨
ᄋ 또한, 내년부터 시행 예정인 이의신청결정문 등의 외부공개를 가정한다면 이 사건 인용 결정문이 선례가 되어 납세자가 신의칙을 근거로 똑같은 결론을 요구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음
※ 본청 법규팀 구두회신 내용: 증여재산가액을 1억원으로 봐야함
이 사건 하나 때문에 유재학조사관과 갈등의 골이 증폭되었다. 유재학조사관은 자기대로 마음이 무척 상했던 것 같았다. 특히 소문에 마치 내가 말했다는 듯이 증폭되어 “유재학조사관은 형편없는 사람”으로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와 다툰 이후로 조직에 말이 말을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그와 몇 차례 술자리도 가지고 내 방에서 차도 마시면서 이야기를 여러 번 하면서 나도 사과하고 그도 사과했다. 그리고 서로 껴안고 미안하다고까지 했다. 마음에 앙금을 남길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은 것 같았다.
직원 한 사람이 ‘어’라고 말하면 전달하는 과정에 ‘아’가 되었다가 ‘야’로 되어 결국엔 ‘야새끼’가 되기 마련이다.
조직생활을 하다보면 사람들 본능이 남을 칭찬하는데 상당히 인색하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이 시기심이나 질투 이런 원초적 본능을 웬만한 인격자가 아니면 벗어나기 힘들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말이 어른이지 애들과 마음 쓰는 것은 틀리지가 않다는 생각이 가끔씩 들곤 한다. 남 흠잡는 말은 고속철보다 더 빠른 빛의 속도로 전파되기 마련이다.
직원이 37명이다 보니 과장 말 한마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질 수밖에 없지만 이런 경우처럼 누가 만일 악의를 가지고 말을 퍼트리고 감찰에 투서를 하고 그러면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직원들을 지난 3년 동안 약 70명 정도를 대하다보니 느낀 게 하나 있다. 피해의식이 유달리 강한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1계장이 술자리에서 한 말이 있다.
“인성이 안 된 놈은 끝끝내 안됩니다. 그런 사람은 포용하려 하지 마시고 다 내보내야 합니다.”
출근을 늦게 했다든지 누구만 편애한다든지 점심때 술 먹고 늦게 들어왔다든지 최근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감찰 등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곳에 투서를 한 모양이었다.
그런 이야기가 나돈다는 것을 국장님으로부터 전해 듣고 맥이 팍 풀렸다.
“참 dirty해도 더럽게 dirty하다”
너무 너무 추접하고 더러운 짓거리였다. 차라리 업무가지고 무슨 비판을 했다면 수긍이 갔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런 식으로 비판하는 사람의 눈에도 업무가지고 장난치는 것은 보이지 않았는가 싶었다. 그런데 얼마나 한을 품었는지 소문의 강도가 예전사람들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예전에도 국세청비리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고 투서한 직원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 술렁거릴 정도였다. 더구나 개방직위 임기연장을 위해 심사를 하면서 이런 말들이 오고 간 것으로 들었다. 그리고 서울청 총무과장이 불러 조심스럽게 말하기를 출근을 늦게 한다고 말이 나왔다면서 유의해달라고 하였다. 마음이 크게 상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 5시에 출근해서 11시에 퇴근하는 것을 거의 1년 이상 할 때는 아무 말 없다가 감기 걸려 콜록콜록 하면서 병원 갔다 오는 며칠을 30분 정도 지각한 것을 가지고 마치 일부분이 전부를 왜곡하는 것 같았다.
꼬투리를 잡을게 그렇게도 없었는가 싶었다. 게다가 1계장에게만 살짝 말한 것을 직원이 어떻게 아는가. 더구나 사무실이 여의도 별관이라서 회의 때문에 10월에 청으로 들어가는 횟수가 최소 14번은 넘었는데 직원들에게 일일이 과장 어디 가는 일정을 공시하고 다녀야 하는지 그 이야기를 퍼트린 직원 놈이 참 추접하고 더러워보였다. 어떻게 보면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인 것 같았다.
과장 PC를 훔쳐보지를 않나……
이제 그의 힘으로 해보다가 연장을 못 막으니 스스로 나가라는 편지를 보낸 것 같았다.
그는 세무사합격을 하면 조직에 미련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해 합격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세무사공부하기 위해서 법무과 왔고 이제는 내년이면 법무과를 나가야 한다. 어차피 나갈 것 이런 식으로라도 한풀이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후문에는 이의신청 사건 대리인인 세무사가 그의 형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안 되는 사건을 어떻게든 해보려고 집착했구나 이해가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가 원칙처럼 생각해왔던 관행이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에게는 내가 부정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난 지금도 생각한다.
우리나라 IMF 가 온 이유는 ‘원칙과 동떨어진 고착된 관행을 원칙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내가 신입사원으로 들어왔을 때 선배가 가르쳤고 나도 그게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고 나중에 후배들에게 그렇게 가르쳐온 게 사실은 규정과는 거리가 먼 조직의 관행이었고 그것도 아주 뿌리 깊게 박힌 고착된 관행이었다는 것이 우리나라를 위기로 만든 것이다.
감사원 감사관 생활을 잠깐이나마 하면서 느낀 것이다.
어느 조직이나 원칙은 규정대로인데 실제로 돌아가는 것은 관행대로 움직인다. 감사는 규정에 벗어나 관행을 찾아 시정을 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아주 뿌리 깊은 고착된 관행을 찾아내면 큰 감사 건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