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에서의 5년]42 사채업자 과세 이야기 1 (사채업자 과세가 어렵다)
10년도 넘은 오래된 이야기다. 사채업자를 과세하고 형사처벌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뻐저리게 느낀 사건이었다. 이 나라가 돈을 가진 경제적 강자에 얼마나 무기력한지 알 수 있었다.
2005년 조사국 사무관이 세무조사 건을 상의하고자 여의도 별관까지 왔다. 마치 007 작전하듯이 사무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나 사건 설명을 들었다. 당시는 내 의견을 자주 물었다. 윗분들 결재할 때 ‘법무과장 의견도 이렇습니다’라고 하면 결재가 쉬웠다고 하였다. 윗분들이 사건가지고 장난칠 사람이 아니라고 나를 믿어줬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채업자가 돌린 원금이 1조 5000억 정도라 했다. 일단 그 금액에 놀랐다. “어떻게 확인하셨습니까?” “돈을 빌려주면서 원금의 150%로 약속어음 공증을 했습니다. 공증서류를 확보하고자 했는데 법무법인들이 거부하자 법무부에 공문을 여러차례 보내 결국 과세자료제출에관한법률에 의거하여 공증서류를 확보해 원금을 계산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세표준과 세액을 계산하는데 지장이 없을 것이다. 세무조사 절차도 적법하였다. 금융대부업 과세를 위해 내사하다가 폐업한 어느 대부업체의 사업자등록상 주소지의 사무실을 주목하였다. 사업자 대표와 전화를 해보면 폐업했다고 하는데 우편물이 쌓여있지 않고 3일 간격으로 누군가 가져간다는 점에 착안하여 오피스텔 주변에서 잠복하면서 그 사무실을 예의주시하였다. 사람들이 들락거렸고 그 동선을 따라가보니 11개가 넘는 비밀사업장이 더 적출되었다고 하였다. 동일한 전주의 돈이 각 사업장으로 흘러들어가고 사업장들끼 돈이 자유롭게 이체된다는 사실을 자금추적으로 확인하였다.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게 되자 D데이에 세무공무원들이 일시에 사업장들을 덮쳐 조사원증을 보여주고 서류를 확보하려 했으나 문서를 파쇄하거나 씹어먹는 등 완강한 저항에 부딪쳤다. 어떤 사업장은 문을 걸어잠그고 열어주지 않았다. 결국 증거인멸의 위험이 있어 경찰의 입회하에 사전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사후에 법원의 영장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튀라는 작전명령이 내려졌는지 쇼핑백에 서류를 담아 문을 열고 삼삼오오 분산하여 도주를 하였고 그들을 잡고자 추격전이 벌어졌다. 결국 장부 등 증빙서류 확보를 확보하지 못하였고 수입이자를 추계조사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5000명 정도의 이용자들에게 서신을 보내 확인한 결과 대부원금과 선이자 그리고 지연이자 비율을 추계할 수 있었다. 그런 방식의 조사가 과연 적법한지 여부를 확인하고자 조사사무관이 문의하러 왔던 것이다. 자칫 추계와 실지조사가 혼합하여 위법일 수 있는 여지를 없애기 위해 어느 선을 그어주고 그 안에서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그리고 한참동안 잊어버렸다. 어느날 법무과 직원이 소송수행사건과 관련하여 검찰에서 자꾸 나를 보자고 한다는 말을 전해왔다. ‘검찰이 나를 볼 일이 뭐가 있죠?’ 하고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근데 날마다 사송으로 오는 판결문을 하나도 빠짐없이 보는데 내가 자문해준 그 사건의 판결문을 보게 되었다. 과세관청이 패소하였다. ‘이상하다. 이럴리 없는데.’ 소송진행경과보고를 하는데 사건들이 수백건이 돌아가니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웠어도 판결문이 오는 길목을 지키고 있으면 중요 사건들을 빠짐없이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사건이 국세청이 지리라고 생각도 못했다. 당연히 이기리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누가 보자 해도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과세처분을 유지해주는 게 내 임무였고 법무과가 할 일이었다. 2006년 당시 적어 놓은 글이다.
” 사건 판결문이 왔다. 1심 판결문이다. 1조 5천억 사채업자로 조세포탈죄로 고발한 사람이다. 당시 조사반장에게 ‘고발만 하지 말아달라.’면서 대가는 얼마든지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검찰은 경찰에게 사건을 넘겼고 방대한 수사기록을 남긴채 무혐의로 끝났다. 그 기록들을 보면 사채업자 형제들을 옹호하기 위한 참고인들의 진술이 전부인 것 같았다. 법원은 종소세 부과처분에 대하여 그들이 실제사업자라고 추정되는 간접증거 몇 개가 있지만 실제사업자라고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결국 패소다. 경제적 강자를 건드리는게 얼마나 힘든지 알게 하는 사건이다. 보이지 않는 실체에게 과세한다는게 이렇게 힘든 일이다. 바지대표인 명의자들이 자기가 직접 했다고 해버리면 끝나는 일이다. 주가조작은 명의를 도용해버리므로 명의도용자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지지만 이렇게 자신이 스스로 명의를 빌려준 ‘꼬붕’들은 전주가 책임을 져주므로 총대를 멜 수밖에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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