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담료를 말하면 기분 나빠한다.
10년 전 증여세 3억5000만원 나왔다는 20대 남자가 갑자기 사무실을 찾아 왔다. 샹담료를 말했다. 그는 기분나빠 하면서 문을 쾅 닫고 나갔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 이후 공짜를 원하는 사람의 심리에 대해 골똘히 생각보게 되었다. 어쩌면 나에게 숙제를 내주고 가는 불보살의 화현인지도 모른다.
2. 무료상담이 힘든 이유
2008년 국세청을 나와 집필작업만 반년을 거친 후 로펌을 거쳐 2009년 4월 변호사 개업을 하였다.당시 공직에서 막 나와 세상물이 덜 묻어서 세상을 위한다는 순진함을 가지고 책도 내고 무료상담도 해주었다. 명색은 변호사였지만 변호사 하는 게 좁은 틀에 갇히는 기분이라서 차 한대 사서 세상을 주유하고 싶었다. 당시 나이 45세였는데도 운수납자의 기질은 다분했다. 그렇게 사는 게 내 적성에 맞았지만 그럴만한 그릇이 못 되다보니 결국 세상틀에 맞춰 변호사업을 하는 용기를 내었다.
900페이지 넘는 조세법서들을 각 세법별로 사례연구집으로 집필하고 그중 4권을 출간하고 세금이야기 같은 수필도 내고 언론 인터뷰도않이 나가고 소문이 나서 그랬는지 세금으로 억울해 하는 납세자들이 서초동에서도 가장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곳까지 소문을 듣고 오셨다. 당연히 억울한 분들의 고통이 내 고통인 것 처럼 열심히 상담을 해드렸다. 처음에는그게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사람들을 겪어보니 심신이 너무 지치기 시작했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지혜가 없으니 몸이 고생을 했다. 이래서 끝까지라는 말이 전부다는 말을 실감했다.처음 먹은 맘을 끝까지 관철하지를 못하니 그냥 중생일 뿐이다.
무료상담을 하면서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권리의식이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곳간에 맡겨 놓은 감을 달라는 식이다. 더 당당하고 큰소리 치고 성질 부린다. 로펌에서 들은 이야기가 공감이 간다. 안내데스크가 있는 로비를 고급스럽게 꾸미는 이유는 사람들이 문 열고 들어올 때 이곳은 돈을 비싸게 줘야하는 구나 라는 인식을 갖게 하고자 한다는 거라고 하였다.
일리있는 말이다.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못 본다. 눈에 보이는 외관으로만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게 눈으로 들어오는 자극이 감각기관 중 가장 크다고 한다. 사람은 전도몽상의 존재들이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각자의 틀로 선입견을 가지고 본다. 없는 것을 있다하고 있는 것을 없다 한다. 그래서 중생이라 한다. 돼지에게 진주목걸이 걸어준다는 말이 그래서 있는지도 모른다. 중생의 그런 심리를 꿰뚫어 보고 이용하는 게 능력인 것 같다.
3. 공짜 속에 가시 있다.
사람들이 복잡한 것 같아도 의외로 단순하고, 똑똑한 것 같아도 헛똑똑이 더 많다고 느낀다.
공짜 속에 가시 있음에도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오죽하면 있었을까 싶다.
공직에 더 머무를 수 있었지만 빨리 나온 것도 복이라고 생각한다. 공직은 얻어먹으면서도 큰소리 칠 수 있는 곳이다. 수사, 감사, 조사 등 ‘사’자 들어간 곳들을 전전하다 보니 적나라하게 느꼈다. 내가 볼 때 박복한 거다. 박복한 이들이 의외로 좋은 말들을 하고 세상을 걱정한다. 빌어먹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세상사람들을 구제한다고 말한다. 30년 넘게 수행을 했다는 스님도 절 하나 시주해줄 신도들을 원한다. 절을 지어서 선방도 만들고 그런다. 빌어먹는 이들이 손도 크고 꿈도 크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쌀 한톨이라도 흘리면 호통을 치는 스승은 이제 보기 힘들다. 빌어먹는 업이 얼마나 큰데 공부를 게을리 하면 되겠느냐 면서 뭐라 하는 풍조가 아니다.그냥 직업으로 사는 이들에게 세상고민을 해결하고자 달려가면 나무에서 물고기 구하는 격이다. 남의 돈으로 세상을 위하고자 하는 부류들이 또 있다. 공짜 좋아하는 부류들이 있다. 그런 이들이 정치를 하고 세상을 위한다고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면 사람의 본능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복이 있는지 박복함을 면하려고 공직을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막상 돈을 벌어도 쓰지를 못하는 이유는 얻어 먹는 게 몸에 뱄기 때문인 것 같다. 60억 빌딩을 증여받아도 상담료를 깎고자 사정을 하고, 상담도 A/S 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이도 있다. 꼬치꼬치 캐묻고 궁금증이 해소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특징을 가졌다. 수천억대 세금을 맞은 회장도 연필을 들고 서면을 줄치면서 본다. 회장님! 봐서 압니까? 물어보면 눈만 껌뻑거린다.
1년에 십수 억이나 주고 선임한 어느 로펌의 수십장 되는 서면도 그런 식으로 읽었지만 그건 쓰나마나 한 서면이었다. 다른 재벌회장에 대한 사건에서 이미 써먹은 서면이었는데 패소판결을 받고 스스로 소취하 했던 사건의 서면을 가지고 쟁점이 동일하다 보니 회장 이름과 액수만 바꿔서 쓴 것에 불과하였다. 법무과장 시절 내 손으로 결재했던 사건이었기에 나는 알 수 있었지만 그 회장은 아무리 꼼꼼히 읽은 들 알 수가 없다. 그럴싸하게 쓰기 때문이다. 납세자를 속여 먹는 일은 여반장이다. 그러니 헛똑똑일 수밖에. 이곳 저곳 무료상담을 받고 세무서에 가서 세무공무원에게 아는 척하면서 신고했다가 2억 5,000만원의 가산세를 맞은 아줌마도 있었다. 쉽게 벌고 공짜로 얻는 돈은 쉽게 나간다. 그런 돈은 자기가 썼다 할 수 있는 돈이 아니다. 재산을 모으는 것은 자기 능력과 운으로 가능해도 재산을 지키는 것은 자기 힘으로 되지 않는다. 전문가의 조력이 필요하고 속임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 실상 일을 해보면 일보 전진 하면 이보 후퇴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뭐를 바라는 이들은 꼭 그런 식으로 나온다. 공권력에 두드려 맞으면 인맥을 통해 청탁을 한다. 조직의 수장을 만나 청탁하겠다고 능력을 과시하는 사람일수록 쇼로 끝난다. 설령 청탁이 먹혔다 하더라도 일은 직원들이 하는 것이다. 중간간부를 통해 일선까지 내려오는데 청탁 건이야 라고 말해주면 한대 때릴 것을 10대 때린다고 거품을 넣어버린다. 겁을 먹게끔 하고 난 뒤에 실상 일처리는 한대만 때린다. 9대 덜 맞은 것가지고 중간에서 알아서 돈잔치를 하는 거다. 이렇게 당해놓고도 회장은 자신이 해결했다고 자랑하고 다닌다. 자기 영역에선 돈을 버는 데 전문가일지 몰라도 다른 전문영역에선 유치원 수준이다.
4. 얻어 먹지 마라
애들에게 항상 말한다. 얻어먹지 마라고. 얻어먹으면 꼭 사주라고.
얻어먹으면 억겁을 지나 간신히 몸을 받더라도 축생의 몸으로 나온다고 한다. 소나 말로 태어나 얻어먹은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소나 말로 간신히 태어날 사람들이 세상을 위한다고 하니 세상이 좋아질 리 있을까 싶다. 개인이 잘 사는 것은 자업자득이고 사회나 국가가 잘 사는 것은 공업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