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발행 국세기본법 사례연구 서문
서문
어느 위원회에서 위원 한 사람이 나보고 논쟁을 하자고 하였다.
대법원 판례가 법령이나 예규 등의 해석의 바이블이 된다는 내 글의 표현을 가지고 따졌다. ‘왜 바이블이 되느냐’는 식이었다. 회계에 관련된 사람이라고 들었다. 하긴 이 글을 쓰는 나도 법을 공부한지 10년이 지나서야 ‘법’의 개념을 비로소 알 수 있었는데, 하물며 법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야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판례를 무시하고 예규만으로 세법을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 예규 역시 추상적으로 기술되어 있을 뿐이다. 사건에 직접 구체적으로 적용되어 정답을 찾아낼 수 있는 예규가 얼마나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 뿐이다.
국세청에서 5년 동안 일하다보니 느낀 것이 있다.
관행보다는 원칙이, 심증보다는 물증이, 주관보다는 법리가, 규제보다는 구제가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조직의 모세혈관 곳곳에 합리적인 마인드가 퍼졌으면, 또 조직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술수보다는 순수하기를, 그리고 조직 자체도 더 순수해지기를 원한다. 물론 사람의 본능이 그러하지 못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렇게 되기가 요원하겠지만 인류 역사의 발전 과정이 그런 방향이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그런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사명감 있는 공무원들이 많이 나와야 하리라고 본다.
민주화라는 것이 저 멀리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이제는 사회 각 분야에 진짜 전문가가 좀 더 많아지고 또 활동해야하는 시대가 펼쳐져야 한다. 규정을 떠난 관행이 우선이라든지 ‘아니면 말고’식의 사고로 인해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규제 쪽에 있는 사람일수록 ‘누구를 손 좀 봐 준다’는 표현을 쉽게 쓰는 경향이 있다. 마치 조직의 힘이 내 힘인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런 식의 사고로 조직을 짝사랑만 하다보면 결과는 쓸쓸할 것이다.
전문가는 지식만 있는 게 아니라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사람이어야 진짜 전문가일 것이다. 그 가치는 ‘自他不二’라고 생각한다. 남의 억울함을 등지고 나의 편안함만을 추구한다든지 또는 한 직급 올라가는 게 우선이라든지 그리고 조직의 룰에 따르는 게 구성원의 의리라는 사고만으로는 더 이상 앞으로의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에 부응할 수 없다고 본다.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화가 얼마나 되었는지의 척도에 따라 책임행정이 이루어질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잘못된 행정으로 인한 억울한 사람들이나 불필요한 행정력의 낭비를 줄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이 세무분야에서의 전문화를 촉진하는 촉매제의 역할이 되어야겠다는 신념으로 글을 썼다.
5년 전 나와 같이 세법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세법을 이해하고 싶으면 이해가 될 수 있는 책을 적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이제 막 세무공무원이 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판결문 보는 것도 어렵다고 떳떳이 말하는 일부 세무공무원들에게는 이 글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세법에 관심 있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예규모음집 같은 책이나 추상적인 세법지식을 나열하는 법서는 있어도 실제 사건에 세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심도 있게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법서같은 사례집이 없다 보니 세법을 공부하기가 이만저만 어려운 게 아니었다. 나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5년 동안 많은 사건을 대하면서 그때마다 글로 써왔던 것을 지금에서야 간신히 국세기본법 한 권으로 우선 정리 하였다. 앞으로 부가세법, 소득세법, 상증법, 법인세법 순으로 계속 책을 낼 예정이다. 국세기본법을 먼저 낸 이유는 실상 제일 중요한데도 그 가치를 알아주는 이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민법도 공부를 해보면 마지막으로 귀결되는 것이 민법총칙이다. 법은 각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총론이 중요하다. 거기에 원리가 다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본을 모르고 각론을 알 수 없는 것이므로 국세기본법을 모르고 세법을 안다고 할 수 없다. 결국은 납세자 입장에선 부과처분이 위법하거나 무효인 경우 어떻게 구제받을 것인지, 경정청구인지 취소청구인지 부당이득반환청구인지, 그리고 환급이 제대로 되었는지 또는 과세관청 입장에선 경정처분이 적법한지 또는 과세처분이 제척기간이 도과했는지, 징수처분이 시효소멸 되지 않았는지, 체납처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불복청구가 전심절차를 거치지 않아 각하인지 여부 등등이 사건의 마지막 종착점이 된다. 그래서 국세기본법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실무를 하다 보니 국세기본법 다음으로 어려운 부분이 부가세법 이었다. 사람들은 법인세법이 어렵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분명 부가세법이다. 입증도 어렵지만 해석하기도 어렵다. 그만큼 법조문이 해석의 여지를 많이 남겨놨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나올 사례연구시리즈는 실무에서의 난이도 순서로 차례로 출간될 것이다.
이 책을 내면서 저자가 고민했던 부분이 있었다. 조세민사소송 부분을 따로 낼 것인지 아니면 국세기본법에 증보해서 낼 것인지 이었다. 조만간 어느 쪽으로든 정리가 될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실무에서 사건화가 되지 않는 부분은 과감히 생략했다는 점이다. 실무에서 문제되는 쟁점만을 가지고 사례를 정리하였으므로 아마도 이 책에 있는 사례를 뛰어넘는 독창적인 사건은 실무에서도 많지 않으리라고 본다. 이 책에서 다루는 쟁점은 하루 이틀에 찾아내진 것이 아니라 많은 사건을 보면서 거의 3년 만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참고해주길 바란다. 바로 이 점이 이 책만의 노하우일 것이다. 단순한 이론서와는 달리 세무일선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에서의 사례 하나하나가 바로 내가 담당하는 사건이 될 것이다.
아무튼 나의 지식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가지려고 했던 사람들에게도 아무쪼록 올바른 가치로만 써지기를 바랄 뿐이며, 특히 국세청은 세법을 집행하는 기관으로서 그 구성원인 세무공무원은 세법을 다루기 때문에 세무공무원이 세법을 모른다면 그 결과는 부실과세로 이어져 납세자들의 고통을 양산하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 세법을 모르는 세무공무원이 더 이상 없도록 활용되기를 바란다.
참고로 이 책을 읽을 때 이해의 편의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점을 참조해주었으면 한다.
① 사건 하나하나가 다양한 인생살이이므로 사례의 지문이 다소 길어지는 느낌이 있더라도 사안 하나하나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고 보면 너무 간략하게 축약을 시킬 수 없었다.
② 법령개정이 자주 있다 보니 조문 몇 개만 고쳐도 벌써 구법이 돼버린다. 그러나 구법이 적용되더라도 현행법과 조문내용이 똑같은 경우는 구태여 구법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2000년 당시 명의신탁에 대한 적용법률을 표현하자면 “구 상증법(2000.12.29. 법률 제630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63조 제1항”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겠으나 그 내용이 현행법과 차이가 없으므로 상증법 제63조 제1항이라고 표현하였다. 또 다른 예를 들면 구 소득세법 제19조 제1항 제10호의 ‘금융 및 보험업’이라고 구태여 표현하지 않고 그냥 현행법처럼 소득세법 제19조 제1항 제10호의 ‘금융 및 보험업’이라고 표현하였다. 이 점을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이 책이 사례를 중심으로 쉽게 읽혀지고 쉽게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랬다는 점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③ 법령을 예시할 때 편의상 약식으로 표현하였다. 예를 들어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상증법으로, 국세기본법은 국기법으로, 그 외 상증령, 국기령, 소득세령, 부가세령으로 표현하였다.
④ 구 법이 적용되는 판례들의 경우 최대한 현행 법령이 적용되는 경우로 전환시키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판결선고일이 처분일보다 앞서는 경우가 있다.
⑤ 원칙에 맞은 표현을 쓰려다 보면 가령 2006년 귀속 원천분 법인세로 표현해야 하지만 쉽게 이해하는 의미에서 그냥 원천분 법인세로 표현하였다. 될 수 있으면 쉽게 쓰려고 노력하였다. 이런 취지에서 원래는 2002년 제1기분 부가가치세, 2002년 사업연도 법인세, 200년 귀속 종합소득세라고 표현을 해야 하지만 과세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닌 경우는 년도를 과감히 생략하고 그냥 부가세, 법인세, 종소세를 부과처분하였다는 식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납세자가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사이에 용역제공의 대가로 금액을 받은 경우 해당 과세기간별로 각 부가세를 부과 고지하였다고 표현해야 할 경우도 사건에서 중요한 쟁점이 아니라면 그냥 부가세를 과세하였다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문제를 읽을 때 읽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쟁점 외의 것에 주의가 산만해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취지에서 날짜도 과감히 생략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을 하였다. 기산일이 중요한 문제는 당연히 날짜를 표시했지만 그 외의 경우는 생략하였다.
⑥ 하급심판례의 경우 사례가 좋은 경우에는 사례로 만들기 위해 적극 활용하였다. 대법원까지 가지 않고 하급심에서 소송이 종결된 경우는 종결이라고 표현하고 상급심 계류 중인 사건은 아무런 표현을 하지 않았다.
하급심판례의 경우는 상급심에서 번복될 가능성이 있지만 확률적으로 3.5% 이내일 것이다. 하급심판례를 굳이 다룬 이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례이기 때문이고, 한번쯤 깊이 생각해볼만한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결론이 혹 달라진다 하더라도 그 확률은 위 퍼센트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동안 많은 사건을 다뤄본 경험으로 사례를 선택하였다. 필요한 사례들이라고 믿는다.
⑧ 사례 순서는 법령에 따라 해당 사례를 제시하였다.
세법은 법령이 자세하게 규정되어 있다. 단지 실감이 나지 않을 뿐이다. 따라서 사례를 곁들이면 충분히 이해가 될 것으로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론을 될 수 있으면 별도로 적지 않았다. 사례를 통해서 이론이 저절로 스며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⑨ 문제에 나오는 금액들을 가지고 세액계산을 해보면 정확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정확하게 표현하면 채권포기액 606,908,119원을 접대비로 보고, 한도초과액 596,817,511원을 손금불산입하였다라고 해야하지만 금액이 중요한 것이 아니므로 6억 원을 접대비로 보고 한도초과액 5억 9,000만원을 손금불산입했다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어떤 이유로 접대비로 보았는지 여부가 중요하지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⑩ 세법은 사례를 많이 접하면서 이해되는 것이지 추상적인 이론을 정독한다해서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너무 많다 할 정도로 사례를 다양하게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세금과 관련된 사건들은 하나하나 동일한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단지 쟁점만 같을 뿐이다. 사람 얼굴이 다르듯이 세금관련 사건들도 그 행태들이 다 다르다. 다양한 사례를 접함으로써 법리마인드가 빨리 생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따라서 대법원 판례 요지만을 기술해도 이해하는데 큰 지장이 없겠으나, 사례를 통해서 그 요지를 이해하면 더 실감이 날 수 있다고 믿으므로 사례를 될 수 있으면 많이 다루려고 노력했다.
판결은 2003년 것이어도 사실관계는 최대한 최근 것으로 날짜를 고치려고 하였다.
⑪ 금액은 한글로 썼다. 첫눈에 알기 쉽게 하기 위해 5,000만 원 보다는 5천만 원이 그 예이다.
⑫ 사례에서 인정사실을 첨부하거나 국세심판절차에서 어떤 이유로 감액되었다는 등의 사실을 지문이 길어지더라도 일부러 생략하지 않고 적은 이유가 있다. 그 사실 하나하나가 납세자측 입장에서 보면 유익한 사항이 되기 때문이다. 심판결정 내용이 비록 판례 내용과 다르게 인용된 경우라도 이를 적시해 줌으로써 심판원이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를 예측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⑬ 과세관청의 의미는 관할 세무서장이다. 편의상 과세관청으로 표현했다. 서울지방국세청의 세무조사결과 납세자의 주소지를 관할하는 세무저장에게 자료파생을 하는 경우로서 관할 세무서장이 과세를 하는 경우, 이를 포괄하여 과세관청이 과세를 하는 것으로도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