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에서의 5년] 18 금모으기 운동의 허상(2)
2004년 10월 일지를 떠들어보니 감회가 새롭다. 금모으기 운동의 허상은 아마 서울지방국세청 법무과 금지금팀의 노력이 없었으면 밝히지 못하고 영원히 역사 속에 아름답게 묻혔을 것이다. 애국심을 고취하는 이들 따로 있고, 뒤에서 돈 챙기는 이들 따로 있는 게 역사다. 지금도 나는 이런 역사가 계속 반복된다고 본다.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지만. 사건에는 흔적이 있다. 흔적이 있기 때문에 의지만 있으면 밝혀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당장 내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안할 뿐이다. 그러니 흔적을 남겨도 시간이 지나면 묻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노골적으로 국가돈을 챙겨먹는 것이다. 2003년 12월 서울지방국세청장에게 보고한 후 조사는 3국이 주관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3국 1과장은 조사를 총괄하던 사람인데 율촌으로 얼마 안있어 자리를 옮겨 의아했는데 지금보니 이해가 될것도 같다.
2004. 10.29. 수요일이다.
오늘 오전에 회의가 있었다. 조사 3국 전체가 구매승인서 건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는데 오늘이 그 중간결과를 보고한다고 한다. 법무과 서기관님이 어제 “이 건은 청단위로 대응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라고 말씀하더니 3국 쪽 사람과 전화를 하면서 오늘 회의가 있다고 해서 들어가자고 했다. 나와 서기관님, 김 조사관 이렇게 세 사람이 들어가 보니 3국 과장들과 사무관들이 모두 들어와 있었다. 3국 1과장이 회의를 주재했다.
그분의 의도는 구매승인서를 악용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이제 조사할 만큼 했으니 이들을 형사고발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3국장님과 과장들이 서울지검 사람들과 식사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과장이 담당검사에게 직접 설명도 하고 있다고 한다. 담당검사가 하는 말이 ‘진작 조사단계에서부터 말했으면 출입국규제를 했을 것인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웃긴 애기다. 지금에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생각하지 처음부터 그런 말을 듣고 그런 이야기할 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내 일이 바쁘니 알아서 하라고 할 사람들이다. 고시공부를 같이 한 검사가 한 말이 있었다. 아무리 큰 사건을 던져줘도 우리는 배당받은 사건이 있기 때문에 어차피 줘도 못한다는 식이었다. 싸가지 없는 소리다. 누가 총괄해서 누구는 뭐를 하고 누구는 뭐를 하고 하는 식이 아니라, 각각 조사해오라는 식이라는 것이다.
마침 나도 말할 기회가 있어 말했다.
“이 건은 처분유지가 안되면 조사를 해도 말짱 꽝입니다. 징수가 안되더라도 형사고발을 시켜야겠다는 의지라고 말씀하지만, 지금 계류된 소송에서 지면 당장 국세환급금을 내줘야 할 판입니다. 영세율부정하고 매입세액불공제한 것을 다 풀어주면 수천억 될 것입니다.”
3국 1과장이 말했다. 약 5000억 정도 되는 것 같다고.
나는 말했다. 금을 운송하는 배달부분에서 실제 물건이 가지 않은 것을 잡아야 한다고.
지금 가장 시급한 소송건인 M회사가 자신은 선의라고 하니 실물거래가 아예 없었다는 점을 입증해버리면 선의라는 말을 꺼낼 일이 없기 때문이다. 선의라는 말은 실물거래가 있어야 쓸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희소식이 하나 있었다. 3국 1과에서 실제 배달이 안된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를 확보했다고 한다.
김 조사관이 그 서류를 받아왔다.
금을 운송하는 업체인 두개 회사의 실제운행일지와 가짜로 짜맞춘 일지였다. 실제운행일지를 보면 중간업체를 다 생략한 채 직접 최종목적지로 가는데 반해 가짜운행일지는 그 중간에 걸친 업체들을 모두 거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세금계산서상의 업체들이지만 모두 껍데기만 있는 외형만 갖춘 업체들이다.
드디어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이제 M회사와 연결시켜야 한다. 그런데 당장 M회사와 연결되는 거래가 아니었다. 2003년 것이었기 때문이다. M회사는 2001년 것이었다.
그래도 논리를 구성할 수 있다.
금운송업체라고 해봐야 3개다. 위 두 업체와 하나가 더 있는데 그 업체는 모든 것을 전산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가짜가 없을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두 업체다. 그들이 현재 쓰는 수법을 예전에도 계속 그대로 썼을 것이기 때문에 운전자등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하면 된다.
막말로 우선 위 자료만을 들이내밀고 실제 거래없었다고 주장해도 된다. 그러면 상대방은 그때 당시는 있었다고 하면서 없다는 증거를 내보라고 할 것이다. 그때 가서 운전자를 증인으로 세우든지 형사고발해서 피신조서에서 자백을 받아내던지, 그래도 판사의 심증을 흔들 수 있는 좋은 자료임에 틀림없다.
김 조사관이 문 조사관과 함께 강서세무서로 가서 조사철 7권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것을 전부 엑셀로 분석한다고 한다. 그러기위해서 일용직 두명을 쓴다고 한다. 오늘 경리계의 결재가 있었다고 한다.
내일부터 나올 자료들이 흥미롭다.
드디어 윤곽이 드러날지.
내가 볼 때는 이 건은 금융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절대 세금 떼먹기 위해 한 일이 아니다.
내가 생각할 때는 대기업들이 자금세탁도 하면서 비자금을 형성하고 그 비자금은 무역금융이나 은행돈을 대출받아 형성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나도 내일부터 이것을 중심으로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