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결재일기
황당한 과세다.
04. 8.18. 오전 윤OO 조사관이 결재하러 왔다.
오늘 선고결과 보고였다.
원고는 이O 이었다.
원고는 성형외과 의사였다. 그런데 얼굴주름살 제거수술을 하던중 환자가 죽었고 그에 대핸 손해배상금을 유족들을 위하여 법원에 공탁을 하였다.
그리고 그 금액을 소득세의 필요경비로 신고했다.
그러나 처분청은 그것을 필요경비로 인정안했다.(원고에 대한 특별조사를 실시하여 필요경비불산입하고 또 수입금액누락 등을 적출하여 1억5000만원을 부과하였다.)
왜냐하면 소득세법 33조(필요경비불산입) 1항 15호에 의하면 “업무에 관련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함으로써 지급되는 손해배상금” 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중과실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업무와 관련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손해배상금에 대해서는 필요경비를 불산입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문이 들었다.
민사상손해배상은 과실책임주의이므로 그냥 과실이면 됐지 중과실까지 구별할 필요가 있을까?
윤OO조사관에게 물었다.
민사판결문에 중과실이라고 표현했습니까?
아닙니다. 처분청에서 중과실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황당했다.
아니 자기가 법원입니까? 함부로 판단하게..
그렇게 판단한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웃긴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무식이 용감하다고 이런 사람 때문에 국세행정실명제가 필요합니다.
현재 징세과에 있는데 예전에 조사국에 있을 때 그랬답니다. 그리고 심판결정에서 인용이 되었어야 하는데 안돼가지고… 라고 말했다고 한다.
기가 찼다.
이런 과세를 속된 말로 긁어버린다고 한다. 이런 사고를 가진 사람이 조사를 하면서 비위 틀리면 긁어버린다 생각하면 납세자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아찔하다.
그런데 더 희한한 것은 1심에서 승소했다는 것이다.
결국 2심에서 패소했지만
윤OO 조사관은 이런 사건에 대한 대법원판례를 만들 필요가 있으므로 상고하겠다고 한다.
그럴 필요는 있는 것 같아 결재를 했다.
다음은 1심 판결내용이다.
원고주장) 모든 주의의무를 다했다. 아무런 과실이 없다. 있다고 해도 중과실은 아니다.
법원) 중대한 과실이 있다.
이O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등 손해배상금으로 1억5000만원을 공탁했고 업무상과실치사 등 죄로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 및 벌금 200만원의 형을 선고받았다.
사건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O은 강남구 신사동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하고 있는 의사다. 어느 날 평소와 같이 고객 한사람의 얼굴주름살 제거수술을 하던 중이었다. 보통 성형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혈액과 소변 38종 검사와 혈액응고검사 또는 전신마취의 경우 심전도검사까지 하도록 되어있다. 얼굴성형수술은 전신마취가 아니라서 심전도검사는 하지 안했고, 혈액 소변 등 38종 검사를 한 후 혈액응고검사를 별도로 하였다. 38종 검사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혈액응고검사에서는 혈액종합검사결과표 종합소견란에 출혈병의심 : 의사상담 후 정밀검사 및 원인진단요망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이 말의 의미는 혈액응고 장애를 가진 병이 의심이 된다는 말이었다. 통보를 받고, 임상병리센타에 근무하는 임상병리전문 직원에게 물어봤다.
“ 이런 종합소견이 나왔는데 수술을 해도 되겠습니까?”
“혈액응고검사 자체가 예민한 검사이기 때문에 혈액을 채취할 때라던지, 운반을 할 때라던지 조그마한 착오에 의하여 검사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수술환자에게 병력을 검사해본 후에 수술여부를 결정하세요”
그래서 의사 이O은 환자에게 말했다.
“혈액응고장애의 의심이 있다고 검사결과가 나왔는데 이런 경우 통상적으로는 수술을 하지 못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평소에 피가 나오면 잘 안 멈추는 경우가 있었습니까?”
“없습니다. 자궁수술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로 출혈에 이상이 없었습니다. ”
의사 이O은 환자의 말을 듣고는 과연 수술을 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가 책장에서 마취과학 책자를 꺼내 필요한 부분을 펼쳐보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수술 전에 출혈성 체질을 탐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에 수술이나 발치 치료를 받았을 때의 응고반응과 같은 과거력을 추적하여 확인하는 것이다. 과거력이나 점상출혈 또는 반상출혈과 같은 신체적 소견이 없을 경우는 관례적인 검사가 필요하지 않다.’
의사 이O은 다시 한 번 환자에게 물었다.
“혈액응고장애의 병력이 진짜 없습니까?”
“예”
그렇다면 더 이상 정밀검사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임상병리센타의 검사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하였다. 문진결과와 검사결과가 다르게 나왔지만 검사결과는 오차가 많은 것이기 때문에 문진결과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도 혹시 만일의 사태, 출혈이 많을 것을 대비하여 수혈할 혈액을 제일 가까운 혈액원으로 가지러 갈 사람을 대기시켜놓고 수술하기로 하였다.
환자 얼굴의 한쪽 귀밑에서 다른 한쪽 귀밑까지 두정부쪽으로 전체를 절개하는 방법으로 주름살제거수술을 시작하였다. 먼저 환자 몸에 심전도 측정장치와 혈중산소농도측정기를 부착한 다음 신경안정제인 도미컴과 진통제인 펜타닐 및 국소마취제인 리도카인을 주사하여 마취를 시키고 얼굴의 이마부위를 절개하였다. 그렇게 수술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4시간이 지날 때쯤이었다. 갑자기 심전도측정장치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확인을 해보니 맥박이 40/min, 혈압이 90/60으로 떨어져 있었다. 혈관에 수액을 공급하기 위해 하트만 용액을 최고 속도로 주입하였다. 그러나 맥박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큰 일 났다 싶어 얼른 산소호흡기를 부착하고 심장마사지를 하면서 인근의 큰 병원에 연락하여 구급팀을 보내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구급팀을 보내줄 수 없다고 하였다. 할 수없이 119 구급대에 연락하였다. 구급대가 10분 후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환자는 사망에 가까운 상태였다.
(맥박 등도 하나도 없고 호흡도 없었다. 구급대원이 의사 이O에게 물었다. “ 심폐소생술을 멈추고 옮기는 순간에 죽을 것이 확실한데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러면 심폐소생술을 더 해봅시다.”)
이 상태에서 옮기기 어렵다고 구급대는 판단하고 의사 이O과 교대로 1시간 정도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환자의 상태가 계속하여 악화되기만 하였다. 그래서 인근 큰 병원으로 옮기기로 하고 삐뽀삐뽀 경적을 울리면서 급하게 옮기는데 환자는 끝내 도착하기도 전에 도중에 사망하고 말았다. 환자는 혈액응고장애가 있는 사람이라서 수술시행 도중에 절개부위 등에서 지속적으로 출혈이 이루어져 저혈량성 쇼크로 사망한 것으로 부검결과가 나왔다.
사고는 8월 초에 발생하였다. 검찰수사를 받는 한 달 동안 피해자 유족과 합의를 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피해자 남편은 정신적 충격을 받은 나머지 몸져 누웠다. 피해자 가족들은 화가 나 있었다. 특히 의사 이O이 그 다음에도 진료한다고 계속 문을 열어놓고 있다는 점에. 피해자 남편은 돈을 아무리 많이 주어도 합의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할 수 없이 검찰수사받는 도중에 위자료조로 1억5000만원을 공탁하였다. 그리고 세달 후 의사 이O은 업무상과실치사죄로 형사상 처벌을 받았다.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00만원이었다. 여기까지는 형사책임 문제이고 조세문제는 당해 연도 종소세신고하면서 위자료로 공탁한 1억5000만원을 필요경비로 하여 신고하였는데 세무서에선 필요경비를 부인하였다. 중과실에 의한 손해배상금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사판결문 어디에도 중과실이라는 표현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무서에선 중과실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간단하였다.
환자의 사망원인이 수술 전과 그 과정에서 취해야 할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으로 판시한 점, 종종 사망 사고가 발생하는 산부인과 등의 의료행위가 아닌 안면주름을 제거하는 성형외과 과정에 사망한 것이므로 중대한 과실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국세심판원의 기각결정의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대하여 의사 이O은 주장하였다.
‘시술의사의 수술 전과 그 과정에서 어떤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에 그것이 중대한 과실이 되며 또 성형외과 의료사고는 무조건 중대한 과실이 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민형사 사건의 판결에 명백히 판시되거나 세무서가 고의나 중대한 과실을 입증한 경우에만 손해배상액의 필요경비 불산입이 인정되는데 그런 입증 없이 과세근거 없이 과세한 것이므로 종합소득세 부과처분을 취소하여야 한다.’
이에 대하여 1심은 중과실로 인정하였다.
근거는 출혈병이 의심되면 재검사나 그 원인을 파악하여 보아야 하며 환자 본인은 출혈성 경향을 모를 수도 있고 출혈성 경향은 새로이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이전에 자궁적출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다거나 문진만으로 그칠 것은 아니라 할 것이므로 의사로서 현저히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하였다. 는 것이었다.
의사 이O은 항소하였다.
2심은 중과실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중과실아니다.
원고에게 위와 같은 정도의 주의의무를 위반한 채 이 사건 수술을 시술하였다고 하더라도 위 수술을 시술하는 의사로서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현저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 근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환자에 대한 문진을 통하여 별다른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점, 의료사고의 특성상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하더라도 이를 모두 명확하게 밝히기는 어려운 점, 수술 중 환자의 혈압이 떨어지는 등 상태가 악화되자 응급조치를 취하면서 소생시키기 위하여 노력한 점 등 여러 가지 이유를 근거로 하였다.
다만 원고는 사업자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민형사상의 판결에 명백히 판시된 경우에만 손해배상금을 필요경비에 불산입한다는 취지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나 이와 같이 해석하여야 할 명문의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필요성도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원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생각하는 게 있다. 이렇게 보면 이렇고 저렇게 보면 저렇다. 결국은 법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관계 판단의 문제이다. 대체로 이런 경우들은 판단하는 사람 자기 마음의 표현이다.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부정이 되는 거고 긍정으로 생각하면 긍정이 되는 것이다. 요즘 수도이전 위헌결정이 잘됐느니 못됐느니 말이 많지만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결국 자기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