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에서의 5년] 43 사채업자 과세가 어렵다 2 – 노인과 바다
당시 검찰 간부로부터 전화가 왔다.
상고포기하면 어떻겠냐는 취지였다.
행정부처 소송건은 고검의 지휘를 받게 돼 있다.
“상고포기하면 안돼죠.”라고 말했다.
그와 안면이 있기 때문에 어색한 사이가 아니었다.
국세청 간부도 별도로 나를 불러 상고포기하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의아했다. 왜 다들 상고포기하라고 하는지.
“금지금 사건도 1, 2심 패소한 걸 대법원에 상고해서 사건을 이겼습니다.”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검찰 송무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1, 2심 다 졌는데 굳이 상고할 필요 있냐는 내용이었다.
이상하게 상고포기를 집착하였다.
대법원에 사건이 가는 걸 무척 꺼려했다.
검찰이 오히려 패소를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사채업자들 힘이 느껴졌다.
‘전관들을 선임했다더니 세긴 세네.’
판결문에도 나오는 사채업자 변호사는 고등법원장을 하다 막 나온 분이었다.
나오자마자 사채업자 사건을 선임하였다.
내가 볼때 그분은 그해 매출이 상당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결국 검찰은 문서로 지휘명령을 내렸다.
상고포기를 하라는 문서였다.
나는 설마 그렇게까지 나오리라고는 예상을 못했다.
대놓고 문서로 상고포기하라고 하면 그 흔적을 시간이 지나서도 지우기 어렵다.
시간이 지나 이렇게 사건을 말하고 다시 불거질 수 있는데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상고포기를 막아야 할만한 이익이 있었을까 싶다.
검찰간부와 국세청 간부까지 나서서 납세자의 권익을 침해하면 안 된다는 이유를 상고포기의 근거로 들었다.
알면 봐주고 모르면 칼같이 하는 세상인 듯 했다.
그 사채업자 사건은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사채업자 형제들을 당초 국세청은 정범으로 형사고발하고 비밀사업장 명의사업자들을 종범으로 고발하였다.
조세포탈액수는 307억 원이었다.
물론 과세처분도 하였다.
사채업자 형제들을 실질사업자로 보고 형에게 종합소득세 203억,동생에게 223억 원을 별도로 과세하였다.
원금을 조 단위로 굴린 사람치고는 적게 과세한 느낌이 든다.
그 조사사무관의 성품을 잘 안다. 사건가지고 장난칠 사람이 아니다.
무작정 추계과세로 세금을 부과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이해를 해본다.
그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검찰로 가서 사건이 바꿔진다.
정범은 무혐의, 종범은 정범으로 바꿔졌다.
사채업자 형은 고발 당시 미국으로 출국하고 한국에는 없었다.
사건이 끝나자 한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
포탈액수도 달라졌다.
사채업자 형제들이 307억 포탈에서 사업장 명의사업자들이 181억 포탈한 걸로 바꿔졌다.
당시 수사관할은 서부지검이었다.
국세청 고발이 주로 서부지검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수사결과 형은 사채업과 전혀 무관한 사람이 되었고, 동생이 사업장 명의사업자들에게 5년간 74억 원의 자금을 빌려주고 총 5억 8,400만원의 이자를 받은 것으로 되었다.
국세청이 사채업자 전주로 보고 고발했던 형제들은 검찰을 거치자 사채업과 전혀 무관한 사람으로 된 것이다. 국세청의 고발내용과 조세포탈의 주체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러자 동생은 관할세무서에 5년간의 종합소득세로 2억 2,700만원과 지방세를 신고․납부하였다.
결국 그 이후 형사재판은 사업장 명의자들이 사채업자 동생으로부터 돈을 빌려 대부업을 한 것으로 프레임이 바뀌어졌고 그들이 이자소득을 어느 정도 은닉했는지로 초점이 완전히 바뀌어졌다.
게다가 형사소송 1심에서 검사는 포탈세액 산정에 문제있다면서 사업장 명의사업자들의 포탈세액을 대폭 감액하여 공소장변경허가신청을 하였는데 그 액수는 181억 원에서 25억 원으로 감액하는 내용이었다. 법원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사업장 명의사업자들은 변경된 포탈세액 25억에 가산세를 합한 금액을 얼른 신고․납부하였고, 법원은 두 달 후 그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여 벌금형을 선고하였는데 그 벌금의 액수는 명의사업자들 다 합하여 31억 5,000만원에 불과하였다.
그들은 항소를 제기하지 아니하고 벌금을 모두 신속히 납부하였다.
이로써 형사소송은 종결되었다.
이젠 사채업자 형제들에 부과된 종합소득세에 대한 행정소송만 남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