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과 인생] 145 사실혼 이야기
갑의 나이 26살 때 어느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는데 어머니가 없었고 아버지는 전처와 이혼을 했다. 그후 갑은 연민의 정이 생겨 사실상 부부로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남자가 쓰러졌다. 병원으로 급히 후송하였으나 바로 그 다음날 아침 아무런 유언도 못한 채 숨을 거뒀다. 혈관이 터져서 손쓸 수가 없었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 발생했다.
재산 형성의 일등공신은 갑이었다. 20대 꽃다운 나이에 사실혼 관계에 들어간 이후 15년 동안 아이들을 잘 양육하여 모두 대학교까지 졸업시켰고 회사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등 재산형성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그런데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사실혼관계로만 있다 보니 갑에게는 재산상속권이 인정되지 않았다.
사실혼은 그야말로 둘이 살아있을 때만 권리를 보장받는 관계다. 누구 하나가 부당하게 사실혼을 파기시켜버리면 위자료 및 재산분할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으나 사실혼관계 당사자 일방이 죽어버리면 말짱 헛것이다. 재산분할청구권이나 재산상속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갑은 아이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달라고 요구해봤지만 친척들이 나서서 극구 반대하였다. ‘무슨 소리 하냐’
사실 갑이 불리하였지만 법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15년간 헌신한 대가를 못받는다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위자료 20억 원, 망인의 #상속재산 150억 원 중 재산분할로 30억 원을 달라고 하였다. 법원은 상속인 명의로 된 예금 25억 원을 갑에게 양도하라는 내용으로 강제조정을 하였고 아이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렇게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세금이 과세되었다. 아이들에게 먼저 발생하였다.
상속세 신고를 하면서 25억 원을 상속채무로 신고할 수 있다는 말을 믿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계산해 봐도 25억 원을 주지 않은 채 상속세를 내는 것과 25억 원을 주고 그만큼 상속세를 안내는 것을 비교해보니 선심을 쓸 만했다고 생각했는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국세청에서 세무조사를 하면서 신고누락재산 30억 원을 상속재산에 포함시키고 채무로 공제한 위 25억 원을 부인한 후 상속세 33억 원을 고지해 버린 것이다. 이미 상속세로 신고한 금액만 해도 70억이 넘었다. 그런데 거기다 상속세 33억 원을 또 내라고 하자 아이들은 너무 황당했다. 아무도 그런 일이 벌어질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갑에게 줄 의무가 없기때문에 상속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게다가 갑에게도 #증여세가
고지되었다.
“내가 뭐 증여받은 게 있다고 그래요? 법원 조정조서에 의해 위자료 및 재산분할 성격으로 예금을 양도받은 것 밖에 없는데요?”
“사실혼관계에 있다가 일방이 사망하면 아무런 권리를 주장할 수 없어요. 그런데 예금을 양도받았으니 이는 대가 없이 받은 것이므로 증여에 해당합니다.”
세무공무원의 대답이었다.
갑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기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결론은 과세처분이 적법하다는 거였다. 결국 증여세 본세에다 신고 안한 가산세까지 내고나니 몇 십억 받았다고 좋아했던게 세금으로 상당부분 날아가 버렸다. 세법을 몰랐던 결과가 너무 가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