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두 부류라고 한다. 업을 쌓던지 아니면 소멸하든지.
어떤 사람은 살아가면서 대부분 생존을 위해서 사니까 중생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렇듯이 업을 쌓고 갈 수밖에 없는 숙명의 한계를 가지고 태어났다.
태어날 때 인간으로 태어난 그 자체가 업덩어리로 태어나는 건데 타고나면서부터 인생을 살면서 인생을 가야하는 것이 등에 지고 가는 지게에 지고 가야하는 커다란 돌이 있는데 그것을 지고 평생을 산을 올라가야 한다. 근데 올라가면서 그 돌을 덜어낼 생각을 안하고 그 돌을 또 올리는 어리석음을 대부분 반복한다는 것이다.
무겁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면서 반복하고 또 잊어먹고 반복하고 또 잊어먹고 반복하고… 그게 지옥이다. 고통을 당하면서도 잠시 그때 뿐이고 또 고통 당할 짓을 하고 계속 그런다는 거다.
그러니 원효스님이 얼마나 안타까워 했는지 막속급호( 莫速急乎) 막속급호( 莫速急乎) 하였다. 이 한몸 태어나서 이 한몸 가버리면 언제 또 기약하리. 인생은 결국 자기가 혼자 가는 길이기 때문에 그 길은 결국은 외롭고 적적한 길인데 사람한테 의지해서 될 일이 아니고 누가 나를 구제해줄 것도 아니고 다들 자기 갈 길 바쁜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구제할 도리밖에 없다.
그러면 이 몸 태어났을 때 해야한다. 축생으로 태어나면 할 수도 없는 거고 죽어서 내 이 몸이 없는 영가의 존재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결국은 이 몸뚱아리 가지고 태어났을 때 해야하는데 인간 몸을 가지고 태어날 확률이 만년 묵은 자라가 만년에 한번 숨쉬러 물위로 올라올 때 뗏목 세개 중에 하나에 뚫려있는 구멍으로 자라 목이 도킹할 확률이라고 한다. 그렇게 귀하게 태어난 우리 인간의 몸을 가지고 한평생 살면서 생존을 위해 살다보면 업도 짓고 또 자기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살다보면 사람의 기운이 붕붕 뜨고 제 구실을 못하고 침잠을 못한다.
사람 마음이 편해지려면 침잠이 되어야 한다. 맑은 물이 떠오르려면 침잠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항시 기운이 붕 떠있으면 어느 순간에 풍선이 톡하고 터지듯이 그런 경우를 항시 당하게 되고 떨어지는 나락이 결국은 지옥과 같은 고통을 당하게 된다.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이 세상사 도처가 위험덩어리이고 암초고 그러지 않은 게 없다. 어떤 부류는 생존을 위해서 사는 것을 넘어 거짓으로 인생을 도배하고 있다. 생존이 현실이니까 생존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해서 생존만을 위한다면 뻔뻔한 장사치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사람이라는 게 양심이 있고 자기의 업을 소멸하려고 생각을 하고 죽으면 끝이다 그런 생각을 안하고 그래도 내가 이 인간 몸 태어났을 때 내가 내 자신을 침잠시키고 업을 조금이라도 소멸시키려 노력하고 참고 견디고 세월을 기다리고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부류도 있다. 그런 보이지 않는 세계도 있다 생각하고 떨어지는 낙엽에도 마음 아파한다. 이판사판( 理判事判)이라고 하지만 이(理)와 사(理)의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가지는 게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본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되겠구나.
그래서 마음이 쉬어야 몸도 쉬는데 이 마음이 쉰다는 것도 내가 볼때 하늘과 땅의 간격을 모두 메꿔야 할 정도로 진짜 어려운 일임에도 그런 말을 너무 쉽게 하니까 세상에는 도처에 좋은 말들 천지로 깔려있어 너무 쉽게 생각하고 당연시 한다.
당연한 말도 내 몸으로 실천하기는 그렇게 어렵다. 그래서 좋은 말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해본다.
오늘 아침은 어제 비가 와서 아주 맑다. 이런 맑은 날 기분도 아주 상쾌하고 앞으로 내 인생도 이렇게 상쾌하고 깨끗했으면 좋겠다 그런 바램을 가져본다.
덧 : 거짓말로 점철된 인생은 개과천선이 어렵다. 목적의식을 가진 이들은 거짓말이 수단과 방법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양심이 없으니 인간으로 보기 어렵다. 아귀들이라고 해야할까.